슙민슈짐 이사 썰
짧형 이건 어디다 둬요?
그거...
......
......
그냥 제가 알아서 둘게요.
윤기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지민은 제 몸통만한 책꽂이를 들어 잉차잉차 침실 안으로 들였다. 윤기는 책이 잔뜩 들은 상자를 들고 그의 뒤를 따랐다. 문 앞에서 책꽂이를 둔 채 턱을 괴고 고민을 하는 지민을 한번 보고 침대 밖에 없는 침실을 한번 본 윤기는 다시 지민을 바라봤다. 뭐해? 책꽂이를 어디다 두는게 제일 예쁜지 고민 하는 중이에요. 윤기의 물음에 지민이 답했다.
윤기의 이삿날이었다. 몇 주 전에 뜬금없이 이사 갈거라는 윤기의 말에 지민은 깜짝 놀랐었다. 예? 이사요? 아니 갑자기 왜요? 동공이 확장될대로 확장 되어 얼굴까지 들이미는 지민을 본 윤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냥. 그리고 오늘 [나 이사했는데] 라며 주소까지 적어서 문자를 보낸 윤기에, 지민은 친히 이삿짐 옮겨주러 왔다. 아니 형 진짜 옮기고 있는 거 맞아요? 지민의 말에 윤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보다는 네가 이런 거 더 감각 좋으니까. 덤덤한 말에 지민이 후 앞머리가 팔랑거리도록 숨을 깊게 내쉬었다.
형 집인데 형 마음에 드는 쪽으로 해야죠.
뭘 해도 네가 하는 것 보다는 안 예뻐.
그럼 진짜 내 마음대로 해요?
응.
그럼 책꽂이를 여기다 놓자.
지민은 다시 잉차잉차 책꽂이를 들고 가기 시작했다. 어기적어기적 걷는 폼이 귀여워 윤기는 몰래 웃음을 삼켰다. 침대 옆 벽에 책꽂이를 세워 둔 지민은 윤기가 가지고 온 책을 하나씩 꽂기 시작했다. 이거 아무렇게나 꽂아도 돼요? 높이만 맞으면 상관 없어. 윤기의 허락도 받은 지민은 제 입맛대로 책을 꽂아 넣었다. 상자 안에 빽빽하게 들어있던 책을 하나 둘 빼기 시작하자, 책 사이에 들어가 있던 사진 하나가 툭 떨어졌다. 어, 뭐지. 지민은 아무 생각 없이 주워들었다가 얼굴이 시뻘게져 빽 소리를 질렀다. 민윤기!!!!
주방 정리를 하고 있던 윤기는 화들짝 놀라 들고 있던 접시를 놓칠 뻔 했다. 민윤기? 눈썹을 꿈틀거리며 한 대 쥐어박아줘야지 생각하며 방 안으로 들어간 윤기는 지민이 들고 있는 사진에 아연실색하며 성큼성큼 들어가 사진을 확 뺏어들었다. 지민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윤기를 봤다. 윤기는 사진을 아예 제 뒤로 숨겼다.
뭐예요, 그 사진? 그 사진 어디서 났어요.
......
그거 남준이 형 짓이죠!
소리 지르지마.
어떻게 소리를 안 질러, 내 고딩 증사가 있는데!
귀엽기만 한데.
아 싫어요. 진짜 싫어요. 뭐야, 그게 왜 형한테 있냐고 진짜! 내가 다 불태운 줄 알았는데!
이거를 왜 불태우냐, 아깝게.
아 진짜 찌질해 보여. 아 빨리 줘요.
내 거야.
제 사진이에요.
내 거라고.
단호한 윤기의 말에 지민은 입술만 잘근잘근 씹어대다가 확 몸을 날렸다. 윤기는 살짝 피했다. 이씨. 지민은 또 다시 몸을 날렸다. 윤기가 아예 손을 높이 들었다. 아 진짜 장난치지마요! 지민이 애써 손을 뻗고 발까지 들었지만 키도 자신보다 조금 더 크고 힘은 훨씬 더 센 윤기를 당해낼 수 없었다. 입동굴까지 보일 정도로 환히 웃고 있는 윤기 표정을 보자 약 올라 돌아가실 것 같았다. 아씨 진짜! 지민은 결국 제 자리에 주저 앉아 윤기를 노려봤다. 윤기는 아예 눈까지 휘어접어 웃으며 지민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꼬맹아.
참 나, 그래봤자 2살 차인데 꼬맹이는 무슨.
이거 내 보물이야.
그게 어떻게 보물이에요! 내가 더 이쁜 사진 줄게요. 그거 진짜 이상하잖아요.
현재 사진은 취급 안한다.
아 왜요! 지금이 훨씬 더 나은데!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냐?
윤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민이 애절한 눈빛으로 윤기를 올려다 보았다. 지민을 한참을 내려다 보던 윤기는 피식 바람빠지는 웃음을 내곤 지민의 머리를 헝클였다. 마음만 먹으면 실물 볼 수 있는데, 왜 사진을 보냐. 사진을 제 주머니에 넣은 채 방 밖으로 나가는 윤기의 뒷모습만 보던 지민은, 작게 신경질 내며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쓸었다. 아씨 근데 그거 진짜 어디서 났지.
윤기는 그 사진을 매우 아꼈다. 지민과 사귀기 전에도, 사귀고 나서도. 왜 아끼냐 물어보면 딱히 이유를 대지는 못한다. 그냥 자신이 몰랐던 지민이기 때문인 것 같다고 윤기는 생각했다. 이미 많이 만지고 보고 해서 꽤나 닳아진 사진이다. 윤기는 거의 매일을 그 사진을 보고 잠을 잤다. 지금이야 덜하지만 지민과 사귀기 전에는 밤새도록 그 사진만 뚫어져라 쳐다볼 때도 있었다. 지민 말마따나 지금에 비해 촌스러운 사진이었다. 한창 멋을 내고 다니는 지금과는 다르게 약간 바가지 머리에 까만 안경을 쓰고 볼살도 통통하게 올라와 있는 모습이었다. 공부만 열라 하게 생겼네. 혼잣말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사진을 바라보는 눈은 따스하기 그지 없었다. 어쩌면 그 작은 증명사진 하나가 윤기의 인생 신념을 한번에 무너뜨린 증거였다.
지민을 처음 만난 것은 윤기가 복학한 해 봄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지민을 사진으로 처음 만났다. 복학 기념으로 술을 사준다는 친구의 말에 윤기는 후드집업 하나 떡 걸치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근처 고깃집으로 향했다. 커다란 후드집업 모자까지 뒤집어 쓰니 영락 없는 백수 행색이었지만 윤기는 딱히 그런 걸 신경쓰지 않았다. 막 여러 사람끼리 모여 요란하게 하는 술자리를 매우 싫어하는 윤기의 성격을 잘 아는 남준 답게, 그는 딱 혼자 와 있었다. 그 이후로 가볍게 술과 고기를 먹으며 사는 얘기나 주고 받고 있었다. 아 맞다, 너 복학하면 얘기해주려고 했는데. 남준이 운을 띄우자 윤기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내가 저번에 몇 번 얘기한 동생 있잖아.
아... 누구였지.
나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끼리 친하셔서 거의 친동생급인 동생 있다고 했잖아.
아.
기억 못하네. 뭐, 어쨌든 나랑 같은 고등학교 였었는데, 또 같은 대학교까지 되가지고 너한테 소개시켜주고 싶었거든.
아...
윤기는 살짝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윤기한테 매우 힘든 일이었다. 일부러 사람을 피하고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낯을 엄청 가리는 편인데, 첫인상까지 그닥 좋은 편은 아니라 애초에 상대방이 자신을 어려워 했었다. 본인도 남을 대하기 어려워 하는데, 상대도 자신을 어렵다 못해 무서워 하니 윤기는 자연스럽게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을 꺼려했다. 남준은 애매한 표정의 윤기를 보고 안심시켰다. 걔도 낯 많이 가리는 편이긴 한데 진짜 좋은 애야, 이 참에 귀여운 동생 생기면 또 좋잖아. 남준은 지갑에서 사진 한장을 꺼내 윤기 앞에 놓았다. 걔 고딩 때 증명사진, 존나 귀여워. 윤기는 남준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친한 동생이어도 그렇지, 남자 증명사진을 막 지갑에 넣어놓고 다니냐. 윤기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하며 사진을 들었다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윤기는 결코, 한 눈에 반했다느니, 운명이라느니, 그 따위 말을 믿지 않았다. 전공도 그렇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서도 사랑은 필수불가결이었지만, 윤기는 굳이 따지자면 매우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예술가였다. 그래도 작곡가가 이런 것도 경험해보고 저런 것도 경험해봐야지, 너도 안 믿는 사랑을 쓰면 다른 사람들이 네 노래를 듣고 감흥이나 있겠냐? 그렇게 말하는 남준에다 대고 어깨만 으쓱해 보이기도 했다. 물론 자신도 그런걸로 먹고 사는 인생이라지만, 가끔 환상만 가득 차 있는 노래를 들으면 피식 웃음만 나올 때도 있었다. 그래서 윤기의 곡은 항상 호불호가 갈렸다. '너무 공감된다'와 '너무 현실적이어서 굳이 찾아 듣고 싶진 않다'로. 윤기는 23년 살면서 제 생각을 조금이라도 바꿨던 적이 없었고, 누군가 혹은 어떤 일이 자신의 생각을 바꿔 놓은 적도 없었다. 그러나 그 사진만큼은 윤기에게 너무 충격적이었다.
사진을 든 이후로 아무런 미동이 없는 윤기에다 대고 귀엽지? 딱 봐도 착하게 생겼지 않아? 성격 진짜 좋아. 몇번이나 말하던 남준은, 그제서야 그가 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야, 민윤기.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이 사진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윤기가 이상해, 남준이 손을 뻗어 윤기 앞에 주먹으로 두어번 톡톡 두들기자 그제서야 정신 차린 윤기가 남준을 봤다.
어... 어?
야 너 왜그래.
아... 아니.
다음에 얘까지 불러서 같이 먹자. 내가 슈가 내 친구라고 하니까 얘 눈이 막 초롱초롱 해지더라. 너 노래 좋아한대.
어... 뭐? 내 노래?
어. 막 소개 해달라고 자기 실물 보고 싶다고 막 그러더라.
......
... 불편해?
아니아니.
윤기는 두 손을 들어 직접 손까지 저어가며 부정했다. 남준은 윤기를 보며 고개를 갸웃 했지만, 바로 고기로 시선을 옮겼다. 그렇게 남준은 사진을 새하얗게 잊었다.
사진 속 주인공을 만난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윤기와 남준은 우연히 만나 같이 식사를 한 후, 가볍게 술을 마시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윤기에게 양해를 구한 남준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다 힐끔힐끔 윤기를 눈치 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계속해서 자신을 의식하는 행동에 결국 윤기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길래 내 눈치까지 보지. 어어, 여기로 와. 제 할 말만 하고 팍 끊은 남준의 행동에, 윤기는 설명을 바라는 표정으로 남준을 쳐다봤다. 그 왜 있잖아, 그때 친하다고 말했던 그 동생. 남준이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하는 말에 윤기는 헉했다. 윤기는 지난번 그 날 이후로 제 자신을 이해 할 수 없었다. 도대체 촌스러운 고딩 증명사진을 왜 그렇게 자주 보게 되는 것이며, 심지어 남자인 그 사진을 주인에게 돌려주지 않고 계속 가지고 있는건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거의 매일 밤 현타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지금 또 그 남자 이야기가 나오다니. 남준은 아무 말도 안했는데 윤기는 괜히 제 발이 저리기 시작했다.
어어. 근데 걔가 왜.
자기 아직 밥 안 먹었다고 그래서. 내가 여기 오라고 그랬어.
......
아... 불편하면 그냥,
아니 아니!... 괜찮아.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 버린 윤기에, 남준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윤기를 봤다. 금방 괜찮다고 말했지만 속은 이미 평정심을 잃고 미친 말처럼 펄떡펄떡 날뛰기 시작했다. 아니 뭐, 실물 보면 그 이후로 나도 이해 할 수 없는 행동들을 알 수도 있을 것 같고. 뭐, 실물 보면 그 짓 멈출 것 같으니까. 윤기는 끊임없이 자기합리화를 하면서도 계속 문쪽을 힐끔거렸다. 얼마 후, 문이 열리면서 보이는 얼굴에 윤기는 난생 처음 겪는 감정을 느꼈다. 윤기는 인정 할 수 밖에 없었다. 제 굳은 신념이 처참히 무너졌음을.
그 당시 일을 겪으면서 윤기가 느낀 것은 모든 노래에 100퍼센트 픽션은 없구나 하는 것이었다. 설사 작곡가 본인이 경험하지 못한 일이라 하더라도 다른 누군가 한명쯤은 그 노래를 들으면서 공감할 수 있겠구나를 그 때 처음 알게 되었다. 운명은 없다, 한눈에 반한다는 것은 환상에 빠진 누군가의 로망일 뿐이다를 주장 했던 윤기는 자신이 완벽히 틀렸음을 인정했다. 애초에 운명이 없다면 그렇게 수 많은 영화와 드라마, 음악에서 운명적 사랑을 논하지는 않았겠지... 윤기는 제 앞에 앉은 지민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했다.
실물로 만난 지민은 윤기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아니 씨발 세상아, 실물이 더 귀여우면 어쩌자는거야... 윤기는 여러 충격에 휩싸여 제대로 헤어나오지 못했다. 낯을 많이 가리고 겁나게 친한 사이 아닌 이상 그다지 말이 많은 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다소 차갑고 무뚝뚝해 보이는 윤기는 사실 귀여운 것을 미친듯이 좋아했다. 귀여운 것만 보면 헤어나오지를 못하고 몇시간이고 앉아서 그것만 본 적도 있었다. 그런 윤기의 취향을 봤을 때, 제 앞에 앉아있는 지민은 정말 신이 자신의 취향대로 맞춰 내려보낸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취향저격이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버벅거리기만 했다. 오늘따라 얘가 상태가 좀 이상하네. 남준은 어색하게 웃으며 지민에게 몇 번이나 저 말을 할 정도로 윤기는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만큼 윤기의 첫사랑은 강렬했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공공연하다는 것을 알고 한동안 우울해 하기까지 했던 것이 무색하게 윤기는 첫사랑에 성공했다. 성공 수준이 아니었다. 5년 째 매번 설레하고 좋아하는, 말 그대로 푹 빠져 여태 조금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지민에게는 한번도 말한 적 없지만. 윤기는 본인이 표현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는 것을 지민을 만나고 더욱 뼈저리게 느꼈다. 애초에 사랑하는 사람한테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모르니 모든 것이 서투를 수 밖에 없었다. 말로는 어떻게 하는지 몰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일이 많았다. 다행인 것은 그런 윤기의 성격을 지민이 이해해준다는 것이었다. 남준은 볼때마다 너희가 사귀고 있다는 것이 아직도 믿겨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름 오랫동안 별 탈 없이 사귀는 중이었다.
형 이제 뭐할까요? 지민의 물음에 윤기는 주위를 둘러봤다. 얼추 정리가 다 된 것 같다. 나머지는 내가 할게. 윤기의 말에 지민이 방 밖에서 나왔다. 형이 한다고요? 지민이 어이없는 듯 되물었다. 그릇 정리를 하고 있던 윤기는 그대로 뒤돌아 지민을 쳐다봤다. 지민은 방 옆 벽에 기대어 팔짱을 낀 채 윤기를 보고 있었다. 윤기와 눈이 마주치자 지민이 턱짓으로 이사상자를 가리켰다.
정말 이거 혼자 다 할 수 있어요?
......
가구를 어디다 놓을지도 못 정하는 형이?
... 도와줘.
지민은 피식 웃으며 상자 하나를 더 열었다. 그 상자는 씨디가 잔뜩 들어가 있는 것이었다. 작곡가답게 노래 씨디가 매우 많았다. 지민은 양 손에 하나씩 들고 번갈아 봤다. 이것도 제 마음대로 꽂아도 돼요? 지민의 물음에 멀리서 본 윤기가 다가왔다. 이건 순서가 있어서, 내가 할테니까 너는 다른 거 해줘. 지민은 다른 상자를 열었다.
근데 형 진짜 왜 이사했어요? 지민의 물음에 윤기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 집 보다는 이 집이 더 좋잖아. 윤기의 대답에 지민이 빵터져 웃었다. 아 뭐 그렇긴 하죠, 여기가 방도 하나 더 많고 새 집이고 더 넓고. 지민은 그런 말을 하며 짜장면을 한 입 먹었다. 맞은편에 앉은 윤기가 그런 지민을 빤히 쳐다봤다. 옛날에는 부끄럽게 사람 먹는 걸 왜 그렇게 쳐다보냐고 말했었지만 이제는 익숙하다. 윤기는 매번 밥 먹는 지민을 멍하니 쳐다봤다. 그러다 한 입 먹고 지민을 보다가 또 한 입 먹고. 지민은 입 안에 들은 것을 오물오물 씹으면서 집을 둘러봤다. 탁 트인 거실과 그 옆에 있는 침실이 약간 보였다. 형 근데 혼자 살기에는 집이 너무 넓지 않아요? 지민의 말에 갑자기 사레 들린 윤기가 거칠게 기침 하며 옆에 있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형 괜찮아요? 지민이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등을 두들겨 주었다. 아 괜찮아 괜찮아. 잔기침을 하며 입가를 살짝 닦은 윤기는 간신히 숨을 돌렸다. 아 진짜 깜짝 놀랐어요. 지민은 제자리로 돌아가 앉으며 말했다.
미안.
여기가 작업하기에는 더 좋은 것 같긴 해요.
형 작업실도 이 집에 있고. 지민은 짜장면 한 입 더 먹으며 말했다. 으흠. 윤기가 작게 헛기침을 하며 검지로 두어번 식탁을 두들겼다. 고개를 숙인 채 먹고 있던 지민이 살짝 고개를 들어 윤기를 바라봤다. 지민아. 윤기의 부름에 아예 상체를 들어 제대로 마주봤다.
집...
네.
집 넓어서 그런데...
......
같이 살래?
흐흠. 윤기는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살짝 틀어 회피했다. 마지막 말은 목소리도 너무 작은데다 거의 흘리듯 말했지만 지민은 제대로 똑똑히 들었다.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게 맞나. 지민은 멍해져 씹고 있던 입도 멈춘 채 멍한 표정으로 윤기를 보다가 풉 웃음을 터뜨렸다. 무표정으로 있지만 벌게진 귀는 그의 속을 숨기지 못했다. 더불어 아까부터 식탁을 톡톡 두들기고 있는 검지도. 형. 지민은 윤기를 불렀다. 윤기는 여전히 지민을 보지 않았다.
저 안볼거예요?
대답이나 해.
지민은 계속해서 터져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았다. 윤기를 겉으로만 아는 사람들은 윤기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지민은 윤기가 귀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말을 실제로 입 밖에 꺼낼수는 없지만. 이쯤되니 윤기가 왜 굳이 멀쩡한 집에서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왔는지 이해가 갔다. 지민은 주체할 수 없이 올라가는 입꼬리를 숨기지 못해 결국 손으로 살짝 입을 가렸다.
같이 살아도 돼요?
응.
형 지금 같이 살자고 프로포즈 한거죠.
... 알았으면 받아줘.
이제는 얼굴까지 벌게져 아예 고개를 숙인 그를 보니 지민은 눈까지 휘어졌다. 진짜 누구 애인인데 이렇게 귀엽지. 이제서야 모든게 이해가 되었다. 애초에 같이 살려고 큰 집으로 이사한거네. 가구도 내가 원하는대로 넣으라 한 거고. 결국 지민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소리내어 웃었다.
윤기는 지민에게 참 서툰 사람이었다. 한번도 겪어본 적 없는 감정이었고,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이었으니 지민을 대하는데 있어서 서툴 수 밖에 없었다. 지민은 그런 윤기가 좋았다. 서툴었기 때문에 꾸밈이 없었다. 지금도. 어떻게 말을 꺼낼까 밤새 고민 했겠지. 지민은 어쩐지 그런 윤기가 상상 되었다.
형 원래 이사하려고 한 김에 넓은 집으로 고른거예요, 아니면 저랑 살고 싶어서 일부러 이사를 한거예요?
몰라.
아아, 궁금한데.
......
얼굴도 좀 보여주고.
그제서야 윤기는 숙였던 고개를 들어 지민을 바라봤다. 크흠. 살짝 헛기침을 한 윤기는 제대로 지민을 바라봤다.
그냥.
네?
매일 아침 눈 떴을 때 네가 있었으면 해서.
... 아?
너 막 힘들게 왔다갔다 안해도 되고...
......
아니, 그... 음. 그냥 같이 계속 있고 싶어서.
......
흠. 음. 그러니까 같이 살자.
......
이거 프로포즈야.
제가 만약에 같이 안 산다 그러면 어쩌려고 그래요? 지민의 물음에 윤기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건 생각 못했는데. 윤기의 말에 지민은 결국 또 웃음을 터뜨렸다. 다행이네요, 그 생각으로 또 며칠밤낮 고민하지 않아서.
---
같이 살고 싶어서
넓은 집 산 윤기.
최대한 그런 티 안내고 싶었는데
말 꺼내자마자 눈치 챈 지민.
알고보면 지민의 취향이 잔뜩 들어간
윤기의 새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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