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민 말도 안되는 육아물 썰
길/육아물띡띡띡띡-
흐릿하게 들리는 도어락 소리에 소파와 물아일체 되어 티비 채널만 돌리고 있던 태형이 벌떡 자리에 일어났다. 어마! 아이가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달려갔다. 미친 왜 벌써 와! 태형은 속으로 절규를 하며 거실에 널브러져 있던 장난감을 싹 쓸어 후다닥 방에 다 던져 넣었다. 문을 쾅 닫고 기대는 순간, 아이를 안은 채 들어오는 지민과 눈이 마주쳤다. 와 씨, 타이밍 개지린다. 태형은 속으로 안도했다.
뭐야, 멍청하게 왜 거기 서 있어.
어, 어? 그, 그냥 네 마중...
지...웃기고 있네.
지민은 아이를 생각하며 목구멍까지 턱 올라온 욕을 애써 집어삼키며 거실로 갔다. 태형은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산발이 된 머리를 긁적이며 지민의 뒤를 따랐다. 으쌰, 우리 도하. 안본 새 또 키가 컸네요? 지민은 도하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이고아이고. 앓는 소리는 덤이었다. 걔 요즘 돼지야, 막 안아주고 그러면 너 허리 다친다. 태형의 말에 지민이 태형을 노려봤다. 애한테 돼지가 뭐냐, 진짜.
도하 대지 아니야!
그래 우리 도하 돼지 아니야. 누가 돼지라고 그랬어.
파파가 계속 대지라고 그래써. 파파가 대지야!
참 나, 야 내가 어딜 봐서 돼지냐? 그리고 너 어제까지 놀아준 사람이 누구야? 엄마 왔다고 바로 엄마한테 달려가는 거 봐.
파파 시러! 마마랑만 놀꺼야!
어쩌냐, 네 엄마 내건데.
김태형! 유치하게 계속 그럴래!
태형은 결국 지민의 타박을 듣고 나서야 입을 다물었다. 입술이 삐죽 튀어나와 툴툴대며 밉지 않게 노려보는 태형에, 지민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니, 4살짜리랑 싸우는 게 말이 되냐고.
지민은 쭉 집을 둘러보았다. 개강을 하고 요 일주일간은 너무 바빠 집에 오지 못했던 탓에 일주일간 꼬박 태형에게 집안일을 맡겼어야 했는데, 어찌나 걱정스럽던지 지민은 짬이 나자마자 바로 달려온 것이었다. 겉보기에는 나름 어지르지 않고 깔끔하게 지낸 것 같다. 올~김태형~ 지민은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태형을 바라봤다. 태형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눈썹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내가 한다면 좀 하지. 허세가 잔뜩 들어간 태형의 말에 지민이 푸핫 웃었다.
점심이나 먹자, 오랜만에 너 좋아하는 거 해줄게.
잠깐, 거긴 열지!
......
...마...
방문을 연 지민의 너머로 처참한 방안 꼴이 보였다. 아하하하 도하야 아빠랑 놀까? 태형은 지민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도하의 가까이로 다가갔다. 내 무무! 도하는 그런 태형이 보이지도 않는지 방 안에 보이는 제 인형한테 달려갔다. 도하한테 살짝 밀쳐지면서도 움직임 없이 굳어 있던 지민이 딱딱한 움직임으로 천천히 태형을 돌아봤다.
이 미친 새끼야!!!!
태형은 지민이 점심을 만들고 있는 동안 꼼짝없이 방 안에 박혀 청소해야 했다. 김도하, 여기 와서 아빠 좀 도와줘. 태형의 말에 거실에 앉아 놀고 있던 도하가 벌떡 일어나 태형에게 다가갔다.
도하 물건은 도하 방에 갖다놔.
도하 거업써.
이거, 이거, 이건 뭐야. 이거 아빠거야? 이거 도하 거잖아.
그거 어제 파파가 가지고 놀아써.
태형은 뭐라 항변 하고 싶었으나, 입만 뻐끔대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 어제는 아빠가 가지고 놀기는 했는데 그래도 원래 도하 방에 있던 거니까 도하가 갖다놓자? 간신히 나온 말에 도하는 음...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이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도 우리 아들 아직 착하네. 태형은 자신의 물건을 주섬주섬 챙기는 도하의 뒤통수를 살살 쓰다듬었다.
너는 나이가 몇 갠데 아직도 도하 장난감 가지고 노냐?
끄아악!! 아, 깜짝이야!
갑자기 위에서 들리는 말에 태형은 까무라치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 진짜 깜짝 놀랐잖아! 태형은 뒤로 돌아보며 지민에게 빽 소리를 질렀다. 허. 지민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만 나왔다.
아니 그래, 김태형씨. 21살이나 먹어놓고서 도하 장난감은 왜 가지고 노시냐고요.
아 요즘 장난감이 겁나 고퀄리티로 나오더라. 한번 시험 삼아? 애가 가지고 놀아도 되는가 시험 해본거야...
참 핑계도 그럴듯하다 생각하며 지민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어차피 그런 핑계 믿어줄 거라 생각도 안한 태형은 쩝 입맛만 다셨다. 밥 다됐으니까 먹으러 와. 지민의 말에 태형은 벌떡 자리에 일어났다.
***
장 보러 갈래? 지민의 말에 티비만 보고 있던 태형이 고개를 돌려 지민을 바라봤다. 나 없을 때 장 보러 가기는 했냐? 뭔 냉장고가 새로 산 것 마냥 텅텅 비었어. 지민의 걱정 어린 타박에 태형은 볼만 긁적였다. 도하를 데리고 도저히 장 보러 갈 엄두가 안 나서. 태형의 말에 지민은 입을 다물었다. 안 그래도 고집이 좀 있는 것 같은 도하는 요즘 들어 고집이 더 심해지고 있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꼭 얻어야 했다. 아니 저런 건 왜 김태형을 쏙 빼닮았냐고. 언제 한 번, 지민이 한 말에 태형은 억울함에 가슴을 탕탕 쳤었다. 야 내가 언제 저렇게 했었냐? 난 아직도 네가 유치원생 때 기어코 내 공룡모형을 가져간 것을 기억하고 있지. 와 씨, 무서운 새끼 그런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어차피 도하 지금 낮잠 자고 있어서 몰래 둘이서 빨리 갔다 오자. 지민의 말에 태형은 잠시 고민했다. 도하야, 우리 마트 갔다 올게. 태형은 도하한테까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말하며 자리에 일어났다. 으이이잉...도하두... 키득대며 방으로 들어가던 둘은 잠바를 질질 끌며 나오는 도하를 보고 기절할 뻔 했다. 도하두 데꼬가... 아직 잠에 잔뜩 취한 목소리를 하며 반쯤 감긴 눈을 비비면서 자기도 데리고 가라는 도하에, 지민과 태형은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도하는 진짜 못 당한다. 지민의 중얼거림에 태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떼쓰면 그 자리에서 바로 돌아갈 거라는 지민의 말이 무색하게 도하는 인형 하나를 들고 몇 십분 째 지민과 입씨름 중이었다. 태형은 이미 지친지 오래라 멀찍이서 카트에 몸을 기대어 턱을 괸 채 둘이 하는 행동을 관전했다. 둘이서 마주보고 왕왕대는 상황을 보는 것은 재미있긴 했다. 그 와중에 아이랑 시선을 마주본다고 쪼그려 앉아 이야기를 하는 지민이 귀여워 태형은 웃음이 터졌다. 말할 때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그의 불그스름한 볼도 귀엽다. 아, 물론 맞은편에서 인형을 꼭 안고 있는 제 아이도 귀엽다. 누구를 닮았는지 도하도 통통한 볼에 불그스름하니 물들어 있었다. 태형은 결국 카트를 놓고 저벅저벅 다가와 쭈그려 앉아 있는 지민의 볼을 잡고 반대편 볼에 쪽 뽀뽀 했다. 엇, 뭐야. 지민은 순식간에 당한 뽀뽀에 놀라 태형을 올려다봤다. 생글생글 웃고 있는 태형의 얼굴을 보자니 갑자기 얼굴에 열이 올라 지민은 팔로 얼굴을 가렸다. 가, 갑자기 뭐 하는 거야. 어찌나 당황했는지 말까지 더듬는 지민에, 태형은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냥 사주자. 저렇게까지 가지고 싶어 하는데.
매일 그렇게 사주니까 도하가 여기 올 때마다 사 달라 하는 거 아니야.
가지고 싶으면 가져야지.
...네 그 생각이 무섭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잖아.
내가 지금 돈 때문에 그러는 줄 알아?
지민은 결국 고개를 저었다. 태형은 이런 부분에 있어서 개념이 없었다. 옛날부터 가지고 싶었던 것은 다 가졌었고, 누구하나 그것이 항상 옳은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태형은 포기와 승복을 몰랐다. 그리고 그런 성격 때문에 트러블이 난 적도 많았다. 지민은 걱정 되었다. 태형이 무조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지만 도하가 그런 부분을 닮으면 분명 사회에서 여러 트러블을 겪게 될 수밖에 없다. 지민은 도하를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았다. 태형처럼 무언가의 결여가 어긋난 방향으로 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내가 분명 너한테도 말했지. 사람은 항상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없고, 가지고 싶은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고.
......
도하한테 그런 마음을 지금부터라도 깨우치게 하고 싶다고. 그게 얼마나 중요한데.
...알았어.
약간 시무룩해진 태형의 표정을 지민은 애써 무시했다. 저 얼굴에 홀라당 넘어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태형은 도하를 안아들었다. 으쌰, 우리 도하 이거 가지고 싶어? 태형의 말에 도하는 인형을 꼭 안고 태형의 품에 파고들었다. 평소에 지민의 반대에도 항상 사주던 태형이었다. 파파, 이거 사조... 도하의 말에 태형은 활짝 웃으며 도하를 꼭 안고 마구 몸을 흔들었다. 누구 아들이길래 이렇게 귀여워, 응?
그래, 아빠가 사줄게! 단호히 말하려던 태형은 지민의 눈초리에 깨갱했다. 태형은 도하를 살짝 내려주었다. 도하는 태형을 올려다봤다.
도하야, 이렇게 생긴 친구 집에 많잖아, 도하가 이거 사면 이 친구한테만 사랑 줄 것 같은데 그럼 집에 있는 친구들은 슬프겠어, 안 슬프겠어?
도하 안 그럴게. 다 같이 놀게. 이거 사조...
도하야. 아빠랑 엄마는 도하가 원하는 걸 항상 사줄 수가 없어.
태형은 지민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사실 태형도 돈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왜 못 사주는지 잘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지민의 말이니까 따를 뿐이었다. 이거 대신 도하가 좋아하는 식당 가자. 지민도 합세해서 도하를 설득했다. 장난감 코너에서 실랑이를 벌인지 30분은 된 것 같다. 지민도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으이잉...시러...이거 사조... 기어코 사달라는 도하의 말에 지민은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도하와 태형의 시선이 동시에 지민에게 향했다.
도하 그렇게 계속 떼쓰면 엄마 더 이상 도하랑 놀고 싶지 않아질 거예요.
...마마?
도하도 그러고 싶어요? 도하는 엄마랑 안 놀고 싶은 거예요? 엄마랑 노는 것 보다 그 친구랑 노는 게 더 좋은 거예요?
왠지 모르게 단호한 지민의 말에 당황한 것은 도하뿐만이 아니었다. 왜, 왜 그래 짐나... 평소와 달리 정말로 도하에게 화난 듯 한 지민의 말에 태형은 당황하며 지민의 어깨를 살짝 감싸 안아 쓸어내렸다. 도하 놀랐잖아. 태형의 귓속말에 지민은 살짝 한숨을 쉬었다. 도하의 눈은 울망울망하니 울 듯 했다.
엄마는 도하랑 많이 놀고 싶은데 도하는 항상 친구 사달라고 하니까 엄마가 슬퍼요. 엄마랑 노는 것 보다 이 친구들이랑 노는 게 더 좋아요?
으으응...아니야...
거의 울 듯한 도하의 목소리에 지민은 도하를 안아 올렸다. 으이잉...마마가 더 좋아... 아예 지민의 품에 얼굴을 부빗거리며 하는 말에 지민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태형에게 눈짓했다. 빨리 손에 든 장난감 제자리에 놓고 와.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 지민의 속마음에 태형은 도하의 손에 든 인형을 살짝 빼고 후다닥 진열장에 두었다. 우리 도하 얼굴 보여주세요. 지민의 말에 도하는 얼굴을 들었다. 니트에 마구 부벼져 잔뜩 헝클어진 앞머리에 결국 울었는지 눈이며 코가 불긋불긋하고 볼에는 눈물자국도 찍혀 있었다. 지민은 결국 푸핫 웃어버렸다. 에구, 우리 도하 누구 아들이길래 이렇게 예뻐요. 지민의 말에 도하는 코를 킁 먹으며 약간은 코맹맹이 목소리로 말했다.
파파 마마 아들이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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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육아에 서툴기만 한 뷔민.
그리고 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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