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민/다각] 에스퍼 썰2
태형은 제가 입고 있는 교복이 어색해서 괜히 손으로 쓸어봄. 살면서 이렇게나 많은 시선을 받아본 적은 처음임. 내가 만약 연예인이 된다면 이런 기분일까. 태형은 애써 다른 생각을 하면서 시선 생각 안하려고 노력함. 그래도 남들이 소근 거리는 것, 자신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들이 신경 쓰여서 앞에 학생회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무슨 말을 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음.
미친, 진짜 노멀이 들어왔어.
대박. 기어코 들어왔구나.
와 진짜 뻔뻔하다.
저런 말이 저절로 들리는 건 어쩔 수가 없음. 아니, 누군 오고 싶었냐고. 억울해서 돌아가실 지경임. 집안도 평범해, 에스퍼도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 곳에 교복을 입고 서 있을 이유가 없는데 아무 이유도 가르쳐 주지 않으면서 교복 하나 떡 던져놓고 입학식에 참석하라 했으니, 태형도 어이가 없긴 마찬가지. 덕분에 굳이 듣지 않아도 될 욕까지 다 듣고 있는데 태형도 마음 편할리 없음. 아, 그냥 진짜 서류 잘못된걸로 하고 집에 가고 싶다.
입학식 끝나자마자 각자 자신의 교실을 찾아서 건물로 우르르 들어가는데 태형만 갈팡질팡함. 그냥 제일 앞에 있는 입구로 들어갔더니 학교 내부도 억 소리 날 정도. 이때까지 다녔던 학교는 나무로 만든 마룻바닥에, 계단 정도나 대리석으로 되어 있고, 신발장이 벽에 붙어 있고, 일렬로 늘어선 교실에, 내부를 볼 수 있도록 커다란 창이 여러개 달려 있고, 뭐 그랬음. 근데 이 곳은 학교라는 이름을 붙이기 민망할 정도로 화려함. 돈을 어지간히도 쳐발랐구먼. 태형은 대리석으로 만든 거대한 기둥을 살짝 쓸어내리며 중얼거림. 이런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임. 너는 지옥에 떨어뜨려 놔도 염라대왕이랑 친구 먹을 녀석이다. 라는 말을 들어왔지만 이건 해도 너무 함. 그렇다고 진짜 지옥에 떨어뜨려 놓는 거 있냐... 태형에게는 여기가 지옥 같음.
태형아. 절대로 기죽지마렴. 너는 그런 곳에서 기죽을 아이가 아니란다. 네 스스로를 믿으렴. 넌 정말 대단한 아이야. 엄마, 아빠 아들이니까 분명 태형이는 거기서도 잘 지낼 수 있을거라 믿어.
태형은 속으로 엄마가 한 말을 몇번이고 되새겨 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이곳에서 기죽지 않을만큼 대단한 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음. 인간 같지도 않은 능력들이 판을 치는 에스퍼 사이에 노멀 한명이 떨어졌는데, 이건 뭐 늑대 우리 속의 양과 다를 바 없음. 선생님 아무리 생각해도 노멀이 이곳에 있는 건 말이 안됩니다. 분명히 이건 뭔가 잘못됐습니다! 동명이인이 있는게 틀림 없습니다. 다시 한번만 확인해주세요. 몇번이고 선생님한테 매달려 말해봤지만 선생님은 헛소리 하지 말고 네 교실로 돌아가라는 말만 함. 아무것도 얻은 것 없이 터덜터덜 교실로 돌아가는 태형의 모습이 그냥 비에 젖은 강아지꼴임.
개교 이래로 학교가 이렇게 매일같이 시끄러웠던 적도 없음. 그 원인이 모두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에 태형은 어찌할 바를 모름. 태형은 처음 자신이 교실에 들어갔을 때 쏟아지던 그 시선을 잊을수가 없음. 미친, 노멀이 S반이라니. 태형은 아무 빈자리에 앉으면서 그런 소리를 들음. 아니 썅, 내가 이 반을 골랐냐고. 선생님이 이 반으로 가라고 한 걸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진짜 태형은 아무나 붙잡고 하소연 하고 싶은 심정. 가시방석도 이런 가시방석이 없음. 아니 그냥 못방석임. 아까부터 진동으로 계속 문자는 오고,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은 신경쓰이고, 어떻게 앉아도 불편함에 결국 태형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남. 화장실에라도 가 있어야겠다 싶어 후다닥 나가는데 딱 들어오려던 누군가랑 살짝 부딪침. 미안! 태형은 얼굴도 못보고 스치듯 사과하며 후다닥 화장실로 뛰어들어감.
아씨. 윤기는 안그래도 기분 안좋은데 어떤 애가 퍽 치고 지나가면서 더 기분 안좋아짐. 미간이라는 미간은 다 찌푸린채 아무 빈자리나 가서 털썩 앉음. 반 애들이 자신을 눈치보는 것이 느껴지지만 개의치 않음. 어차피 그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윤기를 보면 눈치껏 몸을 사리곤 했음. 윤기는 그럴만한 사람이니까. 그의 가문과 그의 능력, 어느 것 하나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으니까. 에스퍼 사회에 능력이란 그런거임. 철저히 타고난 가문과 능력에 따라 계급이 나뉘어지는. 계급이라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이 학교는 그러한 선이 분명하게 나뉘는 곳이었음.
윤기는 원래 학교의 일에 그다지 신경을 쓰는 편이 아님.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지금까지 공부하는 애들이 똑같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무도 모름. 그나마 같이 다니는 애들만 앎. 그 애들이 제발 좀 관심 좀 가지라고 말해도 윤기는 귓등으로도 안들음. 내가 그 애들을 알아서 뭐하게. 약간 그런 마인드. 학교가 축제 시즌으로 준비기간 동안 온갖 생난리를 쳐도 윤기는 축제 당일, 오늘 뭐 해? 라고 물어보는 인간임. 그런 윤기마저 학교에 노멀이 들어왔다는 것을 알 정도면 이 일이 정말 크다는 것임. 윤기가 빡쳐서 우리 학교에 노멀이 들어온다는게 뭔 말이냐. 라고 물어봤을 때, 남준과 호석은 그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기절 할뻔 함. 윤기 형 어디 아프다고 당장 양호실이든 어디든 눞혀야 한다고 소리 지를 정도.
여하튼 윤기는 이런 자신의 귀에까지 들릴 정도로 대단하신 그 노멀 얼굴이나 한번 보자 벼르고 있음. 어떻게 생겨먹었길래 이 학교까지 들어왔나, 김석진이고 노인네고 다 말해주지 않을거면 내가 알아본다 싶은 마음. 주위에서 어디 진짜 죽을 때 다된거냐고 호들갑 떠는 것도 보기 힘들지만 어쨌든 그런 윤기를 움직이게 만들 정도로 에스퍼 사회에 떨어진 노멀은 흥밋거리 그 자체였음.
혹시 노멀 어느 반인줄 아냐?
윤기의 물음에 같은 반 애들은 선뜻 대답하기가 조심스러움. 응, 이 반이야. 라고 하면 안그래도 지금 안좋은 윤기 기분을 아예 바닥에 패대기 치는 일임. 에스퍼들은 자신의 능력이 희귀하고, 강력하고, 등급이 높을수록 자부심을 가지고 있음. 그리고 이 반은 그런 자부심의 최고 정점을 찍은 애들만 모여 있는 S반임. 노력뿐만 아니라 웬만큼 타고난 것도 있어야 들어올 수 있는 이 반에 노멀이 떡하니 들어왔다는 것은 S반 학생만이 아니라 이 학교를 다니고 있는 전교생의 자존심을 짓밟는 일이었음. 그런 사실을 자부심의 극인 윤기가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모르긴 몰라도 이 교실에 아마 누구 한명은 감전으로 병원에 실려갈 것임.
몰라?
윤기는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다른 애들은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쉼. 불과 개학 전까지만 해도 나름 평화로운 반이었는데 지금 노멀이 들어오고 윤기까지 있는 이 반은 그야말로 다이너마이트 앞에 불 있는 격임. 하루하루가 롤러코스터처럼 아주 심장이 철렁철렁 거릴 걸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이 반에서 떨어졌으면 싶기까지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