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육아물

뷔민 말도 안되는 육아물 썰14

글하 2017. 9. 8. 00:34



새벽, 깜깜한 방에 갑자기 눈 시린 빛이 터졌다. 지민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제 옆에 있는 폰을 집어 들었다. [지민아 자?] 제 앞으로 온 문자 하나에 잠이 확 달아나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앞뒤 생각도 않고 무작정 방문을 열고 밖을 나갔다.

제 집 앞 담벼락에 기대어 쪼그려 앉아있는 태형을 발견한 지민은 후 한숨을 쉬며 다가갔다. 인기척을 느낀 태형이 고개를 들어 지민을 발견하자 헤 웃어보였다. 지민은 그런 표정을 짓는 태형이 못내 속상했다. 얼굴 다 쥐어 터져 가지고는 뭐가 좋아서 웃는 건데. 지민은 태형의 앞에 쭈그려 앉아 괜히 틱틱 거렸다. 안 그런 척 해도 그의 말 속에 속상함이 잔뜩 묻어 있어 태형은 씁쓸하게 웃었다. 들어와. 지민은 자리에 일어나 태형에게 손을 뻗었다. 태형은 제 앞에 내밀어진 손을 가만히 올려다보다가 손을 잡고 일어났다

 

거실에 무드등만 켜놓은 채 태형을 소파에 앉히고 약통을 찾기 시작했다. 태형은 가만히 분주한 지민의 뒷모습만 바라봤다. 서랍을 열어 약통을 꺼낸 지민은 조심스레 태형에게 다가갔다.  너 얻어터지고 오지 말라고 했지. 지민의 화난 목소리에도 태형은 생글생글 거리기만 했다. 연고를 짜서 면봉에 묻힌 지민이 가만히 태형을 올려다봤다. 입가는 터지고 눈 주위와 볼에 생채기가 나 있다. 지민은 인상을 찌푸리며 터진 부위에 살살 연고를 바르기 시작했다. 아으... 아프겠다. 시시각각 변하는 지민의 표정에 태형은 결국 피식 웃어버렸다. 지민이 찌릿 태형을 노려봤다.

 

 

뭘 잘했다고 웃어. 너 지금 이게 웃겨? ? 이렇게 얻어터지고서 지금 웃음이 나오냐고.

 

왜 네가 더 아파해.

 

그럼 아프지, ? 친구가 매번 이렇게 얻어터져서 오는데.

 

......

 

맞고 다니지 말라고. 네가 뭐가 아쉬워서 그딴 새끼한테 맞고 다녀.

 

그딴 새끼라고 하지 마. 우리 형이야.

 

뭐래, 너는 그런 쌍놈한테 아직도 우리 형이라는 말이 나와? 그리고 네 형이지, 내 형이냐? 나한테는 내 소중한 사람 이유도 없이 패는 개새끼일 뿐이야.

 

......

 

나 지금 엄청 화났으니까 내 앞에서 한번만 더 그 사람 감싸면 진짜 너 팰거야.

 

 

도끼눈 뜨고 보는 지민을 물끄러미 보던 태형이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그의 입가에 면봉으로 약을 살살 발라주던 지민은 갑작스런 그의 온기에 손을 멈칫했다. 눈을 살짝 들어 태형을 바라봤다. 두 시선이 맞닿은 순간 지민은 속에서 무언가 울컥 올라오는 느낌을 받았다. 지민은 그 울컥함을 숨기지 않고 느끼는 그대로를 쏟아냈다. 지민은 태형의 두 어깨에 손을 올리고 그에게 기대었다. 태형은 순간 당황했지만 이윽고 작게 들리는 지민의 흐느끼는 소리에, 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가늘게 흐느끼던 소리가 점점 커졌다. 태형은 아예 두 팔로 지민을 꽉 안았다. 태형은 울지 않았다. 지민은 태형의 그런 점까지 안타까웠다. 그는 우는 방법조차 알지 못하는 아이였다. , 지금도. 너 때문에 울고 있는 나를 위로하는 것 밖에 못하잖아.

 

 

 

 

 

지민은 태형의 집안을 증오했다. 태형의 집안이 알아주는 명문가 집안이든 재벌이든 그런 건 상관없었다. 지민에게 있어서 그들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친구의 존재를 부정하고 없애려는 악마일 뿐이었다. 어렸을 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좋은 집에서 살면서 왜 태형은 한 번도 웃지를 않았고, 행복한 표정을 짓지 않는지. 왜 그는 자신의 가정을 그렇게 필사적으로 숨기려 했는지. 지민은 그와 친해지게 되면서, 머리가 크면서 서서히 알게 되었다. 태형은 그 집안에서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었고, 약하기만 한 태형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들을 향한 증오마저 하지 못하는 여린 태형 대신 지민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것이 못내 슬펐다. 태형만큼 지민 자신도 어리기만 한 고등학생이라서, 너무 화가 났다.

 

 

나 오늘 너희 집에서 자고 가면 안돼?

 

 

그의 품에 기대어 듣는 그의 목소리는 낮고도 잔잔히 울렸다. 지민은 대충 눈가를 훔치고 고개를 들어 태형을 마주봤다. 당연히 되지. 지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뻗었다. 태형은 그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이 자자. 지민은 그를 이끌며 말했다. 태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분명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태형의 방에 비하면 지민의 방은 훨씬 작았고 침대도 제 방 침대의 반도 안되는 크기지만, 태형은 그 어느 곳보다 편안한 곳이었다. 공허하고 차갑기만 한 제 방과는 달리 따뜻하고 포근했다. 같이 붙어서 잘 때의 그 온기가 좋았다. 태형은 옆으로 누워, 정면을 보고 잠이 든 지민은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어스름한 새벽빛에 그의 얼굴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가 가끔씩 내쉬는 숨소리가 고요한 새벽과 잘 어울렸다. 고요했다. 하루하루 지옥과도 같은 그곳에서 벗어나 이곳으로 오면 항상 평화로웠고 고요했다. 태형은 살짝 눈을 감았다. 오늘은 불안에 잠을 설치지 않아도 되었다.

 

 

 

아침에 지민이 타 준 시리얼을 먹으며 잠을 쫓으려 애를 썼다. 지민은 부모님과 전화 통화 중이었다. 지민의 부모님은 정확히 어떤 일을 하시는지 태형은 잘 모르지만 세계 곳곳을 다니는 일인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집에 있는 일이 거의 드물었다. 밥 제 때 챙겨 먹고 있어요. 제가 어린애인가요 뭐. 나도 이제 고등학생이에요. 그래, 엄마 아들 벌써 고등학생이야. 아니 태형이랑 같이 있어요.

 

태형은 갑자기 나온 제 이름에 고개를 들어 지민을 바라봤다. 지민은 태형을 힐끔힐끔 보면서 전화 통화를 이어나갔다. , 나도 사랑해요. 거실에서 전화 통화를 한 지민이 전화를 끊고 부엌으로 들어왔다. 태형이 의문 가득한 눈을 한 채 지민을 올려다보자, 지민이 별 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엄마가 누구랑 같이 있냐고 물어 보길래. 아아. 태형은 다시 시리얼을 먹기 시작했다. 지민은 찬찬히 태형의 얼굴을 뜯어봤다. 아 입가는 그렇다 치고 눈가에 상처 흉 질 것 같은데. 볼에 멍 봐 진짜, 애를 대체 어떻게 때렸으면... 태형은 얼굴에 느껴지는 뜨거운 시선에 슬쩍 눈만 굴려 지민을 쳐다봤다. 지민은 자신이 더 아픈 얼굴을 하며 태형의 상처를 하나하나 보고 있었다.

 

 

그만 봐. 체하겠다.

 

너 학교에서 또 쓸데 없는 소리 들을 것 같아서 너무 걱정돼.

 

내가 알아서 할게.

 

또 패싸움 했다고 그러게?

 

몰라.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는 듯 꾹 입을 다문 태형의 표정에 단호함까지 보여 지민은 더 이상 그에게 무어라 말할 수 없었다. 지민은 괜히 제 두 손가락으로 장난만 치며 힐끗힐끗 태형의 눈치를 보다 결국 입을 열었다.

 

 

솔직히 내가 너한테 이런 오지랖까지 부려도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괜찮아.

 

그냥...

 

.

 

그냥... 그 집 나오면 안돼?

 

 

 

 

 

 

 

 

 

 

***

 

 

 

 

 

 

 

 

 

 

뭔가가 꼬물꼬물 품속에 파고드는 느낌이 들어 태형은 살짝 몸부림치며 눈을 떴다.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뜨니 검은 무언가가 시야에 훅 나타났다. 파파? 언제 들어도 귀여운 목소리가 들리자 태형은 절로 웃음이 나왔다. 푸스스 숨이 새어나오는 웃음소리에 도하도 꺄르르 웃으며 태형의 품을 더욱 파고들었다. 태형도 바로 팔을 들어 도하를 안아주었다. 어린아이다운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엄마는? 태형은 잠긴 목소리로 물어봤다. 얼마나 깊게 잠이 들었는지, 목소리가 갈라지기까지 했다. 도하는 몸을 꿈틀거리며 웅얼거렸다. 뭐라고? 태형이 다시 묻자 안방 문이 열리면서 기대 서 있던 지민이 보였다. 도하야 아빠 깨... . 지민은 눈이 팅팅 부은 태형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태형은 아직도 멍한 눈으로 지민을 쳐다봤다.

 

 

일어났으면 빨리 나올 것이지.

 

금방 일어났어.

 

아침 먹어. 도하도 얼른 나와서 같이 아침 먹어요.

 

.

 

 

도하는 꾸물꾸물 태형의 품에서 나와 침대에 폴짝 뛰어내렸다. 마마 오늘 아침 머에요? 고개를 확 치켜들고 물어보는 도하에, 지민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도하가 좋아하는 오므라이스 해봤어요. 오므라이스! 지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부엌으로 다다다 달려가는 도하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보던 지민이 고개를 돌려 다시 태형을 바라봤다. 조금은 정신이 드는지 눈에 생기가 도는 태형에게 손짓했다. 너도 빨리 나와. 태형은 꼼짝 않고 손짓했다. ? 지민이 태형에게 다가갔다. 침대 바로 앞까지 다가온 지민의 손목을 확 잡아당긴 태형은 엎어지는 지민을 꽉 안고 침대에 뒹굴뒹굴 거렸다. 아 깜짝아 진짜!! 지민이 등짝을 퍽퍽 때려도 뭐가 좋다고 킬킬 대며 뒹굴던 태형은 지민을 눕히고 그를 내려다 봤다. 뭐야. 지민이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태형을 올려다봤다. 으흐흫. 태형은 작게 웃으며 지민의 볼에 가볍게 뽀뽀했다. 아침부터 왜 이래. 지민은 태형을 밀어내는 듯하면서도 기분 좋은지 거부하지는 않았다. 태형은 이마에, 양 볼에, 코에, 입술에 마구마구 뽀뽀를 퍼부었다. 지민은 태형의 양 볼을 감싸 잡으며 눈을 감았다

 

도하두 뽀뽀!

 

방문 앞에서 들리는 소리에 둘은 화들짝 놀라 문 쪽을 바라봤다. 숟가락을 들고 있는 도하가 다다다 뛰어와 침대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나두 마마 뽀뽀. 도하가 지민의 입술에 쪽 뽀뽀하자 지민이 눈까지 접어 으하핳 웃었다. 아들 아빠한테는. 태형이 고개를 도하 쪽으로 돌리고 눈을 감자, 도하가 태형의 입술에도 쪽 뽀뽀를 해주었다. 아침 먹자. 지민이 태형을 살짝 밀어내며 하는 말에 태형이 자연스레 자리를 비켜주었다. 도하를 안은 채 자리에 일어나 방을 나서는 지민의 뒤를 따르던 태형은, 그가 하고 있는 앞치마의 두 끈을 잡았다. 지민이 살짝 놀라며 고개만 돌려 태형을 바라봤다. 살짝 미소 지은 태형이 앞치마를 묶기 시작했다.

 

 

앞치마 끈이 풀려서.

 

아아..

 

 

앞치마 끈을 묶던 태형은 지민의 품에 안겨 어깨에 얼굴을 얹고 있던 도하와 눈이 마주쳤다. 태형은 싱긋 웃어주었다. . 도하도 제 아빠 따라 웃었다.

 

 

 

 

 

태형은 요즘 사진에 푹 파졌다. 그저 도하나 지민과의 추억을 담기 위한 수단만이 아닌 전문적인 사진 기술을 배우고 싶어 했다. 처음에 태형이 지민에게 그 이야기를 했을 때, 지민은 박수까지 치며 너무 좋아했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 너무 기쁘다며,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등을 토닥여줬었다. 태형은 마치 자기 일처럼 좋아하는 지민을 보고 어쩐지 코가 찡해져 그를 팍 안았었다.

 

아마 태형이 사진에 더 빠지게 된 계기는 도하의 화보 촬영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날, 키즈 모델 제의를 받고 한 번 가본 적 있다. 도하는 워낙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사진 찍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었지만, 촬영 분위기 자체를 너무 낯설어 해서 애를 먹었다. 도하는 모델이랑 맞지 않는 것 같아 그 이후로 촬영은 하지 않았지만 태형은 그 날 나온 사진을 너무 좋아했다. 우리 아들 이렇게 잘 생겼다고, 제대로 각 잡고 찍으니까 누구 아들인지 벌써부터 태가 난다고.

 

거실에 모로 누워 티비를 보고 있는 지민과 도하를 저 멀리 식탁에 앉아 찍는 태형의 표정은 프로처럼 진지했다. 찰칵 소리가 나자 둘 다 똑같은 자세로 자신을 보는 것이 웃겨서 태형은 푸핫 웃음을 터뜨렸다. 야 넌 뭘 이런 걸 찍냐. 지민의 불퉁한 소리에 태형은 소리 없이 웃기만 했다. 잘 나왔어, 이뻐. 방금 찍은 사진을 확인하며 말하는 태형에, 지민은 바로 자리에 일어나 태형에게 다가갔다. 태형을 재빨리 카메라를 몸 쪽으로 숨기며 방어태세를 취했다.

 

 

아니 사진만 보자고.

 

너 또 마음에 안 든다고 다 지울 거잖아.

 

네가 별 이상한 거 다 찍으니까 그러는 거 아니야.

 

뭐가 이상한거야. 예쁘기만 한데.

 

파파 도하 찍어조.

 

그래, 우리 아들.

 

 

도하가 거실에서 자세를 취하자 태형이 바로 카메라를 들었다. 지민은 살짝 옆으로 나와 도하를 바라봤다. 이리저리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수준급이다. 지민은 피실피실 웃으며 제 폰도 들어 찰칵찰칵 도하를 찍기 시작했다.

 

진지한 표정을 찍은 사진들을 확인하는 태형의 뒤에 가 섰다. 카메라 화면에 방금 찍은 도하가 보였다. . 지민은 감탄을 하며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너 제대로 사진 배워봐.

 

...

 

사진 좋아하잖아. 전문적으로 배워도 취미로 할 수 있는 거고. 너 솔직히 돈 벌 욕심은 없잖아.

 

없지. 근데 도하 좀 더 크면 하려고. 도하가 더 커서 친구들과 있는 시간이 더 길어질 때. 그 때부터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

 

 

지민은 무안함에 머리를 긁적였다. 지민은 자신이 인식 못하는 새에 태형이 말도 안 되게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옛날에도 생각이 깊은 편이었지만 여러 이유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그저 방황만 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지민이 그를 잡아줬었다. 사실 잡아주었다 하기도 뭣했다. 그 때의 지민도 태형과 같은 아이였다. 그저 태형이 힘들어 할 때마다, 방황을 할 때마다, 옆에 있어주는 것뿐이었다.

 

도하를 키우기 시작한 후부터 태형은 많은 것이 변했다매일을 방황하던 태형은 이제 없었다. 도하를 끌어안고 처음으로 행복하다는 말을 한 태형을 보고, 지민은 한참을 울었었다. 어찌 보면 일상에 흔하게 느낄 그 행복이십몇 년이 지난 지금 처음으로 깨달았을 그 감정에, 지민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밀물처럼 밀려와 그대로 밖으로 쏟아내었다태형은 오열을 하는 지민을 한참 바라봤었다. 태형은 그런 지민을 보면서도 느꼈다.  한 명을 위해 울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구나.

 

태형의 삶은 항상 치열했다. 자신을 바닥끝까지 떨어뜨려 버리는, 제 모든 것을 천천히 어둠에 잠식 시키는 그들에게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그는 매 순간을 많은 것들과 싸웠다. 좋아하는 일이나 하고 싶은 일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내일을 살아가기 위해 매 번 치열했던 자신에게 지민과 도하는 더 이상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태형에게 지민과 도하는 그의 전부였다.

 

 

 

세 가족은 매 주 주말마다 가까운 공원에 산책을 갔다. 중요한 일이 없으면 주말만큼은 무조건 가족이랑 보내자는 규칙을 만들었고, 그들은 최대한 그 규칙을 지키려 했다.

 

도하, 옷 갈아입고 오세요. 지민의 말에 도하가 방에 다다다 달려갔다. 마마 모 입어? 도하 마음에 드는 옷 입으면 되죠. 도하는 제 옷장을 열어 옷을 마구 헤집어 자신이 좋아하는 동물 귀 후드티와 청멜빵바지를 가지고 나왔다. 도하 양말도 가지고 나와야죠. 지민의 말에 도하는 다시 방에 들어갔다가 흰 양말을 들고 나왔다. 도하가 옷 입을 수 있죠? 지민의 말에 옷을 한아름 품고 있던 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하는 거실 소파에 걸터앉아 후드티로 갈아입고 멜빵바지를 입었다. 멀리서 도하를 가만히 바라보던 지민은 도하가 다 입은 것을 보고 나서야 제 방으로 들어갔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바지 갈아입다가 중심 못 잡고 휘청거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나름의 방법으로 잘 입는 것을 보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민과 태형도 준비를 다 하고 나서 거실로 나왔다. 소파에 앉아 다리를 달랑거리던 도하는 그들이 나오자 폴짝 뛰어내려와 현관으로 달려갔다.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신발을 꺼내 신는다. 뿅뿅이! 도하는 흰색 신발을 꺼내어 바닥에 앉아 천천히 신발을 발에 끼웠다. 도하는 걸을 때마다 뿅뿅 소리가 나는 그 신발을 좋아했다. 도하가 좋아하는 병아리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더 그랬다. 이고 마마 이고 도하. 언젠가 신발을 사면서 그려진 병아리 두 마리를 가리키며 얘기하는 도하에, 태형은 왜 아빠가 없냐고 했었다. 그 다음날 도하의 신발에 닭이 생겼다.

 

지민은 가만히 도하가 신발 신는 것을 보다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설사 도하가 들을까 조용히. 도하, 신발 잘 신었어요? 지민의 물음에 네에 도하가 대답했다.

 

 

어디 불편한 거 없어요?

 

... 엄는데...

 

삐약이가 안에 있는데요?

 

.

 

 

도하는 다시 자리에 앉아 신발을 바꿔 신었다. 아직 왼쪽 오른쪽 구분을 못하는 게 왜 이렇게 귀여운지 모르겠다. 지민은 쭈그려 앉아 도하의 볼에 쪽 뽀뽀했다. 도하가 꺄르르 웃었다. 아 뭐야, 뽀뽀 할 거면 미리 말하라고 했잖아. 카메라 챙긴다며 다시 방에 들어갔다가 나온 태형이 투정부리듯 말했다. 아니 무슨 이것까지 너한테 일일이 다 보고해. 지민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사진 찍어야해. 다시 해봐.

 

뭘 다시 해. 나중에 나중에.

 

배경 예쁜데서 해줘.

 

알았다니까.

 

 

빨리 나갈 준비나 해. 지민의 말에 태형이 해맑게 웃으며 신발을 신었다. 파파 안아주. 도하의 말에 태형이 도하를 안아들었다. 우리 아들, 아직도 아빠랑 같이 있고 싶구나? 지민이 대신 태형의 카메라를 들고 밖을 나갔다. 햇살이 적당히 따뜻하고 바람이 적당히 불며 하늘이 푸르고 구름이 적당히 있는, 산책하기 좋은 날이었다. 이런 날이면 태형의 사진사랑은 더욱 커진다.

 

옛날에는 폰을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면 이제는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자세를 잡고 저 멀리서 자유롭게 놀고 있는 지민과 도하를 찍었다. 어떠한 요구나 의도 없이 그저 움직이는 로 나오는 자연스러운 모습이 제일 예뻤다. 도하가 점점 크는 모습, 지민이와 함께 있는 모습,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그들을 사진에 담다보니 용량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긴 하지만 절대 지우거나 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을 담은 사진을, 남들이 보면서 자신과 똑같은 감정을 느꼈으면 했다. 그들에게서 얻은 위로, 사랑, 행복 등등. 남들도 그런 따뜻한 마음을 느끼고 자신의 사진을 좋아하는 것을 알기에.

 

손을 잡고 길을 걷는 모습을 담았다. 도하가 길가를 다른 손으로 가리키더니 그 쪽으로 다가갔다. 둘 다 똑같은 자세로 쭈그려 아 무언가를 내려다봤다. 태형은 조용히 그들의 곁으로 다가갔다. 노오란 작은 들꽃을 보고 있었다. 뭐라 뭐라 소곤소곤 대화하는 것이 들렸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또 한 번 카메라에 담았다. 둘이서 비밀 대화를 하듯 속닥속닥 거리다 도하가 해맑게 웃었다. 지민도 도하 따라 웃다가 쭈그려 앉은 자세 그대로 도하의 입술에 쪽 뽀뽀했다. 헐 씨발. 태형은 놓치지 않고 바로 셔터를 누고 급히 화면을 봤다. 하씨, 성공했어. 너무 예쁘게 나온 그림에 태형은 눈가를 문질렀다. 아 너무 귀여워서 눈물 날 것 같아... 다른 건 몰라도 이건 꼭 인스타에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민의 뽀뽀를 받은 도하가 꺄르르 웃더니 자리에 일어나 지민의 두 볼을 잡고 또 쪽 뽀뽀했다. 으갸걐걍앜 태형은 바로 셔터를 촤라락 눌렀다. 이번에도 제대로 잘 찍혔다. 어허헣ㅎ허헣 어떡해, 너무 예뻐. 예뻐서 숨이 턱턱 막힌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저렇게 귀여운 걸 보면 원래 이렇게 숨이 넘어갈 것 같나. 태형은 으헝 우는 소리를 내며 찍은 사진들을 하나씩 돌려봤다. 솔직히 내가 객관적일 수는 없겠지만 객관적으로 너무 예쁘다.

 

지민은 멀지 않은 곳에서 가만히 서서 카메라만 내려다보고 있는 태형을 발견했다. 태형아. 나긋한 지민의 목소리에 태형이 고개를 들었다. 이리로 와. 천천히 손을 까딱이며 하는 말에 태형은 결국 그들에게 뛰어갔다.

 

 

 

 

 

지민아, 나 이 사진 인스타에 올려도 돼?

 

태형의 물음에 설거지를 하고 있던 지민이 제 앞으로 내밀어진 핸드폰을 봤다. 이건 또 언제 찍었데? 지민은 자신이 봐도 잘 나왔다고 생각했는지 마음에 드는 표정이었다. 그의 표정을 보니 태형은 더욱 뿌듯해졌다. 오늘 하늘도 예쁘고 너랑 도하도 예뻐서 사진이 잘 나왔어.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는 어린 아들처럼 칭찬해달라는 듯 사진을 보여주는 모습에, 지민은 절로 웃음이 나왔다. 어디 보자. 지민은 아예 고무장갑까지 벗어서 폰을 잡고 제대로 보기 시작했다.

 

 

내가 봤을 때 너 정말 사진에 소질이 있는 것 같아.

 

나는 그냥 보이는 대로 찍는 것뿐인데 뭐.

 

예쁘네.

 

그럼, 예쁘지. 지민이랑 도하는 항상 예뻐.

 

... 가끔 그렇게 대놓고 이야기를 하면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태형은 얼굴이 붉어져 쑥스러워 어쩔 줄 몰라 하는 지민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귀엽잖아. 저 때문에 안 그래도 홍조 있는 볼이 더욱 불그스름해지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사랑스럽다는 것은 지민이 같은 사람을 보고 만든 것이 분명했다. 올려도 돼? 태형이 다시 물었다. 지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 딱히 많이 안 나와서 뭐... 에잇, 혹여나 들키면 뭐 어때. 내가 못할 짓 하는 것도 아닌데. 아직 진짜 선생님인 것도 아니고. 진짜 선생님 된다고 해도 그게 나쁜 것도 아니고.

 

정말 괜찮아?

 

너 올리고 싶은 대로 올려도 돼. 우리 가족 자랑 많이 해. 우리 이렇게 산다고.

 

그래!

 

 

누가 봐도 기쁜 표정으로 폰을 만지는 모습을 본 지민은 살풋 웃으며 다시 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근데 나 빈말 아니고 나중에라도 진짜 사진 공부해봐. 지민의 옆에서 싱크대에 기대 서 있던 태형이 지민을 바라봤다. 지민은 계속 설거지 하면서 말을 이었다.

 

 

제대로 배우면 더 좋을 것 같아서. 너도 재밌어 하는 것 같고.

 

.

 

네가 도하 더 크고 여유 생기면 한다고 하니까 더 말은 안하는데. 난 솔직히 아까워. 너 아직 어리고,

 

어린 게 아니라 젊은 거지.

 

그래, 아직 많이 젊고 뭘 해도 되는 때인데. 좀 아깝잖아. 나도 나 하고 싶은 거 찾아서 하는데 태형이 너도 하고 싶은 거 찾아서 해도 늦지 않으니까.

 

지민이가 무슨 말 하고 싶어 하는지 알아.

 

......

 

근데 나 정말로 지금 이렇게 사는 거 진짜 행복하거든. 사실 내일 같은 거 생각 안 해. 도하랑 너랑 이렇게 사는 거 충분히 재밌고 행복해. 너나 도하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거 못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도 너무 분에 넘치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이야.

 

......

 

사진은 정말 도하가 혼자서도 잘할 수 있는 나이가 오면. 그 때. 내가 하고 싶은 거 할 거야. 이것도 정말이야. 나 생각해둔 거 있거든. 나 이제 정말로 잘할 수 있으니까. 나 믿어줘 지민아.

 

......

 

아 근데 지민이 네가 없으면 안 돼. 알지?

 

 

깜찍하게 윙크까지 하면서 말하는 태형을 더 이상 이길 수 없다. 지민은 헛웃음을 치며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넌 이때까지 잘해왔으니까 앞으로도 잘해 올 거야. 지민이 말에 태형은 여전히 햇살 같은 미소로 폰을 보여주었다. 지민과 도하가 뽀뽀하는 사진과 함께 여러 해시태그가 적혀있는 인스타가 보였다.

 

#우리 #아들 #도하 #내새끼 #그리고 #내사람 #뽀뽀 #예뻐 #귀여워 #세젤귀 #사랑 #일상 #산책 #언제나 #함께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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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에요...

특히나 육아물은 정말 오랜만이네요...

면목이 없습니당 어디론가 숨고 싶네

육아물은 오래오래 하고 싶은데

생각나는 소재가 나노단위라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지 힘드네요.

너무 오랜만이라 재미는 보장 못합니다...ㅎ 죄송해요ㅠㅠ

현생이 바빠서 자주 못 오는게 너무 한이네요

그래도 꾸준히 창고 채우겠습니다ㅎㅎ

 

사실 음지 블로그에서 양지 이야기는 최대한 자제하려 했지만

오늘 애들 컴포가 뜨기도 했으니까요

너무 예쁘네요 애들은 언제나 예뻤지만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