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민 말도 안되는 육아물 썰8
지민은 거의 오열하듯 우는 도하를 달래주느라 힘을 다 빼고 있었다. 도하는 뭐가 그리 서러운지 딸꾹질까지 하면서 지민에게 울분을 토했다.
파파가...흐으... 파파가아아...어허어엉...
그래 그래 우리 도하 많이 아파요?
파파가아아아... 흐윽... 내 이빨 확 해써!!
으아아아앙!! 말하면서 더 서러워졌는지 더 크게 우는 도하를 꽉 안아주면서 애써 웃음을 삼켰다. 소파에 찌그러져 있던 태형은 지민의 웃음에 따라 웃었다. 헤 웃는 태형은 천진난만하기 그지없었다. 지민은 도하의 등을 토닥이며 제 맞은편에 있는 태형에게 말했다.
이는 어딨어?
여기 있어.
태형은 실에 대롱대롱 매달린 이를 보여주었다. 도하가 슬쩍 보다가 제 이를 확인하고 또 울먹이기 시작했다. 아이구, 누구 닮아서 이렇게 겁이 많아? 지민이 등을 어루만지면서 몸을 통통 튕겨주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약 한 시간 전, 태형이 도하의 입 안을 보면서 시작되었다. 티비를 보고 있던 태형은 도하를 불렀다. 아들 여기 와 봐. 태형의 부름에 방에서 따로 책을 읽고 있던 도하가 거실로 총총총 걸어 나왔다. 왜에? 거실 한가운데 서서 말을 늘이며 묻는 도하에, 태형이 소파에 일어나 그의 앞에 양반다리 하고 앉았다. 도하의 손목을 잡고 살짝 내리자 도하도 태형의 앞에 앉았다. 아들 아- 해 봐. 도하는 뜬금없는 제 아빠의 요구에 고개를 갸웃 하면서도 입을 벌렸다. 아앙-. 태형은 도하의 입 속을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 나이 대 아이들이 충치가 많이 생긴다는 내용의 프로그램을 보다보니 걱정되기는 했다. 그러나 도하에게는 충치 말고 다른 문제가 있었다.
아들. 이거 언제부터 흔들렸었어.
엉?
이거 말이야.
태형이 아랫니를 살짝 흔들었다. 으어엉! 도하가 깜짝 놀라 머리를 뒤로 빼자 태형이 확 뒤통수를 잡았다. 마아! 아아앙! 도하가 다급하게 소리를 지르자 부엌에 있던 지민이 후다닥 거실로 뛰쳐나왔다. 왜 우리 도하! 지민은 거실 광경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 태형의 등을 퍽퍽 때렸다. 지금 아가 입에 손 넣고 뭐하는 거야!! 아, 아 아프다고 진짜!! 태형은 도하를 잡고 있던 두 손을 빼서 바로 지민의 두 손목을 잡았다.
도하 이 흔들려.
뭐? 우리 도하 벌써 그럴 때가 됐어요?
지민은 바로 도하의 입 안을 살펴봤다. 아아 나 애아하. 도하는 입을 크게 벌린 채 잔뜩 새는 발음으로 말했다. 지민이 입가를 잡고 있던 손을 뺐다. 마마, 나 갠차나. 도하의 말에도 지민은 심각한 표정을 풀지 않았다. 태형이 살짝 지민의 옆에 붙어 귓속말로 소근 거렸다. 뺀찌 소독할까? 그의 말에 지민이 태형을 째려봤다.
미쳤냐, 애 겁 먹이려고 작정했어?
실은? 나 어렸을 때 실로 뺐는데.
그게 더 낫긴 한데, 야 태형아!
지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떡 일어난 태형이 티비 밑 서랍을 활짝 열었다. 파파 머해? 도하의 물음에도 대답을 않는 태형은 상자를 빼 실타래를 꺼냈다. 태형은 뒤돌아 도하를 보며 환히 웃었다. 아들, 우리 재밌는 거 할까?
모? 도하의 물음에 태형은 무릎걸음으로 도하 앞에 걸어왔다. 도하는 실타래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지민아 가서 가위 좀 가져와줘. 지민은 재빨리 자리에 일어나서 후다닥 가위를 가져왔다. 아들 요정 보고 싶다고 했지. 태형의 말에 흥미를 잃어 가라앉아 있던 도하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했다.
최근 도하가 제대로 빠진 동화책이 한 권 있었다. 그 동화에는 매우 예쁘게 생긴 요정이 나왔다. 도하는 그 요정에 완전히 빠져서 뭐만 하면 요정 요정 노래를 불렀다. 그 덕에 지민과 태형은 도하에게 요정 이야기를 듣는 일이 잦아졌다. 우리 아들 누굴 닮아서 이쁜 거를 이렇게 좋아해? 요정이 나오는 책을 읽고 있는 도하를 볼 때면 태형이 그렇게 말하고는 했었다.
요정?
응, 요정. 아들 이거 흔들리는 거 있잖아. 이게 사실...
태형은 일부러 과장해서 주위를 둘러보는 척 하면서 입가를 손으로 가리고 도하에게 귓속말 했다. 요정이 도하 몰래 숨긴 보물이야. 태형의 말에 도하가 헉 깜짝 놀라며 앙증맞은 두 손으로 제 입을 가렸다. 지짜? 태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 뭔데. 태형의 말을 듣지 못한 지민이 엉금엉금 태형에게 바짝 붙었다. 아씨, 깜짝아! 태형은 지민의 머리를 살짝 콩 때리고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보물을 빼서 베개 밑에 두고 자면 요정이 자기 보물 가져가고 대신 아들 선물을 두고 간대.
지짜야, 마마?
도하가 고개를 들어 지민을 바라봤다. 지민은 순간 당황했지만 곧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엄마도 아빠도 요정한테 보물 주고 선물 받았지. 도하는 지민의 말에 꺄 기쁜 듯 소리 질렀다. 그럼, 요정 보 쑤 이써? 도하의 물음에 태형과 지민이 순간 당황했다.
요, 요정 보고 싶어?
응! 마마 요정 본 적 이써?
아... 엄마는 맨날 잠들어서 요정을 못 봤네.
파파는 요정 본 적 이써?
아, 아빠도 본 적 없는데... 아. 요정은 아들이 자지 않으면 오지 않아. 요정은 사람들한테 보이는 것을 정말 싫어하거든.
왜에?
어... 그러니까...
왜 시러해?
아... 그러게. 아빠는 요정이 아니라서 모르겠네...
태형은 맑은 도하의 눈을 살짝 피하며 말했다. 지민은 태형을 흘겨봤다. 그러게 잘 하지도 못하는 거짓말을 왜 하냐. 마마 왜 시러해? 도하는 그 초롱초롱한 눈빛을 그대로 지민에게 돌려 물었다. 지민의 표정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글쎄 엄마도 요정이 아니라서...
왜 못 바?
도, 도하가 안자면 볼 수 있을 거야.
지짜?
그러엄. 아빠가 거짓말 한 적 있어?
나 요정 보고 시퍼! 요정! 요정! 잔뜩 신이 난 도하를 보며 태형과 지민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쩐지 일이 커진 것 같다.
태형은 실을 알맞은 크기로 잘랐다. 도하야 입 벌려봐. 도하는 아- 입을 벌렸다. 태형이 꼼꼼히 실을 묶기 시작했다. 아바 어해? 어어, 괜찮아 아들 보물 뽑아야지. 도하가 실을 묶고 있는 태형의 팔을 잡자, 태형이 그의 조그만 손을 감싸 덮었다. 지민이 입가를 손으로 가리고 태형에게 귓속말 했다.
태형아 근데 너 실로 이 뽑을 수 있어?
나 실로 이 뽑아 본 적 있어.
말고 바보야. 네가 해본 적이 있어야지.
아니 그건 한 번도 없는데.
야 그럼 어떡해?
아빠 이거 모야?
도하는 제 이에 묶여 늘어진 실을 들었다. 어 잠깐만 아들. 태형은 도하에게 웃어 보였다. 야 그게 별거냐, 그냥 뽑으면 되지. 태형의 말에도 지민은 걱정이 되는지 표정이 살짝 어두웠다. 태형은 아랑곳 않고 도하의 이를 묶은 실을 잡았다. 파파 무셔어... 도하가 무언가를 느꼈는지 태형의 팔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어어 괜찮아 괜찮아 아들. 태형은 도하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파파 모해? 아픈 고 안니야?
아픈 거 아니야. 도하는 씩씩해서 이런 거 하나도 안 아파.
도하 안 씨씨케! 안 씨씨케서 아파!
아니야, 아픈 거 아니야. 아들 아빠 말 못 믿어?
마마!
도하는 두려움에 옆에 있는 지민의 허리께를 감싸 안았다. 지민은 푸스스 웃으며 도하의 등을 토닥여 주면서도 걱정 어린 표정을 지우지는 않았다. 태형은 그런 지민을 보다, 미간을 살짝 눌렀다.
인상 펴. 네가 겁먹으면 애가 더 무서워하잖아.
그냥 치과 가면 안 돼?
어차피 많이 흔들려서 조금만 힘 줘도 바로 빠져.
...응.
아들 여기로 와봐. 태형은 가까이 있는 방으로 가서 도하를 불렀다. 많이 무서운지 눈가가 촉촉해진 도하는 끔뻑끔뻑 눈만 깜빡이며 태형을 바라보다 자리에 일어나 총총총 다가갔다. 태형은 길게 늘어진 실을 문고리에 걸어 묶기 시작했다.
지민아 방 안에 들어가.
야, 나 진짜 못하겠어.
그래? 그럼 내가 들어간다.
태형은 망설임 없이 들어가 문을 닫았다. 영문 모른 채 멀뚱멀뚱 서 있던 도하는 고개만 뒤로 돌려 지민을 바라봤다. 파파 모 해? 지민은 쭈그려 앉아, 도하의 눈가를 살짝 훔쳐 눈물을 닦아 주었다. 우리 도하 요정 만나게 해주려는 거예요.
아들, 아빠 보고 싶으면 불러. 방 안에 들리는 태형의 목소리에 도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파파 지금 보고 시퍼. 도하는 멀뚱히 서서 말하자마자 문이 팍 열렸다. 도하의 이가 순식간에 뽁 뽑혀 실 따라 대롱대롱 흔들렸다. 짠! 태형이 두 손바닥을 펴 보이며 헤 웃었다. 도하는 갑자기 일어난 일에 멍한 표정으로 태형을 보다가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우으응... 도하의 눈동자에 눈물이 잔뜩 고이면서 목소리가 울망울망 해지기 시작했다. 왜 울어요, 우리 도하. 지민이 깜짝 놀라 뒤에서 도하를 안았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도화선이 되었는지, 도하는 어깨까지 들썩이며 울기 시작했다. 태형은 뻘쭘함에 쫙 펴보였던 손을 천천히 접어, 문고리에 달아놓은 실을 뺐다. 실 끝에는 조그만 도하의 이가 매달려 있었다.
흐이이잉... 우으으...으아아아앙!!!!
아이고 우리 도하, 많이 아파요?
지민은 아예 도하를 돌려세워 꽉 안은 채 등을 쓸어주었다. 태형은 소파에 털썩 앉았다. 지민은 서럽게 엉엉 우는 도하의 입 안을 살펴봤다. 이가 많이 흔들렸었기 때문인지 피가 나지는 않았다. 지민의 품에 꼭 안긴 채 울음을 멈추지 않는 도하를 보던 태형이,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도하 앞에 양반다리로 앉았다. 도하는 힐끗 태형을 보다 홱 고개를 돌려 지민의 배에 얼굴을 묻었다.
아들, 아빠 안 볼거야?
파파가 나한테 거짓말 해써!
아빠가 언제 거짓말 했어.
파파가, 어, 안 아프다구 핸는데.
아들 요정 안 볼거야?
태형의 마지막 말에 숨 막힐 정도로 얼굴을 파묻고 있던 도하가 슬쩍 태형을 봤다. 태형은 이를 들어보였다.
이제 이거를 아들 베개 밑에 넣어놓고 자면 다음날 요정이 선물 두고 간다니까?
...지짜야?
진짜라니까. 아들 뭐 가지고 싶은 거 있어?
...히리스.
...엉?
히리스.
태형은 영문 모를 표정으로 지민을 바라봤다. 그거, 바퀴달린 신발.
아 그거 이름이 히리스였어?
힐리스. 요즘 애들 그거 타고 다닌다고 난리야. 조금만 밖에 나가도 애들 다 그거 신고 다니고.
도하 그거 가지고 싶어? 요정한테 부탁해볼까?
부탁 하 쑤 이써?
이제는 아예 지민의 품에서 얼굴을 완전히 떼고 태형을 바라본 도하가 아직 울음기 남은 목소리로 물었다. 지민이 눈초리 끝에 매달린 눈물을 살짝 닦아주었다. 태형이 자리에서 일어나 도하의 방에서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가져왔다. 아들이 요정한테 편지 써볼래?
편지?
요정한테 보물 베개 밑에 넣어놨으니까 선물 주세요- 하고 편지 써봐.
그럼 히리스 조?
도하가 원하는 거면 주지.
도하는 제 작은 팔뚝으로 눈가를 닦아낸 후 거실에 있는 제 책상에 앉았다. 태형이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도하는 크레파스 색 하나 고르는데도 고심에 고심을 했다. 결국 연두색을 고른 도하는 천천히 크레파스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요정님 도하 히리쓰 가꼬 시퍼요 보물 배개 미테 놨둬쓰니까 도하 히리쓰 주세요]
머리까지 부여잡으면서 진지하게 편지를 쓴 도하는 잘 접어서 다다다 제 방으로 달려가 침대 옆에 있는 협탁에 고이 편지를 두었다. 다시 다다다 방 밖으로 나온 도하는 지민의 다리를 안고 고개를 들어 지민을 바라봤다. 마마, 그러엄 내일 도하 히리스 이써? 지민은 도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럼, 요정은 항상 약속을 잘 지킨단다.
***
지민은 지금 당장이라도 뒷목 잡고 쓰러질 것 같았다. 힐리스라니, 힐리스라니! 지민은 백화점으로 가 좌르륵 진열되어 있는 힐리스를 불태워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태형은 누가 봐도 기분 안 좋아 보이는 지민에, 괜시리 눈치만 봤다. 후. 지민이 깊게 숨을 내쉴 때마다 태형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내가 이런 식으로 힐리스를 살줄은 몰랐는데.
......
아-주 신박했어, 김태형. 요정의 선물이라니. 아-주 그럴듯해서 나도 믿을 뻔 했네.
그, 그래도 도하가 그렇게 가지고 싶어 하는데.
하아. 지민은 대답 없이 한숨만 쉰 채 바로 앞에 있는 힐리스 한 짝을 들어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사실 도하가 힐리스 가지고 싶다고 말한 것은 몇 주 전부터였다. 어디서 그런 신발을 보고 왔는지 집에 들어오자마자 힐리스 힐리스 노래를 부르는 도하에, 지민은 순간 그게 뭔가 싶었다. 도하가 말하는 힐리스가 자신이 요만한 나이였을 때 유행하던 바퀴 달린 신발이란 것을 깨달았을 때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게 또 유행이야? 뭐 또 어디 티비에서 그거 신고 나온 사람이 있나. 아 하긴 유행은 돌고 돈다더니 그게 또 유행을 하는 건가. 아, 나도 어렸을 때 그거 가지고 싶었는데. 어렸을 때 그거 없는 애들이 없었지. 아 애들 그것 때문에 엄청 다쳤었는데. 잠깐만 도하가 그거 타다가 많이 넘어지면 어떡하지. 우리 애 무릎에 흉 지면 어떡하지. 그거 되게 위험한 신발이잖아. 하고 생각이 생각을 물고 끝도 없이 이어졌었다. 결국 결론은 도하가 다치니까 그 신발을 사주면 안 된다, 였다. 확실히 부모의 입장이 되어보니 생각하는 것이 달랐다. 자신도 옛날에 힐리스 사달라고 떼를 썼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참 몹쓸 짓이었다.
여하튼 그걸로 지민과 도하는 자주 싸웠다. 아니 어른과 아이 사이에 싸웠다라고 말하기는 힘들고, 도하가 떼를 쓰고 지민은 단호했다. 그런 위험한 운동화는 절대 사줄 수 없다는 게 지민의 생각이었고, 자기 친구들은 다 있는데 자신만 없다는 게 도하의 입장이었다. 지민은 부러 태형에게 말하지 않았다. 태형에게 말하면 앞뒤 안 재고 그 자리에서 도하 손잡고 백화점 갈 사람이었다. 도하도 어찌 된 일인지 태형에게 사달라고 조르지는 않았다. 이제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사는데 있어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사람이 지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아빠한테 사달라고 해도 엄마가 안 된다 하면 결국 안 사준다는 것을 알아차린 거지.
한동안 힐리스 얘기를 안 꺼내길래 포기한 줄 알았는데 이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힐리스 얘기가 나왔으니, 지민은 결국 항복했다. 도하 보고 싶다고 난리인 친한 형한테 도하를 맡기고 태형과 백화점을 와서 힐리스를 사러 온 것이다. 이왕이면 더 좋고, 더 안전한 것으로. 지민은 눈에 불을 켜고 힐리스를 찾아다녔다. 야, 그래도 바퀴 달린 신발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냐. 태형의 말에 지민은 태형을 째려봤다. 그래도 우리 도하는 더 좋고 더 안전하고 더 예쁜 걸 신겨야지.
예쁘게 포장한 선물을 잘 숨겨놓고 도하를 데려왔다. 자기는 안 잘 거라고, 요정 볼 거라고 온갖 떼를 쓰는 도하를 어르고 얼러 재웠다. 와 진짜 누구 닮아서 저렇게 고집이 오지냐. 지민은 방에서 나오면서 중얼거렸다. 너 아니면 나겠지, 누굴 닮았겠냐. 태형의 말에 지민이 헛웃음을 뱉었다. 하긴, 그런 성격이 어디 뱃속에서 나고 태어나겠냐, 환경 탓이 크겠지.
그들은 재빨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어찌됐든 자신들이 벌인 일이었다. 한번 입 밖에 뱉었으니 도하를 실망시키는 일은 없어야 했다. 태형은 백화점에서 산 붓과 포스트 물감을 꺼냈다. 아, 근데 그거 왜 샀어? 지민은 선물상자를 꺼내오며 물었다. 태형은 씨익 웃었다.
내가 아까 검색해봤거든. 외국에서는 요정 발자국을 그려놓기도 한다더라.
아, 진짜?
그래서 협탁에 엄청 작은 발바닥 좀 그리려고. 아, 지민아. 너는 편지 좀 써줘.
어? 무슨 편지?
요정한테서 온 편지 말이야. 애 저렇게 잔뜩 설레게 해 놓았으니까 제대로 해야 할 거 아니야. 요정이 왔다간다고 편지 써.
허...
지민은 바람 빠진 웃음을 지으며 도하 책상에 널브러져 있는 스케치북을 한 장 부욱 찢었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라지만 정말 제대로다. 지민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크레파스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혹시나 도하가 제 글씨체를 알아볼 수도 있으니 일부러 글씨도 다르게 썼다.
[보물 잘 간직해 줘서 고마워. 도하가 가지고 싶었던 선물 두고 갈게. 예쁘게 잘 쓰렴! -이빨 요정-]
이거면 됐지? 지민이 종이를 건네자 태형이 근처에 굴러다니는 포스트잇 하나를 떼서 주었다. 야, 글씨 작게 해야지 이건 누가 봐도 사람이 쓴 거잖아. 오. 지민은 그럴듯하다며 다시 조그마한 글씨체로 쓰기 시작했다. 태형은 도하의 방에 숨죽이고 들어가 협탁 앞에 조심히 앉았다. 숨도 거의 참은 채 작은 붓으로 협탁에 발바닥 모양을 그리기 시작했다. 핸드폰 불빛으로 비춰가며 열중해서 그리는 뒷모습을 지민이 몰래 찍었다. 진짜 저런 집중력으로 공부 했으면 진즉 서울대 갔겠다. 뒤에서 작게 들리는 지민의 목소리에 태형이 푸스스 웃었다. 야 내가 대학교 못 갔냐, 안 갔지. 태형이 속삭이듯 하는 말에 지민이 풉 웃었다. 그래 그래.
몇 발자국 끝에 선물을 둔 태형은 도하의 베개 밑에 살짝 손을 넣어서 이를 뺀 후 후다닥 방을 나왔다. 방문을 닫고 나서야 후, 숨을 제대로 몰아쉰 태형이 뿌듯한 표정으로 이를 내밀었다. 수고했어. 지민이 그의 어깨를 두들겨주었다.
우와아아아아!!!!
난데없는 함성에 늘어지게 자고 있던 태형과 지민은 화들짝 놀라며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파파! 도하는 커다란 상자를 품에 안은 채 방 문을 열고 침대로 뛰어왔다. 어어, 조심 조심! 지민이 팔을 벌려 몸을 날리는 도하를 안아주었다. 마마 이거 바, 선물 선물! 잔뜩 흥분한 채 말을 잇던 도하는 지민의 배에 등을 기대고 선물 포장지를 마구잡이로 뜯기 시작했다. 태형은 부스스한 머리를 대충 손으로 누르다가 부어 있는 지민의 눈을 보고 뒤로 넘어가며 웃었다. 너 오늘따라 왜 이렇게 부었냐. 태형의 말에 지민은 그의 배를 퍽 내리쳤다. 놀리지 마.
마마... 이거 지짜 내꼬야?
그럼. 요정이 직접 도하한테 준 거잖아.
마마 이거 지짜 나 써두 대?
당연하지. 우리 도하 좋겠네. 요정한테 힐리스도 받고.
꺄아!
도하는 소리를 지르며 침대에서 내려와 바로 운동화를 신기 시작했다. 마마 이거 지짜 이뽀, 칭구들 중에서 내가 제일 이뽀! 운동화를 신은 채 발을 구르며 하는 소리에 지민은 결국 웃어보였다. 우리 도하는 뭘 신어도 예뻐, 대신 집 안에서는 신발 신는 거 아니라고 했죠? 지민의 말에 도하는 후다닥 신발을 벗었다. 파파 빠리 밥 해조, 나 이거 신고 놀러 갈래! 도하의 재촉에 아직 제대로 눈을 못 뜬 태형이 주섬주섬 이불을 젖히고 침대 밖을 나왔다. 방 밖을 나가는 태형의 뒤로 도하가 쫄래쫄래 따라갔다. 파파 이고 바 지짜 요정이 선물 조써! 막막 침대 옆에 요정 발모양도 이써써! 요정은 발모양이 노란색이야! 파파 내 방 와바! 도하의 목소리가 방 밖까지 크게 들려왔다. 침대에 멍하니 앉아있던 지민은 결국 풋 웃고 말았다. 누구 아들이길래 저렇게 귀엽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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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분량조절 실패
도하 7살
태형 지민 24살
도하 이 빠진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