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민 말도 안되는 육아물 썰7
길/육아물
지민아! 지민아!
현관에서부터 들리는 태형의 호들갑에 지민은 방에서 나왔다. 방에서 나오자마자 보이는 태형과 손에 들린 쇼핑백에 저절로 얼굴 먼저 구겨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너 또 뭐 사왔어! 지민이 후다닥 태형에게 달려가 쇼핑백을 빼앗았다. 신발과 옷이 잔뜩 들어있는 것을 본 지민은 홱 태형을 노려봤다.
야 작작 좀 사와 진짜! 하루에 하나씩만 입혀도 다 못 입히겠네.
그러면 하루에 하나씩 입히면 되지?
이게! 말이면! 단 줄! 아나!
아씨! 아! 아파 진짜아아악!!!
결국 지민에게 등짝을 여러 번 맞은 태형이 그의 손을 피하면서 소리를 빽 질렀다. 씨이... 씨이... 지민은 금세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며 태형을 노려봤다. 아씨, 손도 작은 게 더럽게 매워요. 태형은 닿지도 않는 부분에 애써 손을 대가며 똑같이 지민을 노려봤다. 지민은 들고 있던 쇼핑백을 소파에 던지듯 놔두었다.
야, 정신 차려 진짜. 지금부터라도 돈 모아놔야지. 너 돈 많다고 허세 부리다가 진짜 애 크는 만큼 돈이 사라진다.
괜찮아. 애 대학 보낼 때까지 돈은 있어.
웃기지마. 돈 얼마나 들어가는지 너 모르잖아. 당장에 몇 년 뒤 유치원 갈 때부터가 진짜야.
지민아. 오빠가 애 키울 만큼의 능력도 안 되는 줄 알아?
오빠는 씨발,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아, 알았어! 알았어! 때리지 말라고!
또 높이 치켜드는 손에 태형은 두 팔로 머리를 가리며 외쳤다. 후. 지민은 손을 내리고 쇼핑백 안에 든 옷을 하나하나 꺼내보기 시작했다. 그거 색깔 이쁘지 않아? 아 그거 딱 보자마자 완전 아들 거라 생각했다니까. 아 그거 너무 귀여워서 샀어. 그거 왠지 너 같아서 샀어.
나 같은 건 뭐냐.
그거 동물 귀 달린 거. 왠지 너 생각나서 샀어. 아가한테 입히면 겁나 이쁠 것 같지 않아?
야 이런 건 사오지 좀 마. 딱 봐도 훨씬 커 보이잖아.
아 애 커서 입히면 되지.
그때 되면 더 예쁜 옷 많이 나올 텐데?
그럼 그것도 사면되지 뭐.
허. 지민은 제 시선에 맞추어 들어 보고 있던 옷을 툭 놔두고 태형을 봤다.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모르는 눈빛이다. 저 순진무구한 표정 좀 봐. 지민은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태형아. 돈이 지금 있다고 해서 그렇게 막 쓰는 거 아니야.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하물며 애가 컸을 때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나 진심으로 걱정돼서 하는 말이야. 정말로 아이 하나 키우는데 들어가는 돈이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라고.
야 내가 돈을 쓰면 어디다 쓴다고 그러냐. 그냥 옷 몇 벌 신발 몇 켤레 사는 것뿐인데.
그 커다란 애 옷장에 옷 놔둘 곳이 없다, 새끼야!
지민은 결국 또 빽 소리를 질렀다. 이 새끼는 진짜 좋은 말로 할라 해도 꼭. 머리가 울리는 기분에 지민은 결국 한숨을 쉬었다. 와중에 이쁜 것만 고르긴 했네. 지민은 쌓인 옷을 뒤적거리며 생각했다. 그의 행동을 유심히 보던 태형이 헤 웃었다. 지민의 속은 얼굴에, 행동에 다 드러났다. 애기 옷 만지작거리면서 유심히 보는 것은 그래도 마음에 든다는 뜻이었다. 이쁘지. 태형의 말에 지민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너 옷보는 눈은 있으니까.
내가 진짜 예쁜 것들 중에서 뛰어나게 예쁜 것만 탁 탁 탁 골라왔지.
엄지와 검지로 잡아 올리는 시늉까지 하며 말하는 태형에, 지민은 결국 피식 웃어버렸다. 저렇게 뿌듯하게 웃으며 말하는데 어떻게 더 화를 내냐. 지민은 다른 쇼핑백에서 신발을 다 꺼냈다. 하나같이 앙증맞고 귀여운 것투성이였다.
이건 여자 애기 거 아니야?
야 요즘 여자 남자 것이 어딨어. 예쁘고 어울릴 것 같으면 다 입히는 거지 뭐.
근데 아가 아직 못 걸어.
그럼 걷기 시작할 때 신기면 되겠네.
그때 되면 또 예쁜 신발 있다고 사올 거면서?
내 마음에 쏙 들면 사오겠지.
그래, 네 알아서 해라. 지민은 거의 포기하는 심정으로 들고 있던 신발은 조심히 내려놓았다. 근데 이제 진짜 놔둘 곳이 없어... 지민이 눈가를 문지르며 곤란한 듯한 말투로 하는 말에 태형도 팔짱을 낀 채 잠시 고민했다. 홱홱 거실도 쭉 둘러보았다. 그러면 그냥 이런데 진열해놓지 뭐. 티비 옆을 가리키며 하는 말에, 지민은 잠시 고민하다 결국 신발을 들고 티비 쪽으로 다가가 하나씩 놓기 시작했다.
이제 진짜 사오지마. 지금도 충분히 예쁜 거 많으니까.
알았다고 진짜. 아가는 어딨어?
방에. 애 자고 있으니까 깨우지 마.
낮잠?
응. 참 그러고 보면 이렇게 시끄럽게 해도 잘 자, 아가. 그치?
지민의 말에 태형이가 피식 웃었다. 너 닮아서 아가가 엄청 순한 갑다, 그치? 태형의 말에 지민이 장난스레 그의 어깨를 퍽 쳤다. 뭘 날 닮아.
아가 깨어나면 쇼핑 하러 나갈까?
또 무슨 쇼핑. 또 뭐 사려고. 너 진짜 요즘 돈지랄 난 것 같애.
아아.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너 사주고 싶어서 그러지. 네 옷도 사고 신발도 사고.
됐어. 괜찮아. 고딩이 옷이 뭐가 다 필요해. 맨날 교복만 입고 다니는데.
에이, 뭐 넌 주말에도 교복 입고 다니냐?
가자 가자, 아가 코에 바람 좀 넣어주자. 아예 두 손으로 팔을 잡고 흔들면서 하는 말에 지민은 거절할 수 없었다. 여기서 더 안 간다 그러면 떼쓰기 시작할거다. 제 팔 잡고 흔드는 것부터 딱 각 나오지. 지민은 태형의 큰 손 위에 제 손을 덮어 잡아 그대로 그의 손을 떨어뜨렸다. 알겠으니까 진정해.
내가 아기띠 맬게!
태형의 말에 칭얼거리는 아이를 달래고 있던 지민이 뒤돌아 태형을 바라봤다. 그러라 말하지도 않았는데 진작 매고 있다. 아기는 눈초리에 자그마한 눈물을 매단 채 칭얼거리다 아기 띠가 보이자 뚝 울음을 그쳤다. 외출 하는 건 기가 막히게 알아차린다니까.
그럼 백화점 가서 저녁까지 먹고 올까?
그러면 아가 밥 챙겨야 하지 않아?
분유 챙겨야지. 태형아 분유 좀 타와 줘. 나 그동안 얘 옷 좀 입히고 있을게.
알았어. 오늘 사온 걸로 입혀봐.
태형은 아기 띠를 두른 채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의 뒷모습이 영락없는 애 아빠 모습이라 지민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오늘은 무슨 옷 입을까요? 지민이 더 신나서 허밍까지 하며 아기 옷장 문을 열었다. 아기가 다다다 기어왔다. 요즘 들어 기어오는 속도가 좀 빨라진 느낌이다. 지민의 앞까지 기어온 아가는 지민의 발목을 잡고 알아서 앉기까지 했다. 너도 옷보고 싶어요? 지민은 애를 안아들어 옷장 안을 보여주었다. 아이는 옹알이를 하며 두 손을 뻗어 잼잼 거렸다. 이거? 이거 입고 싶어? 지민은 하나씩 짚어주며 하나하나 물어봤다. 지민아! 분유 어디다 둬? 부엌에서 부르는 목소리에 지민이 크게 외쳤다. 거실에 둔 가방 안에 두고 다른 애기 용품도 좀 챙겨줘!
이 옷 입을까요? 지민은 멜빵바지를 꺼내들었다. 아가들은 멜빵바지 입는 게 그렇게 귀엽더라는 지민의 말을 들은 태형이 한 때 멜빵바지만 주야장천 사온 적이 있었다. 멜빵바지 종류가 이렇게 많구나를 그 때 처음 느꼈었다. 지민은 그에 어울리는 상의와 모자, 잠바까지 꺼내들었다. 바닥에 앉아 옷과 아가를 내려놓자 제 옷을 주섬주섬 잡기 시작했다. 마음에 들어요? 지민이 웃으면서 상의를 들어 그에게 입히기 시작했다.
그 옷 이쁘지. 멀리서 들리는 목소리에 지민이 고개만 돌려 봤다. 태형이 문가에 기대어 지민을 보고 있었다. 챙길 거 다 챙겼어? 지민의 물음에 태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만 준비하면 돼. 태형의 말에 지민의 손이 좀 더 빨라졌다. 태형아 애 양말이랑 신발도 좀 어울리는 걸로 꺼내줘. 멜빵바지를 입히면서 말하는 지민에, 태형도 다가와 신발을 찬찬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어찌나 옷과 신발이 많은지, 아가 방이 옷 방 수준이었다. 좋아, 너로 정했어! 태형은 파란색 신발을 가져와 지민의 앞에 살짝 두었다. 지민은 막 토끼 귀가 달린 모자를 씌우고 있었다.
아이고, 세상에 누구 아들인데 이렇게 예뻐?
빠빠! 빠브브으...
태형아, 그냥 우주복 입힐까? 워머 하고?
지금 완전 한낮이라서 괜찮지 않아? 어차피 실내에만 있을 건데.
그냥 패딩만 입힐까.
아니면 우주복 입히고 나중에 백화점에서 벗으면 되니까.
태형의 말이 끝나자마자 지민은 다시 옷장을 뒤져 우주복을 찾기 시작했다. 털이 복실복실 달린 토끼 우주복. 지민은 동물 귀와 꼬리가 달린 옷을 좋아했는데 유난히 토끼를 좋아했다. 그걸 유심히 본 태형이 어느 날 지민에게 토끼모양 동물잠옷을 사다 준적도 있었다. 지민은 그 잠옷을 보고 경악 했지만. 결국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하고 지민의 옷장 구석에 처박혀 있다.
다행히 날씨는 겨울치고는 따뜻했다. 겨울바람 안 불고 햇살이 따스하면 반은 성공이다. 태형이 아이를 안으면서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지민이 멀리서 태형을 찍었다. 요즘 그는 태형과 아이를 찍기에 맛 들렸다. 언제 한번 인터넷에서 반도의 흔한 유부남.jpg로 올라온 글을 보고 다짐했다. 그 사진 속에는 훈훈한 아빠와 아이의 사진이 누가 봐도 흐뭇한 웃음을 지을 정도로 잘 나와 있었다. 자신도 태형과 아기를 그렇게 예쁘게 찍고 싶었다. 모델들은 이미 완벽히 준비가 되었다. 저런 얼굴들은 갤러리에 저장해 놓고 길이길이 간직해야지, 암.
백화점에 도착하고 더운지 자꾸 칭얼대는 아기에, 결국 지민이 우주복을 벗겨주었다. 우주복을 벗기자 앙증맞은 토끼 멜빵바지가 나왔다. 참 아무리 생각해도 이 옷은 잘 샀어. 태형의 얼굴에 뿌듯함이 대놓고 보였다. 태형아 힘들면 말해, 내가 안아도 되니까. 지민의 말에도 태형은 고개를 저었다. 하나도 안 힘들어.
본격적으로 쇼핑을 시작하는데 가는 데마다 시선집중이다. 지민은 신경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서 자신들을 향한 시선이 너무나도 잘 느껴졌다. 아, 부담스러워... 지민은 제 자신이 점점 고개가 숙여지는 것을 느꼈다. 태형을 그런 지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옷 고르는데 여념이 없었다. 헐 지민아 이거 봐, 진심 너를 위한 옷이야. 태형이 니트 하나 꺼내 지민에게 대보았다. 지민은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생각해보면 시선이 모일 수밖에 없는 조합이기는 했다. 누가 봐도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 백화점에 쇼핑을 하러 왔는데 한명은 아이를 안고 있다. 근데 그 한명이 겁나게 잘생겼단 말이지. 감히 그들의 관계를 쉬이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끽해야 친구와 늦둥이 동생 정도로 생각하겠지. 어찌됐든 지민은 그런 시선을 받는데 익숙하지 못했다. 김태형은 날 때부터 잘났으니 자신한테 날라 오는 시선들이 익숙하기 그지없겠지만 자신은 아니란 말이다. 지민은 한 번도 아이를 데리고 혼자서 외출한 적 없으니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태형이 이런 시선을 많이 받고 다녔다는 생각이 들자 어쩐지 안타까워졌다.
지민아 대박! 이거 완전 네 옷이야!
아니, 당사자는 그냥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 느끼는 것이,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아기가 귀엽다며, 예쁘다며 말을 걸어온다. 아무리 낯선 사람이 다가와 제 얼굴을 보고 손을 만져봐도 아이는 얼굴 한번 피하지 않고 사람을 그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보던가, 꺄르르 웃고는 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아이를 더욱 더 귀여워하는 것이다. 내 새끼, 나를 닮아서 친화력 끝내주네. 태형이 아가를 통통 튕기면서 말했다. 요즘 태형은 제 아들을 남한테 못 보여줘 안달이었다. 이렇게 예쁜 우리 아들을 세상 사람이 다 알아야 해! 태형의 모토였다. 아이가 조금만 더 컸으면 연예인 시킨다고 했을 것이다.
우브브.. 우으응..빠바! 빠!
응, 그래 우리 아들. 이게 마음에 들어?
아이가 몸까지 쭉 빼며 가리키는 옷에 태형이 맞장구 쳐주었다. 아이고 내새 끼, 아빠 닮아 그런가 안목이 엄청나네. 태형의 말에 지민이 풉 웃었다. 아이를 키운 지 이제 한 달이 넘었다. 한 달 뒤 고3 되는 애들이 알면 뭐 얼마나 안다고, 애 키우는데 아직 서툰 것투성이지만 나름 둘이서 잘 해내고 있었다. 태형은 아들, 아빠 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수준까지 되었다.
지민아 이거 입어봐.
뭐, 나? 이거 아가가 고른 거잖아. 네가 입어야지.
아니야. 이거 완전 네 옷이야. 아들이 너 입으라고 고른 거지.
마마! 으브브...
봐봐. 엄마거래.
내가 왜 엄마야. 지민은 틱틱 대면서도 옷을 받아들고 피팅룸에 들어갔다. 다 입고 나와 봐! 알았다니까! 태형의 말에 피팅룸 안에서 지민의 대답이 들렸다. 태형은 아이의 몸을 이따금 통통 튕겨주면서 다른 옷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자, 아들 우리 또 엄마 옷 골라볼까?
뭐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태형이 한창 옷을 보고 있을 때 한 직원이 물어왔다. 아, 그냥 옷 좀 보고 있어요. 태형은 시선도 돌리지 않은 채 옷을 뒤적였다 빼서 한번 보고를 반복했다. 바브브으- 아이가 직원 쪽으로 손을 뻗었다. 어머, 아이가 엄청 예쁘네요. 직원의 말에 태형이 고개를 홱 돌려 직원을 바라봤다.
그쵸? 우리 애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그렇게 예쁘다고 칭찬에 칭찬을 아주 그냥.
동생인가 봐요.
아뇨. 제 아들인데요.
표정을 확 굳히면서 단호히 말하는 태형에 직원은 살짝 당황한 듯 했지만 애써 다시 웃어보였다. 죄송합니다, 너무 젊어 보이셔서 제가 착각을 했네요. 그녀의 말에 태형은 웃으며 다시 아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괜찮아요, 그런 소리 많이 들어요. 아이가 계속 고개를 돌려 직원을 바라봤다. 낯선 사람이 자신을 바라봐 줄 때마다 아이도 그들을 보며 웃고는 했었다. 태형은 아이가 더 잘 보이도록 몸을 살짝 틀었다. 꺄으! 아이가 방글방글 웃었다. 태형은 흐뭇하게 웃으며 그가 쓴 모자의 귀 끝을 만지작거렸다.
사실 태형과 지민이 처음 들어올 때부터 직원들끼리는 난리가 났었다. 정확히는 태형 때문에 난리가 났었다. 모르긴 몰라도 겁나게 잘생긴 남자가 귀여운 아이를 안고 들어오는데 시선이 안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조합도 신선하단 말이지. 아기 띠를 매고 들어온 그 남자는 자신이 그러고 다니는 게 굉장히 익숙한 듯 보였다. 그런데 아빠라 하기에는 나이가 굉장히 젊다 못해 어려 보였다. 늦둥이 동생인가. 그럼 그 옆에 있는 남자는? 친구인가. 다들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을 했다. 태형에게 다가온 직원은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승자였다. 가까이서 보니까 더 잘생겼네. 직원은 속을 숨기며 더욱 친절하게 웃어보였다. 알고 보니 아들이었다는 게 조금 충격적이긴 했지만.
태형은 옷을 하나씩 넘기며 보다가 후드 하나를 집었다. 교복 위에 입으면 예쁘겠네. 태형은 교복을 입은 지민의 모습을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빠바! 바브으... 아이도 마음에 드는지 옷을 잡으려고 자꾸 손을 뻗었다. 앙증맞은 팔이 왔다갔다 거리는 모습에 태형은 또 피식 웃어버렸다. 아들도 보고 싶어? 직원은 이때다 싶어 옷에 대해 막 설명하기 시작했다. 조용히 쇼핑 하는 것을 좋아하는 태형은 옆에 직원이 졸졸 쫓아다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내색 하지는 않았다. 원단은 어떻고 소매는 어떻고 설명해주는 것을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고만 있었다.
이거 사이즈 아까 피팅룸에 들어간 애한테 맞을까요?
네 그럼요. 친구 분이세요?
아, 뭐...
태형은 말끝을 흐리며 괜히 다른 옷을 뒤졌다. 그런데 고객님이 사 줄 옷 치고는 가격대가 좀 있어서요. 직원의 말에 태형이 표정을 싹 굳혔다가 이내 비릿하게 웃어보였다. 괜찮아요, 이 매장 살 정도의 돈은 있거든요. 태형의 말에 그제야 제 말실수를 알아차린 직원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 숙여 사죄했다. 아직도 여기에 어린 사람 무시하는 직원도 있네. 태형은 혀를 쯧 차며 지민이 들고 들어간 니트를 손가락으로 튕기듯 건들었다. 이 니트 계산해주세요. 때마침 지민이 피팅룸에서 나왔다. 지민은 새 니트를 입은 채 쭈뼛대며 태형에게 다가갔다. 태형은 엄지를 척 들어올렸다. 꺄으! 마마으! 지민이 눈에 보이자 아이가 지민에게 가려고 몸을 뒤척였다. 태형은 아이가 혹시나 떨어질까 꽉 안았다. 이 니트 빨리 계산해주세요, 이 후드랑요. 태형이 한 손에 든 후드를 건네며 하는 말에 직원은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후드를 받아들고 지민의 옷에 달려 있는 택을 떼어내 계산대로 가져갔다. 다른 직원들은 태형 눈치 보기 바빴다. 너도 후드 하나 사게? 지민의 물음에 태형이 고개를 저었다.
저거 네 건데.
뭐? 야, 나 필요 없어. 이거면 돼.
내가 사주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아니 그래도...
지민은 무어라 더 말하려다 태형이 쓰읍 짐짓 엄한 표정을 지어 보이기에 결국 입을 다물었다. 그냥 뇌물 받는 셈 쳐, 나랑 우리 아들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태형의 말에 지민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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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하 8개월.
태형 지민 18살.
12월의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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