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민 말도 안되는 육아물 썰9
길/육아물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쏠렸다. 후드티에 청멜빵을 입고 튀는 색의 신발을 입은 남자 한명과 아기 한 명은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특히 남자는 빨간 머리라 더더욱 눈에 띄었다. 아이는 후드티 모자에 달린 토끼 귀를 마구 휘날리며 다다다다 뛰어갔다가 돌아오다 뛰어가기를 반복했다. 처음에 너무 잘생겼다고 한번 말 걸어볼까 다가가려던 사람들은 주위에 아이가 있는 걸 눈치 채고 멈칫했다. 그러다 남자의 얼굴이 도저히 저만한 애가 있을만한 나이는 아닌지라 조카이겠거니 하지만, 아이 입에서 파파라는 말이 나오자 결국 포기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
태형은 여전히 주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니,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가끔 너랑 다니면 사람들이 전부 이쪽을 봐서 좀 부담스러워 라고 하던 지민의 말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태형은 무감각했다. 지금도 사람들이 몰려 수근거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태형과 도하는 마치 다른 세상인 양 자기 갈 길 바빴다.
넓은 잔디밭을 아장아장 뛰어다니다 온 도하는 힘든지 태형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축 처졌다. 태형은 낄낄대며 도하를 안아들었다. 엄마 학교 오니까 어때. 태형의 물음에 어깨에 고개를 파묻고 있던 도하가 팍 얼굴을 들어 태형을 봤다.
하꾜?
응. 학교.
마마 여기 이써여?
응. 여기서 엄마가 공부해.
마마보고 시퍼여.
아빠도 엄마가 보고 싶어. 우리 엄마 찾으러 갈까?
태형의 말에 도하가 파닥거렸다. 그 모습에 태형은 피식 웃으면서 도하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었다. 내가 가끄야. 태형은 도하를 천천히 내려주었다. 아들이 엄마 어디에 있는지 찾아볼래? 태형의 말에 도하는 아장아장 앞에 보이는 건물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태형은 두어 발짝 뒤에서 그럼 도하를 따랐다. 도하는 잘 걷다가 갑자기 우뚝 멈추더니 그대로 쭈그려 앉아 옆에 있는 잔디밭을 보기 시작했다. 파파 이고 모예여? 도하의 물음에 태형도 옆에 와 똑같이 쭈그려 앉았다.
이건 꽃이야.
꼬?
응. 꽃.
이고 마마 달마써여.
엄마 닮았어?
태형은 고개를 무릎에 파묻고 킥킥거렸다. 노란 민들레가 조그맣게 피어 있었다. 왜 엄마 닮았어? 태형의 물음에 움... 도하가 고민했다.
마마느은~ 노래여!
엄마가 노랗다고?
웅! 삐약이 가타여.
태형은 빵터져 마구 웃으며 도하를 팍 끌어안았다. 도하도 꺄르르 웃으며 태형의 품에 파고 들었다. 아빠도 엄마가 삐약이 같다고 생각해. 태형의 말에 도하가 얼굴을 빼꼼 들어 태형을 바라봤다.
마마가 나보고두 삐약이라구 해써여.
맞아. 아들도 삐약이지.
그럼 파파느은?
아빠는 꼬꼬지.
꼬꼬?
응. 아빠 머리도 빨갛잖아. 꼬꼬 머리 빨간 거 알지?
웅.
아들도 크면 아빠처럼 멋진 꼬꼬가 될 수 있어.
오오오오. 도하가 눈을 반짝이며 태형을 올려다봤다. 그 모습이 퍽 귀여워 태형은 피식 웃으며 도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 이제 엄마 찾으러 가자. 태형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도하도 다리를 피고 일어났다.
태형은 제 앞에서 씩씩하게 걸어가는 도하를 보며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가지를 않았다. 대학생들이 지나가다 도하를 보며 어머, 귀여워라. 하는 소리를 들으면 제 어깨가 하늘로 솟구쳤다. 그쵸 귀엽죠, 이 아이가 바로 우리 아이랍니다 아하핳. 세상에 누구 새끼인지 어쩜 저렇게 귀엽고 잘생기고 다 할까요. 세상 사람들 전부 우리 아들을 좀 봐야 해. 간혹 도하 가까이 와서 인사를 하면 태형은 정말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간혹 자신에게 말 걸고 싶어서 다가오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아들 자랑 하느라 눈치 못 채는 경우도 많았다. 지민은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네가 눈치 없는 게 너한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요긴가아? 도하는 커다란 건물에 들어가면서 말했다. 태형은 조용히 도하가 가는 대로 따라 갈 뿐이었다. 도하는 이따금 제 아빠가 잘 따라오는지 뒤 돌아 확인했다. 그러면 태형은 가까운 거리에서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곤 했다.
건물 안에 들어서면 또 수많은 문과 사람들 때문에 결국 도하는 뒤돌아 태형에게 다가가 푹 그의 다리에 몸을 묻었다. 허헣. 태형은 웃으며 살짝 무릎을 굽혀 도하를 안아들었다. 마마 모찾게써여... 도하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하는 말에 태형도 덩달아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 못 찾겠어? 아빠가 찾아볼까? 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으쌰. 태형은 도하를 고쳐 안고 건물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사실 태형은 전에 지민을 보러 학교에 온 적이 몇 번 있었기 때문에 그가 있을 만한 곳은 거의 알고 있었다. 과방에 가볼까. 태형은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과방이 있는 건물로 걸음을 옮겼다.
도하는 태형의 어깨 부근에 얼굴을 묻었다. 태형은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도하가 작은 팔로 태형의 목을 끌어안았다. 어쩐지 평소와 다른 도하의 모습에 태형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 아들? 도하는 고개만 저었다. 오늘따라 왜 이러지. 태형은 도하의 등을 토닥였다.
파파.
응.
사람이 마나여.
그럼. 대학교에 사람이 많지.
응...
도하는 더 깊이 태형의 품을 파고들었다. 왜 이러지... 태형은 갑자기 변한 도하에 살짝 당황했다. 빨리 지민이 만나서 물어봐야겠다. 태형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지민아. 제 부름에 책을 읽고 있던 지민이 고개를 들었다. 문 쪽에 여자선배가 서서 지민을 보고 있었다. 네, 왜요? 지민의 물음에 여자는 살짝 머뭇거리다 말했다. 그때 왔던 네 친구가 왔는데... 친구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지민의 인상이 살짝 찌푸려졌다. 아니 오늘은 빨리 간다니까 뭐가 그리 급해서는! 지민이 자리에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옆에서 쪼그만 무언가가 푱 튀어나왔다. 마마! 팔을 벌리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도하를 본 지민은 두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도하야! 지민은 거의 반사작용 수준으로 도하에게 다가가 그를 안아들었다. 꺄으! 도하가 기분 좋은 듯 지민의 품에 파고들었다. 지민은 어리둥절해서는 도하를 안은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태형이 자연스럽게 들어오려다 문 앞에 지민이 있는 것을 보고 흠칫 놀라 뒤로 주춤했다. 아, 뭐야 깜짝아 너 왜 여기 서 있어. 뻔뻔한 태형의 말에 지민이 헛웃음을 뱉었다.
깜짝아? 지금 깜짝 놀라야 할 사람이 누군데. 누가 보면 이 학교 학생이신 줄 알겠어요?
학생인 척 하려면 할 수 있지.
이번에는 도하까지 데리고 여긴 왜 왔어. 나 오늘 빨리 간다고 했잖아.
날 좋아서 산책 겸, 도하도 엄마 보고 싶다고 해서.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튀는 머리에 둘 다 똑같은 옷을 입고 자연스럽게 대학교를 활보하면 다른 사람들이 무슨 생각 하겠냐... 지민은 결국 입을 꾹 다물었다. 말해봤자 김태형은 못 알아듣는다. 지민은 제 품에 안긴 도하만 둥둥해줄 뿐이었다. 도하는 지민의 어깨너머로 과방을 쭉 둘러보았다. 마마 여기가 하꾜에여? 도하의 물음에 지민이 푸흐 웃었다. 네, 엄마 학교예요.
옆에 서 있던 선배는 상황파악이 안되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태형과 지민, 도하를 번갈아 보았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선배의 혼란스러운 표정을 본 지민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아, 그게 말이죠 선배.
저와 지민이 아들이에요, 누나.
뭐?
한번 안아보실래요?
지민이 설명 해주려 입을 여는 순간, 끼어든 태형의 말에 선배는 물론이고 지민이도 놀라서 태형이를 쳐다봤다. 태형은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질렀는지도 모르는지 지민이 안고 있던 도하를 대신 안아들었다. 아들, 일로 와. 도하는 자연스레 태형에게 안겼다. 지민은 머리가 둔해져 멍청히 서 있었다. 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더 혼란스러운 건 선배였다. 그저 저 멀리서 지민의 친구와 웬 아기가 같이 걸어 오길래 말해준 것뿐인데 어쩐지 되게 무거운 사실을 깨달은 것만 같았다. 아들, 인사해. 태형이 선배 쪽으로 도하를 돌려 보여주었다. 안녀하세여. 도하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어어, 안녕... 선배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인사를 받아주었다. 자세히 본 도하의 얼굴이 어쩐지 태형과 지민을 묘하게 닮은 느낌이라 더욱 당황스러웠다. 선배는 지민을 힐끗힐끗 쳐다봤다. 혹시... 설마...
지민아.
네?
너 혹시... 여자였니?
아니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지민은 얼굴까지 시뻘게지며 빽 소리를 질렀다. 태형이 빵터져 도하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끅끅거렸다. 선배는 바로 사과했다. 아 정말 미안, 아니 근데 애기 때문에... 선배는 힐끔힐끔 도하를 쳐다보았다. 도하는 땡그란 눈을 끔뻑거리며 선배를 쳐다봤다. 태형도 그런 도하를 보다 선배를 쳐다봤다. 똑같이 생긴 두 눈이 동시에 자신을 향하자 선배는 어찌할 바 몰랐다. 지민은 벌써부터 지끈거리는 머리에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선배, 제가 천천히 다 설명해드릴게요 일단 앉으실래요? 지민의 말에 선배는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과방 앞이 왁자지껄 해지면서 문이 확 열렸다. 엇 태형이! 오늘도 왔구나! 헐 그 애기는 뭐야, 존나 귀엽다! 둘이 옷 맞춰 입은 거야? 헐 대박 조카야? 우르르 들어오는 사람들에 지민은 거의 기절 직전이었다. 한명씩 들어오는 것을 보던 도하는 결국 태형의 품으로 얼굴을 묻었다. 태형은 그런 도하를 힐끗 보더니 천천히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모랑 삼촌한테 인사. 태형이 도하를 땅에 내려다 주면서 말하자, 도하는 쭈뼛거리다가 배꼽인사를 했다. 안녀하세여. 도하의 인사에 과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이 퍼졌다. 아이고 귀엽다. 아가는 이름이 뭐야? 한 선배의 물음에 도하가 슬쩍 태형을 올려다봤다. 얘기해드려야지. 태형이 쭈그려 앉아 도하의 양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도하에여.
도하? 아이고 이름도 예쁘다.
성은 뭐야, 도하야?
김!
김도하? 아이고 예쁘네. 누가 지어주신 이름이야?
파파여.
파파?
도하는 손가락으로 태형을 가리켰다. 순간 과방에는 알 수 없는 정적이 흘렀다가 동시다발적으로 왁! 소리 질렀다. 뭐야, 김태형 애 있었어? 와 대박이다 진짜. 네 나이에 저만한 애 보려면 몇 살에 애 낳아야 하냐. 너 대학교 안다니는 이유가 애 때문이야?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질문폭격에 태형은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지민은 아예 구석에 있었다. 아 일이 점점 커지는 기분이야... 지민은 도대체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난감했다.
애기 얼굴이 벌써 완성형이네. 김태형 빼다 박았네. 이야 아빠가 얼굴이 사니까 애기도 얼굴이 사네. 너도나도 한마디씩 하면서 도하를 더 가까이서 보려고 몰려들었다. 도하는 뒤로 주춤 거리다 결국 몸을 돌려 태형의 무릎을 부여잡고 고개를 파묻었다. 왜 그래, 아들. 태형은 도하를 안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민아, 도하가 아까부터 이래. 태형은 걱정스러움에 도하를 안은 채 지민에게 다가갔다. 지민은 순간 걱정하던 것은 다 잊고 도하에게 다가갔다. 왜 그래, 우리 도하. 지민은 도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도하를 바라봤다. 도하는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 낯가리나? 지민의 말에 태형이 아 탄식했다.
더 애기 때는 괜찮길래 낯 안 가리는 줄 알았더니.
더 크니까 그런가봐. 아니면 사람이 너무 많았나.
아 어쩐지 올 때도 잘 놀다가 갑자기 사람이 많아지니까 나한테 오더라고.
갑자기 낯선 사람을 한 번에 봐서 그런가. 자기한테 몰려오는 게 익숙지 않았나봐.
아들, 괜찮아. 엄마 친구들이야.
태형의 말에 도하는 태형의 품에 파묻고 있던 얼굴을 들었다. 태형의 어깨 너머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태형은 헝클어진 도하의 앞머리를 살살 만졌다. 도하는 그대로 태형의 어깨에 기대었다. 통통한 볼 살이 눌려 눈 한쪽을 가렸다. 과 사람들은 어쩐지 묘한 표정으로 지민과 태형을 번갈아 봤다. 애기가 원래는 안 그랬는데 낯선 곳에 낯선 사람이다 보니까 낯가리나 봐요. 태형이 어색하게 웃으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과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더니 그 중 한명이 입을 열었다. 지민이가 엄마야? 그의 물음에 지민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어떻게 설명해주어야 하나. 태형이와, 자신과, 도하의 관계를.
말하자면 복잡한데... 뭐, 네. 저희 둘이 키우고 있으니까요.
너희 둘이 키운다고?
네. 도하 이름도 저희가 지어준거예요. 7개월 때부터 키웠어요.
......
이상하게 보일 거 알아요. 무슨 생각 하고 있는 건지도 다 알고요. 근데 아마 선배님들이 생각하는 그런 일은 아닐 거예요. 저희들도 나름대로 다 사정이 있거든요. 그리고 우리 도하 엄청 잘 키우고 있어요. 금전적으로도 다른 무엇으로도 어려움 없이 잘 살고 있어요.
지민은 마지막 말을 마치고 입을 꾹 다물었다. 과대는 지민과 태형을 번갈아 보다가 크게 박수를 짝 쳤다. 조용한 과방에 그의 박수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울려, 근처에 앉아있던 다른 과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과대를 쳐다봤다. 그래. 과대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그건 너희들 사정이고 우리야 너희들 사정 일일이 다 알 필요도 없지. 우리 과 공식귀염둥이가 사실은 애가 있었다는 게 놀랍긴 하다.
아, 선배 그건!
지민은 힐끗 태형을 눈치 보며 소리 질렀다. 과대는 호탕하게 웃어넘겼다. 그런 의미에서 나 도하 좀 안아 봐도 되냐?
도하는 금방 과 사람들과 친해졌다. 마구 재롱부리면서 옹알거리며 노래도 부르고 앙증맞게 춤도 췄다. 도하가 조금만 움직여도 그들은 자지러졌다. 아이고, 도하 왜 이렇게 예뻐, 이모가 까까 사줄까? 이모가 용돈 줄게 까까 사먹어? 돈을 멜빵바지 주머니 안에 직접 넣어주면 또 도하는 배꼽인사를 했다. 감사함미다. 꾸벅 인사하는 도하가 또 사랑스러워 다들 엄마미소를 짓는다. 태형은 살짝 뒤에서 그런 도하의 모습을 잔뜩 찍어댔다. 아들 아빠 봐봐. 아빠한테 브이 해 줘. 태형이 가끔 무언가를 요구하면 도하는 또 깜찍하게 웃으며 태형의 말대로 해주었다. 태형은 아까부터 바보 같은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지민은 더 멀리서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있었다.
아들이 너 닮아서 귀엽네.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지민이 살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과대가 지민의 옆에 서서 도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닮았긴요. 지민이 대답했다.
도하가 저 친구 아들이라고 했지?
... 네.
뭐, 친구 사이에 이간질 시키려고 그러는 건 아니고. 진짜 네 자식도 아닌데 굳이 어린 나이에 친구와 같이 아이를 키운다는 게 조금 이해가 안돼서.
......
아까는 많은 사람들 앞이라서 그렇게 넘겼는데. 너희들 사정이 있어서 아이를 키우는 거겠지만.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되거든 너희들.
......
사실 일반 친구 사이에 남의 애까지 키워주는 거, 말도 안 되잖아. 그게 아니면... 너희 둘이 혹시 사귀어?
아니요.
난 그런 거 전혀 개의치 않아 하니까 사실대로 말해도 괜찮아.
진짜 사귀는 건 아니에요.
그러면 더 말이 안 되잖아.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그냥 친구 사인데 저 친구 아들을 둘이서 같이 키운다는 게.
......
널 아끼는 형의 입장에서 나중 일이 걱정 돼서 그러는 거야. 둘이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엄마라고 부르면서 클 저 아이 생각도 해줘야지. 너희들이 무언가 확실한 관계인 것도 아니고. 친구라는 거 지금이야 영원한 친구로 남을 것 같아도 한번 틀어지면 끝인 거잖아. 게다가 너희들 같이 어린놈들이 아이 데리고 다니는 것도 아직 사회적으로 좋은 시선은 아니고.
선배. 우리, 도하 가벼운 마음으로 키우는 거 아니에요. 특히 태형이는 도하한테 엄청 애착을 가지고 있고요.
그거야 당연히 자기 아들이니까.
친아들 아니에요.
과대는 입을 다물었다. 사정이 있다고 해서 당연히 사고 쳐서 나았다거나, 둘이 사귀는 사이여서 키운다거나 그런 종류일 줄 알았는데. 자신이 생각한 것 보다 훨씬 더 복잡한 사정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비밀로 해주세요. 우리, 도하가 커서 물어봐도 입 다물려고 했었거든요.
......
태형이가 사고 쳐서 낳은 아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엄청 닮았죠? 저도 보고 놀랐어요. 너무 닮아서.
......
근데 태형이 보기에 날라리 같이 보여도 엄청 착하거든요. 마음도 여리고 사랑을 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에요.
정말 보기와 다르네. 머리도 시뻘건게 진짜 놀게 생겼는데. 학교도 안다니고.
대학교 포기한 거죠. 도하 키운다고. 도하를 그냥 둘 수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키운 게 된 거예요.
......
저도 말하자면 엄청 길고 복잡하지만. 아까도 말했다시피 우리 진짜 잘 살고 있거든요. 선배 말도 다 맞아요. 미래 생각 못했어요. 당장에 친구 관계 무너질 수도 있는데 둘이서 애 키운다는 거 진짜 말도 안 되죠. 그런데 저희 그냥 친구 아니거든요.
태형을 보고 있던 지민은 그가 고개를 돌리면서 눈이 마주쳤다. 태형은 웃으면서 지민도 한 컷 찍었다. 아, 저거 또 못나왔을 것 같은데 나중에 지워야겠다. 지민이 중얼거렸다. 과대는 그런 지민을 가만히 봤다.
아까 사귀는 사이냐고 물어봤잖아요.
......
저희 사귀는 사이는 아니에요. 누구 하나 먼저 사귀자고 말한 적은 없거든요.
......
근데 서로 엄청 사랑해요. 태형이도, 나도.
그렇게 말하는 지민의 표정은 어딘가 행복해 보였다. 이제는 아예 태형이 쪽으로 돌아서서 하트를 날리며 춤추는 도하와, 그런 도하를 찍으면서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태형을 바라보더니 결국 소리 내어 웃었다. 김태형 웃는 거 완전 바보 같아. 지민의 말에 태형이 지민을 돌아봤다. 아들 바보라면 인정할게. 태형이 말했다.
아, 선배 정말로 비밀로 해주세요. 문득 든 생각에 지민이 과대를 바라보며 다급히 말했다. 이야 솔로 서러워서 어디 살겠나. 그렇게 말하는 과대의 표정에 장난기가 가득했다. 내 앞에서 염장이나 지르지 마라. 그의 말에 지민은 결국 웃었다.
매번 혼자 돌아가던 하굣길이었는데 태형과 도하랑 같이 가니 기분이 묘했다. 지민은 태형을 힐끗 쳐다봤다. 태형은 지쳐 잠이 든 도하를 안은 채 후드 모자를 씌워주고 있었다. 태형아. 지민이 작게 불렀다. 응. 태형의 대답이 곧장 날라 왔다.
먼 미래에, 도하가 왜 자기는 엄마가 없냐고 물어보면 어떡하지.
엄마가 왜 없어. 여기 있는데.
진짜 엄마 아빠는 어디 있냐고 물어보면 어떡해? 사실대로 말해줘야 하나?
그래, 사실대로 말해줘.
......
네 엄마 아빠는 여기 네 눈앞에 있다고.
......
지민아. 낳아줬다고 진짜 부모님은 아니더라.
지민은 고개를 돌려 태형을 바라봤다. 태형은 언제부터인지 지민을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니 태형이 살짝 웃어보였다. 어쩐지 그 웃음에 씁쓸함이 느껴져 지민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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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말도 안되는 육아물' 인 이유
이제 슬슬 과거를 풀까 싶어서 좀 던져 봤음
마냥 달달하기만 한 현재와는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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