슙민슈짐 썰1

글하 2017. 1. 20. 01:49


윤기는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임. 윤기는 이 고등학교에서 제일 젊은 남자 쌤인데다가 수업도 잘 하고 재미있고 대화도 잘 통하는 편이라 학교에서 진짜 인기 많았음.

왜 학교에 꼭 그런 쌤 있잖음. 처음에 수업 들어오시는 쌤 아닌데 오다가다 보거나 우연찮게 만나게 되거나 할 때 보면 겁나 무서운 쌤. 막 지나다니는데 겁나 무표정이라서 무섭고 하필 인성부 쌤이라서 무섭고 가끔 복도 같은데서 학생들 혼내고 있는 거 보면 개 무섭고 막 어찌어찌 들은 소문들이 겁나 살벌해서 웬만하면 그 쌤이랑 마주치지 말자 그 쌤 눈 밖에 나지 말자 했는데 2학년 올라가서 보니 수학 쌤이 그 쌤이라 와 진짜 어떡하냐고 안그래도 수학 시간 많은데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수업 듣고 하다보니까 무뚝뚝하긴 해도 말 하는게 존나 재밌고 막 그렇게 꽉 막힌 사람도 아닌 거.

윤기는 항상 2학년 문과 수학을 맡았음. 그래서 지금 올라간 3학년은 윤기의 진면모를 알아보고 겁나 인기 많음. 2학년은 이제 알아가고 있어서 인기몰이 중. 1학년만 이게 고등학교의 차이인가 싶어서 윤기만 보면 아무 잘못한 거 없으면서 오금이 저림.

항상 학교에 한명씩은 인기 많은 쌤이 있음. 그게 윤기인데 어느정도냐면, 입학식 때 선생님 소개한다고 2학년 문과 수학 담당 민윤기 선생님 하면 2 3학년 애들이 막 박수 치면서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면서 열광함. 1학년은 뭣도 모르면서 아 저 쌤이 그렇게 인기 많구나 하면서 보는데 얼굴만 보면 인기 많은 이유를 알 것 같은 정도. 윤기는 그 함성 들으면서 익숙하다는 듯 무슨 선거 나가는 것 마냥 손을 들어 가볍게 오른쪽 한번 왼쪽 한번 작게 손 흔들어줌. 매일 수업 들어가면 꼭 듣는게 자기 졸업하면 자기랑 사귀자는거랑 졸업하자마자 고백 할거라는 거랑 졸업하고 결혼하자는 소리임. 그럴때마다 윤기는 웃기지 말라면서 대학 들어가면 다 너희 나이만한 어린 남자한테 눈 돌아갈거라고 함.

윤기가 기본적인 능력치가 좋음. 문과였으면서 수능접수를 이과로 내가지고 학교를 전부 멘붕파티로 만들어놓고 수학교육으로 들어감. 대학에서 힙합에 물들어 잠깐 음악 했는데 생각보다 엄청 유명함. 윤기는 그냥 흑역사 좀 생성해줬다고 말하는데 공연도 꽤 크게 몇번 하고 그때 윤기가 쓰던 예명 검색어에 치면 나올 정도. 공연 영상도 유튭에 많이 돌아다니고 관련 글도 엄청 많고 하여튼 활동을 꽤 크게 했었음. 학교 축제에서 쌤들도 무대 하는데 거기서 랩 좀 했다가 애들한테 더 큰 인기를 모음. 그리고 체육대회때 한발짝도 안움직이는 사람이 막상 운동 한다 하면 꽤 잘하고 막 고등학생때까지 농구선수였다 그러고 하여튼 인생을 보람차게 보낸게 느껴짐. 겉도 속도 뭐 하나 빠짐없이 잘난게 딱 봐도 느껴져서 인기가 많을 수 밖에 없음.

이런 쌤들한테 궁금한게 연애 이야기. 애들이 가끔씩 윤기한테 여친 있냐고 물어봄. 그때마다 무표정으로 진도 나가거나 애들이 좋아 죽는 입동굴을 드러내며 웃기만 하는데 환장할 것 같음. 긴가민가 함. 아 애인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딱히 커플 아이템으로 느껴지는 무언가를 하고 온 적이 한번도 없는 걸 보면 없는 것 같기도 한데 저 나이에 저 스펙이면 없는게 더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또 하나 궁금한게 첫사랑 이야기. 애들이 첫사랑 이야기 할때마다 윤기는 설레게 웃음. 아 내 첫사랑? 뭔가 그 말투가 아련한 듯 하면서도 아직까지도 그 감정을 기억하고 있는 듯 설레어 하는 그 표정에, 보는 사람이 다 설렐 정도임. 애들이 진도 나가기 싫다거나 놀고 싶을 때 첫사랑 이야기 해달라고 하면 가끔 윤기가 첫사랑 이야기 해줌.

쌤 옛날에도 인기 엄청 많았을 것 같아요 하면 고개를 저으면서 자기 엄청 귀차니즘 심해서 막 인간관계가 너무 협소 했다면서 그래서 나도 뭐 여자 만난다거나 그쪽에서도 나를 만나고 싶다거나 그런거는 딱히 없었다고. 언제한번 친구가 단체사진 같은 거 보여주면서 여기서 마음에 드는 사람 있으면 소개 시켜준다고 연애 좀 하라고 막 그런식으로 얘기해서 보는데 사진 보고 한 눈에 반했다면서 그런식으로 말함.

진짜 사진만 봐도 내 자신이 반한게 느껴지는데 실제로 보면 어떻겠냐? 우연히 학교 안에서 봤는데 진짜 그 자리에서 숨이 막혀서 쓰러질 뻔 했다.

그렇게 말하면서 짓는 표정에, 학생들은 벌써부터 차인 느낌 뿜뿜임. 쌤 첫사랑이랑 사귀었어요? 뭐지 그 질문은 사귀었으니까 말했겠지 짝사랑으로 끝냈으면 맘 아파서 입도 벙긋 안했다 첫사랑 말 나오기도 전에 너희 입 쳐버릴거야 인마.

어떻게 사귀었어요? 다른 물음에 또 추억 회상하는 특유의 표정이 나옴.


내가 지금 생각하면 겁나 찌질이었는데 그때 당시에는 세상 진지했지. 나 좀 알아봐달라고 괜히 많이 알짱대고 알게 모르게 챙겨 주고 그랬는데 사귀고 나서 물어보니까 하나도 모르더라. 그냥 나 혼자 뻘짓 한거지. 너무 모르게 해서 아무도 몰라. 어쨌든 그렇게 한 1년 가까이 뻘짓 하다가 나 음악 했던 거 알지? 내가 연말 무대를 하게 됐는데 내 친구가 또 그 애를 알았던거야. 걔는 좀 인맥이 이상하게 넓었어. 하여튼 내 친구가 그 애를 데리고 공연을 보러 와 준 거지. 난 처음에 걔가 나 그 애 좋아하는 거 아는 줄 알고 진짜 그 자리에서 기절 할 뻔 했다. 어쨌든 그렇게 뒷풀이에 그 둘이 데려가고 그러다 그 애 번호 땄어. 내 인생에 그렇게 떨린 적은 처음이다. 수능 점수 볼때나 대학 합격 보기 직전에도 그렇게 떨리진 않았는데.

그렇게 처음에는 친한 친구처럼 지내다가, 아 참고로 그 애가 나보다 두살이 어렸어. 처음 만났을 때가 24.99살이었다. 12월 31일에 공연이었으니까. 어쨌든 친구로 지내다가 3월 말이었나 4월이었나 벚꽃 구경 가다가 그 상황이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툭 나왔어. 네가 좋다고. 그 말 뱉자마자 머릿속이 갑자기 새하얘지는 거야. 막 내 자신한테 욕이 다 나오더라. 헐 민윤기 이 미친 새끼 뭐하는거야. 개또라이 아니야 지금 여기서 왜 고백을 해 미친놈아. 별의 별 생각이 다 들더라. 내가 생각한 고백은 훨씬 더 먼 날에, 제대로 각 잡고, 끝내주게 좋은 날에,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에서, 진지하게 내 마음을 다 말하는 거였거든. 아 애초에 고백할 생각도 없었어. 얘랑 하는 연애는 그냥 꿈일 뿐이라고 생각했었거든. 이렇게 그냥 놀러갔다가 좋다 한마디 할 생각은 전혀 없었어. 너무 뜬금 없기도 하고 그냥 진짜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인 것 같아서. 그 와중에도 장난으로 들었으면 어쩌나 걱정 되기도 하면서 아 솔직히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장난으로 밖에 안들린다는 생각도 들고 그냥 완전히 멘붕.

그 애는 말이 없었어. 아 내가 좀 병신 같았던게 그렇게 내뱉은 이상 계속 어필 했어야 했는데 나도 너무 정신이 없어서 그 이후로 말이 안나오더라. 그 애는 그냥 그렇게 집에 가버렸어. 그리고 연락이 안됐었어. 피말리는게 이런 기분이구나 그 때 처음 느꼈다. 아 그러고 보니까 걔 때문에 처음 느껴본 감정이 많네. 어쨌든 바싹 마른 오징어가 이런 기분일까 싶을 정도로 내 몸에 물이란 물은 다 증발해서 빠짝빠짝 마르는 기분이었어. 그 날 이후로 집 밖을 못나가겠더라. 그냥 아 이게 차인거구나 싶어서 막 멍해지다가 눈물 나다가 허탈감에 웃음이 나오다가 그냥 미친놈이었어. 그딴식으로 허무하게 관계가 끝난것도 그냥 코미디 같고.

그러다 문득 너무 억울한거야. 내가 그 애 때문에 앓았던 내 마음이 너무 억울했어. 내가 이렇게나 오랫동안 품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끝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씻고 좀 정돈하고 나름 괜찮은 옷 골라서 좀 정상적으로 보이게 하고 나갔어. 그 애를 만나서 진짜 쫑나든 어떻든 마음이나 던져놓고 가자 싶어서. 이제는 내 마음 나 조차도 감당하기 너무 무거워서 그냥 그 애 앞에 던져 놓고 가자, 그 마음 어차피 너 밖에 들어있지 않으니 너 알아서 해라. 싶은 심정으로. 많이 이기적이긴 했지만 그때는 그런 거 하나도 생각 안났어. 와 지금 생각해보니까 진짜 나 쓰레기였구나. 애한테 완전 부담주는 꼴 아니야. 여하튼 그런 거 하나도 생각 못할 정도로 나는 그냥 미쳤었고 음, 사람 꼴이 아니었어.

문자만 하고 그냥 하염없이 기다렸어. 그렇게 통보하면 결국 이 애가 나올 것이란 걸 알았거든. 그 애는 착했어. 결국 그 문자 거절 못하고 나올 것이란 걸 아주 잘 알았어. 그 애는 결국 나왔더라. 알고 그랬는지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좋아 죽는 옷 입고 왔었어. 그 와중에 또 그 애가 너무 이쁘니까 주체를 못하겠더라. 내 마음이 내 마음 같지가 않아. 아 너희 이거 명심해라. 진짜 미친듯이 좋아하는 누군가가 생기면 그냥 내가 내가 아니게 되더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난 나의 모든것이 그 애한테 맞추어지게 되었어.

그 애 집 앞에서 고백했어. 지금 생각하면 진짜 멋 없었는데. 아 이야기 하다 보니까 나 왜 이렇게 찌질한 짓만 했지? 그 애가 사귀어준게 용한데? 아니 무슨 사귀기 전부터 온갖 정 떨어지는 짓은 다 한 것 같아. 어쨌든 그때는 5월쯤이었던 것 같다. 거의 한달 반 만에 만났었어. 조금 더웠고. 밤이라서 가로등만 켜져 있고 주위에 아무도 없었지. 걔가 주택에 살았거든. 좀 좋은 주택. 애가 제 집 담벼락에 기대어 나를 봤어. 나를 바라보는 그 눈에도 숨이 턱 막히더라. 말 할 거 정리해 왔었는데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기억이 하나도 안 나는 거야. 일단 마음을 가다듬고 그 애 이름을 부르는데 갑자기 목이 콱 매이면서 눈물이 나왔어. 진짜 또르르 이거 아니고 막 주륵주륵. 아 그냥 울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입술을 막 깨물어서 소리는 새어나오지는 않았는데.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운 날이었다.


헐. 윤기가 울었다고 하자 학생들이 겁나 놀람. 저 쌤이 울었다니 도저히 상상이 안됨. 쌤이 울었다고요? 누군가 되물어봄. 그래 인마 난 사람 아니냐? 나도 눈물 있다고. 쌤 아까 사귀었다고 했으니까 그 사람이 고백 받아준거겠네요? 다른 애 물음에 또 특유의 사람 설레게 하는 웃음이 나옴.


내가 온갖 찌질이 짓은 다 했다고 했지? 그 애 앞에서 울면서 고백했어. 지나고 나니까 쪽팔리긴 하더라. 어쨌든 미안하다고 내가 너 좋아해서 미안하다고, 친구 하나 잃게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그렇게 말했어. 근데 아직도 좋아한다고. 그때 했던 그 말 허언도 아니고, 착각한 것고 아니고, 그냥 정말 네가 좋다고. 나도 수십번 생각해보다가 그냥 내 마음 제대로라도 전하자 싶어서 왔다고. 이것도 미안하다고 괜히 너한테 부담주는 것도 싫었는데, 내가 참 속 좁은 인간이라서 솔직히 네 마음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고.

그 애가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다가오더니 나를 꽉 안아주었어. 처음엔 혼란스러웠어. 이게 무슨 의미일까. 그냥 동정인가. 이렇게 하고 끝내자는건가. 나도 안아도 되는건가. 막 고민한다고 손도 어찌할 바 모르고 그냥 축 늘어뜨린 채 있었지. 근데 진짜 거짓말 같게도 걔도 고백을 하는거야. 자기도 좋아했다고. 그 때 내가 고백했을 때 심장 터지는 줄 알았다고. 근데 내가 말한 그 의미가 뭔지 몰라서, 헷갈려서, 그래서 도망치듯 돌아간거였다고. 오늘 또 이렇게 와서 그렇게 말해주니까 너무 고맙다고. 사실 자기도 오늘 무작정 우리 집으로 와서 이야기 할 생각이었다고 얘기하더라. 천만다행이지. 만약 걔가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었으면 나 완전 쓰레기에 구질구질한 남자로 남을 뻔 했어.


우우 새드엔딩이다. 아이들의 장난기 어린 야유에 윤기는 피식 웃음. 야들아, 그러니까 지금은 열심히 공부하고 원하는 대학 붙어서 좋은 애인 만나야지. 윤기의 말에 야유가 더 심해짐. 왜 이야기가 거기로 튀어요! 꼭 열심히 공부해야 좋은 애인 만나요?!  윤기는 아이들의 말에 더욱 진하게 웃으며 말을 이음. 미안하다 내가 말을 잘못 했네, 뭘 하든 너희들이 하고 싶은 걸 열심히 해 그리고 좋은 애인 만나.

쌤 그 첫사랑 예뻤어요? 한 학생의 물음에 윤기는 살짝 고개를 숙여 얼굴을 가림. 아, 죄송해요... 애가 살짝 의기소침해져서 사과하니까 윤기가 손을 저음. 아니 그게 아니라 그 애 얘기만 하면 아직도 표정관리가 안돼서. 그래도 명색의 선생님인데 너희 앞에서 사적인 감정 막 드러내고 다니면 좀 그렇잖아. 큼큼 윤기는 절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내림.

내 첫사랑 겁나 예쁘지. 솔직히 나도 조오금 작은 편이긴 한데 걔도 작은편이었어. 그리고 좀 하얀 편이었고. 애가 말랐는데 이상하게 볼은 좀 통통해서 찹쌀떡 같았어. 아 그리고 홍조가 있어서 볼이 불그스름 할 때가 있었는데 겁나 귀여웠지. 애가 성격도 막 자기는 애교 없다고 하면서 기본적으로 애교가 장착되어 있는 애였어. 엄청 귀여운짓 많이 한다니까. 본인은 그걸 모르지만. 그냥 애 성격 자체가, 본래 타고나기를 그렇게 타고 난거야. 춤을 되게 잘 췄어. 그래서 댄스 동아리 하고 그랬다. 인기가 너무 많아서 나 대놓고 걔한테 다가오는 애들 쳐내고 그랬어. 그 애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사람이 오면 좋다고 헤헤. 진짜 그럴때는 좀 힘들긴 했는데. 뭐 어쩌겠냐. 원래 더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거라고.

이 날 이후로 온 학교가 난리남. 윤기쌤 첫사랑 대박이라더라. 윤기쌤 그렇게 웃는 거 처음 봤다. 무슨 어제 1일이었던 것 처럼 말하더라니까? 진짜 내가 들은 첫사랑 이야기 중에 역대급이었다. 운게가 들어가는 반마다 첫사랑 이야기가 끊이질 않음. 쌤! 쌤 반 애들한테 첫사랑 이야기 해줬다면서요! 첫사랑이 그렇게 예쁘다면서요! 저희한테도 이야기 해주세요! 그럼 윤기는 단호하게 말함. 한 번 입 밖에 꺼낸 이야기는 다시 하지 않는다. 치사하다고 막 난리나도 윤기는 입도 벙긋 안 함. 다음에 다른 얘기 할 기회 있으면 할게. 그러고 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