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슙민슈짐 일상



형 왜 나한테 또 안알려줬어요!


난데없이 작업실에 쳐들어오자마자 하는 소리가 저거다. 윤기는 머리를 쓸어넘기며 의자를 돌려 지민을 바라봤다. 윤기가 볼을 살짝 긁적였다. 어... 뜸들이는 윤기에 지민은 잔뜩 서운한 기색을 비치며 옆에 있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내가 진짜... 형 노래 나온다는 소식을 맨날 기사에서, 애들 입에서 들어야겠어요? 지민이 서운함에 조잘조잘 대는 모습을 윤기는 가만히 보기만한다. 아니, 입술만. 부리처럼 툭 튀어나와 아기새처럼 짹짹거리는 모습이 귀엽거든. 지민이가 알면 더 화낼게 분명해 속으로만 생각한다.



들어봤어?


당연히 들어봤죠! 애들이 완전 난리났다니까요? 역시 슈가래요. 노래 너무 좋다고.


그럼 좋아야지.


... 형이 대단한건 알지만 솔직히 방금 건 좀 재수 없었어요.



지민의 말에 윤기는 피식 웃기만 했다. 아 맞아, 애들이 제 갤러리를 또 봤나봐요 형이랑 아는 사이냐고 막 꼬치꼬치 캐묻는 거예요. 응. 윤기는 지민의 말에 작게 대꾸해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갤러리 사진들이 너무 빼박이라 그냥 아는 사이라고 했는데 애들이 또 난리나서 소개 시켜달라고 아우성이었다니까요. 그럴때마다 진짜 난감해 죽겠어요.


사진을 봤으면 내 얼굴도 봤겠네.


형 어차피 저번에 사진 떠서 얼굴 다 알아요.



윤기는 원래 얼굴 없는 작곡가겸 래퍼였다.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이라 대중에게 얼굴이 알려지는 것도 꺼려했다. 그래서 지인들도 그에 대해서만큼은 대중매체에서 일절 이야기 한 적이 없었는데 같이 작업하는 사람 중 한명이 실수로 올리는 바람에 얼굴이 알려지게 되었다. 올리자마자 바로 삭제 했지만 사진은 이미 여러군데 퍼지고 난 후였다. 인터넷 참 빠르네. 윤기가 상황파악을 하고 나서 한 말이었다. 사진은 그것 하나 뿐이었지만 파급력은 생각보다 엄청났다. 원래 밖에 잘 안나가지만 그 이후로 더더욱 밖에 안나갔다. 동네 산책은 그나마 괜찮은데 조금만 번화한 곳으로 나가면 알아보는 사람이 너무 많아졌다. 아니, 그 사진이라고 해봤자 밤에 얼굴도 살짝 사선으로 찍힌건데 어떻게 이렇게 딱딱 알아보지. 윤기는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어, 혹시 슈가 아니에요? 라는 질문에 아닙니다 라고 말 하는 것도 이제 익숙했다. 


이리로 와봐. 한창 조잘조잘대던 지민은 뜬금없는 윤기의 부름에 고개를 갸웃하며 다가왔다. 무릎이 살짝 맞닿을 정도로 다가온 지민은 멀뚱히 윤기를 내려다 봤다. 허리 숙여봐. 윤기의 부탁에 지민은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숙이다 갑자기 제 셔츠자락을 콱 쥐고 당기는 윤기의 행동에 깜짝 놀라 두팔로 윤기의 어깨를 잡았다. 뭐라 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닿은 입술에 지민은 눈만 깜빡였다. 깊게 입 맞출 생각은 없었는지 가볍게 한번 더 촉 입 맞춘 후 씨익 웃는 윤기를, 지민은 멍하니 보다가 아프지 않게 그의 어깨를 퍽 때렸다. 아 깜짝아, 말 좀 하고 하라고요 그런건. 지민의 말에 윤기는 더욱 진하게 웃었다. 순하게 휘어지는 눈매와 환히 보이는 입동굴이 그의 기분을 대변해주었다. 부리 같아. 뜬금없는 윤기의 말에 지민은 밉지 않게 노려봤다. 그의 그때 그때 생각나는데로 뱉는 습관은 이제 익숙하다. 윤기는 제 어깨를 잡고 있는 지민의 손목을 살짝 쥐었다. 얇지만 단단하게 잡히는 그의 손목을 엄지로 살살 쓸었다. 간지러워요. 지민의 말에도 윤기는 그만두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봤어? 윤기의 말에 지민은 무슨 말이지 생각하다 알아차리고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형,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왜?


내가 어떻게 노래를 불러요.


나한테 가끔 불러주잖아.


그거야!... 형이니까 불러주죠... 그냥 친구한테 불러주는 거랑, 내 목소리로 노래가 나오는 거랑 같아요?


내가 친구야?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장난식으로 하는 거랑 본격적으로 하는 거랑은 다르다는거죠. 형 내가 노래 부를 때마다 예쁘다 예쁘다 해주니까 객관성이 없잖아요.


나 내 일에 그렇게 관대한 사람이 아니야.


몰라. 그래도 객관성이 없어요, 형은.



윤기가 콧잔등을 찡그렸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하는 귀여운 반항 같은 거였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으면 미간이 찌푸려졌다. 윤기는 그렇게 표정으로 기분을 표현 하고는 했다. 지민은 아예 윤기 위에 살짝 걸터앉아 콧잔등을 살살 쓸어주었다. 나 참, 애도 아니고. 지민의 중얼거림에 윤기는 제 콧잔등을 만지는 지민의 손을 턱 잡았다. 윤기의 손이 작은 지민의 손을 거의 다 덮었다. 나 삐진 거 안보이냐. 윤기의 말에 지민은 아예 소리내어 웃었다. 내가 4분 다 불러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피쳐링이야 피쳐링. 윤기의 말에도 지민은 단호했다. 내가 잘못해서 형 곡을 망치고 싶지는 않아요. 윤기의 콧잔등이 더욱 찌푸려졌다. 어휴- 형은 왜 이런데서 고집을 부리고 그런디야. 지민은 윤기의 손에서 제 손을 빼 내 다시 살살 어루만졌다.


이번 노래는 어디서 영감을 얻으셨나. 너지, 어디서 얻냐. 지민의 혼잣말에 윤기가 바로 답하자 지민의 손이 우뚝 멈추었다. 불그스름한 볼은 홍조 때문인지 부끄러움 때문인지 모르겠다. 윤기가 짓궂은 표정으로 웃었다. 그래서, 이번 노래는 어떤 이야기인데요. 지민의 물음에 윤기는 지민의 허리를 감아 안았다. 지민의 몸에서는 항상 좋은 냄새가 났다. 같은 거 쓰는데 나한테서도 이런 냄새가 나나. 윤기는 문득 생각했다.



처음 만난 날.


응.


너한테 반한 날.


네.


그 이야기라고.



에, 처음 만난 내용이 아니던데? 지민의 말에 윤기가 살풋 웃으며 지민의 코를 살짝 꼬집었다. 넌 내 마음 죽어도 이해 못할거다. 지민은 윤기의 손을 잡아 내렸다. 그의 표정에 의문이 가득한 게 보여 윤기는 또 푸스스 웃었다. 네가 나를 처음 만나기 훨씬 전부터 나는 너를 좋아하고 있었노라고, 윤기는 제 입으로 말할 수 없었다.


내가 형이랑 아는 사이라는 것을 아니까, 애들이 계속 물어봐요. 지민이 말하는 것을 조용히 들으며 앞머리를 살살 만져주었다. 형이 여친이 없을리가 없다면서 그랬어요. 윤기는 그 말에 미소가 어렸다. 그래서 넌 뭐라고 했는데. 윤기의 물음에 지민이 잠깐 머뭇거렸다.



난 모르겠다고 했죠, 그냥.


왜? 사실대로 말하지.


형이 말을 안하고 다니는데 내가 어떻게 말해요.


......


근데 나보고 애인 있냐고 물어보면 있다고 대답해요.


그래.



지민은 윤기의 위치를 잘 알았다. 그가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도, 귀찮은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잘 알았다. 애인이 없다고 숨기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있다고 얘기를 안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에 지민은 딱히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런데 윤기는 지민의 대답이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살짝 굳은 표정이 풀리지 않았다. 무언가 깊게 생각하는 듯한 윤기의 모습에 지민은 그를 살짝 흔들며 물었다. 형? 어어... 그제서야 정신차리고 제대로 자신을 보는 윤기에, 지민은 살짝 그의 허벅지 위에서 일어났다.



저 이제 간다고요.


어어, 왜 같이가지.


아니, 나 할 거 있어서 그래요. 오늘은 집에 들어올거예요?


응.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저녁 해놓아야 할 것 같아서.


딱히.


그럼 제가 알아서 준비할게요.



아, 지민아 노래 생각해봐. 윤기의 말에 스르륵 닫히던 문이 다시 거칠게 열렸다. 아 그건 진짜 못하겠다니까요. 지민의 투정 어린 목소리가 들리자 윤기는 작게 소리내어 웃었다.











Q. 저는 아무래도 작곡 하신지 좀 돼서 나이가 있으실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엄청 젊어보여서 깜짝 놀랐어요.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지 물어봐도 되나요?


A. 아, 올해 27살 입니다.


Q. 세상에 그럼 고등학교 때부터 작곡을 시작하신 거네요?


A. 네, 뭐. 그렇네요.


Q. 최근에 슈가씨의 사진이 공개가 됐잖아요. 그 이후로 주위 반응이 어떻던가요?


A. 굉장히 어둡고 얼굴도 분간이 잘 안 될 사진이었는데 어떻게 다들 알아봐주시더라고요. 조금 놀랐습니다.


Q. 저도 지금 슈가씨를 처음 보는건데 정말 잘생기셨어요. 실물이 훨씬 더 좋아요. 얼굴없는 래퍼로 활동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얼굴이네요.


A. 과찬입니다.


Q. 슈가씨는 이때까지 어두운 듯 하면서도 한사람만을 향한 절절한 사랑을 주로 작곡, 작사하셨잖아요.


A. 부끄럽네요.


Q. 혹시 작곡한 곡들이 다 경험에서 나오는 것들인지 팬들이 굉장히 궁금해 하고 있어요.


A. 아...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대학생 때 부터는 전부 제 경험을 바탕으로 나온 곡들이에요. 저도 몰랐는데 얼마전에 이때까지 만든 노래들을 쭉 보니까 그때 그때의 제 상황들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더라고요. 저는 제가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 내가 이렇게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이구나 싶었어요. 뭐 작곡이나 작사라는게 경험에 빗대어 만들어진다고 하지만 저는 좀 심한 것 같아서요.


Q. 거의 다 사랑 노래인데 경험에서 나온 거라면 혹시 지금...


A. 아, 네. 연애중입니다. 딱히 숨길 생각은 없었는데 이제야 밝히게 되네요. 대학생 때부터 지금까지의 노래가 애인과 있었던 일이에요. 안 믿길수도 있겠지만 지금 애인이 첫사랑이라서 사랑 노래는 거의 그 사람과의 이야기예요. 제 애인은 최근에 알아서 아마 옛날노래도 자기 이야기인줄 모를거예요.


Q. 작곡가의 연애 스토리 조금 궁금하긴 하네요. 지금 나온 노래만 봐도 굉장히 로맨틱 할 것 같아요.


A. 글쎄요. 아마 애인은 모르겠지만, 제가 그 사람을 오랫동안 짝사랑 했거든요. 안그렇게 보이겠지만 그때 당시에는 제 자신에게 자신도 없어서 그냥 포기 하려고 했죠. 고백은 그 사람이 먼저 했는데 그 날 돌아가서 잠을 못잤어요. 너무 설레서. 사실 지금도 가끔 멍해질 때가 있어요. 가끔 너무 행복해서 이게 꿈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 사람이 내 옆에 있는게 안믿기기도 하고. 사귄지 오래 됐는데 아직도 그러네요. 요즘은 작업하면 바빠서 자주 못보니까 그 점이 좀 미안하긴 해요. 제가 그렇게 로맨틱한 사람이 아니라서. 노래가 어두운 듯 하다고 그러셨잖아요. 어쩌면 제 진짜 내면이 그럴지도 모르죠. 어렸을 때부터 그닥 좋은 환경은 아니었어요. 우울했죠. 지금 애인 만나면서 엄청 좋아졌지만. 정말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로 너무 고마워 하고 있어요, 그 사람한테. 아 근데 그런 걸 직접적으로 말 하기가 부끄러워서 노래로 만드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알아줬으면 싶은데 너무 이기적일까요.


Q. 애인분을 굉장히 좋아하는게 느껴지는데요. 아마 애인분도 슈가씨의 마음을 잘 알고 있을거예요. 그럼 다시 슈가씨 얘기로 돌아가서 팬분들이 슈가씨의 앨범이 나오기를 원하고 있어요. 옛날에는 그래도 싱글이 몇번 나왔었는데 요즘은 작곡과 피쳐링만 하시잖아요. 혹시 무슨 다른 이유라도 있나요?


A. 아 비밀로 하려고 했는데 질문도 나온김에 그냥 얘기를 하는게 더 나을 것 같네요. 사실 옛날부터 앨범 하나 준비 하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의 마지막 목표랄까요, 그런 그림들이 이 앨범에 다 담겨 있어요.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네요. 그래도 꼭 낼 예정이니까 기대 많이 하셔도 좋습니다.




미쳤어. 지민은 윤기의 인터뷰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안그래도 아까부터 계속 친구들이 와서 넌 알고 있었냐느니, 대박이라느니 왜 그런가 했더니 인터넷 들어가자마자 실검에 슈가 뜨는 거 보고 식겁했더란다. 뭔 일 생겼나 싶어 후다닥 들어갔더니 언제 했는지 인터뷰 내용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지민은 인터뷰 내용을 천천히 보면서 열이 오르는 볼을 손으로 눌러 식혔다. 내 앞에서는 낯간지럽다고 죽어도 말 안하더니 나 없을 때는 잘만 하네. 지민은 불퉁하게 말을 하면서도 기사를 몇번이고 읽었다.


야, 박지민 너 슈가랑 아는 사이잖아. 어디선가 나타난 친구들이 지민에게 다가오면서 말 걸었다. 어... 뭐. 지민의 대답에 동기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슈가랑 자주 만나? 오늘 그 인터뷰 진짜 대박이던데. 언제부터 친했어? 혹시 노래 같은 거 나오기 전에 먼저 들려주기도 해? 여러 질문들이 한번에 오니 지민은 정신 없었다. 야 하나씩 천천히 물어.



진짜 한번만 사진이라도 보여주면 안되냐. 어떻게 생겼는지 너무 궁금한데. 그 오늘 난리난 인터뷰에서도 그렇게 잘 생겼다고 그러던데.


몰라. 아무 생각 없어. 그리고 그 형 자기 얼굴 드러나는 거 진짜 싫어해.


언제부터 친했어?


대학생 때부터.


헐 뭐지 이 배신감은. 3학년인 지금까지 이야기를 안해주고 있었다니.


형 이 학교 학생이었어. 이 학교에서 만났으니까.


야 진짜 배신이다!



친구들의 악에 지민이 두 귀를 막았다. 형이 이런 반응이 나올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었나. 지민은 문득 생각했다. 윤기도 윤기지만 지민도 그의 인기에 굉장히 무감한 편이었다. 그러니까 인터뷰 하나에 이름이 실검에 뜰 정도인가 의아함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제 눈 앞에서 씩씩 거리고 있는 친구들을 보니 어쩐지 머쓱해져, 지민은 머리만 긁적였다.



너네가 그렇게 윤기 형을 좋아하는지는 몰랐지...


윤기 형? 슈가 본명이 윤기야?



아차. 지민은 재빨리 입을 꾹 다물었다. 본명도 공개가 안되었구나. 형은 대체 얼마나 신비주의로 활동한거야. 지민은 눈동자만 도륵도륵 굴리며 친구들 눈치를 봤다. 진짜... 부러운 새끼. 친구들의 말에 지민이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내가 형한테 형 엄청 좋아하는 친구가 있는데 혹시 한번 만날 수 있냐고 물어볼게. 지민의 말에 친구들이 환호 했다. 지민아 이왕이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결과를 가져와줘. 그래... 지민은 친구들의 토닥임을 받으며 한숨 쉬듯 대답했다.



근데 인터뷰 보니까 되게 애인 아끼는 것 같던데. 넌 애인 본 적 있어?


...어.


와 그 슈가는 어떤 사람이랑 사귈까.


이때까지 노래 들어보면 되게 대단한 사람일 것 같은데. 인터뷰에서도 그렇고. 본인은 막 티 내는 거 못한다 그래도 인터뷰에서도 애인 아끼는 거 느껴지고 노래도 보면 진짜 많이 드러나던데.


여친 어때?



지민은 어색하게 웃어보이기만 했다. 내가 어떻게 형 애인을 평가해. 말은 그렇게 해도 식은땀이 나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내 입으로 그런 걸 말하냐... 지금 당장이라도 부끄러움에 얼굴이 벌게질 것 같았다. 슈가 성격 어때? 막 일화 같은 거 보면 막 차갑고 말 없고 무뚝뚝하고 그렇다던데. 친구들의 말에 지민은 윤기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음... 무뚝뚝한 편인 것 같긴 해. 자신의 감정에 대한 말을 잘 안해줘. 근데 차갑진 않아. 되게 다정한데. 웃기도 잘 웃고. 웃는 거 예뻐.


... 형한테 예쁘다는 말 쓰는 사람 처음 봤네.



친구의 말에 지민은 순간 정신을 퍼뜩 차렸다. 아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지민은 또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자정이 다 되어가서야 윤기가 집에 돌아왔다. 요새 또 새 곡 작업 중이라 빨리 집에 돌아오는 일이 적었다. 먼저 자라고 했는데 여전히 환히 켜져 있는 거실에, 윤기는 고개를 갸웃 거리며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작은 소리로 웅웅 거리는 티비를 끄니 거실에 적막이 돌았다. 바닥에 앉아서 소파에 팔을 얹고 머리를 기대 자고 있는 지민이 보였다. 피식 웃었다. 그냥 먼저 자라니까 또 기다렸구먼. 윤기는 지민의 앞에 앉아서 똑같은 자세를 하고 지민을 마주 봤다. 통통한 볼이 팔에 눌려 입술도 툭 튀어나온 채 색색 자고 있는 지민을 천천히 눈으로 훑었다.


그를 보는 것은 언제나 익숙하지 않다. 가끔 손가락 끝이 저릿저릿 하고 가슴이 아리는게 견디기 힘들 정도일 때도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랑 어찌 이리 변한게 없는지. 자신한테는 내성이라는 것이 없는건지. 아니면 원래 누군가를 사랑하면 다 이런 것인지. 윤기는 지민과 사귄지 그렇게 오래 되었으면서 아직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윤기에게는 너무 어려운 것이었다. 그 사랑이라는 것은.


그 종류가 어찌 되었든, 사랑이라는 감정에 서툴기만 했기 때문에 윤기는 더 조심스러웠다. 최대한 상처를 안주고 싶었고, 최대한 소중히 대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윤기도 결국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도 했고, 잘못도 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지민에게 감정을 배웠다. 그리고 지금도 매일 새롭게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보통 이맘때 즈음이면 권태기가 온다고 하지만 윤기는 그런 것 따위 느낄 새가 없었다. 지금도 지민에게 느끼는 이 몽글몽글함에 어쩔 줄 모르겠다.


윤기는 한 손을 들어 천천히 지민의 볼에 손가락 끝을 살짝 갖다대었다. 부드러운 살결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 때 지민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갑자기 마주하게 된 그의 시선에, 윤기는 깜짝 놀라 그대로 굳어버렸다. 자신도 모르게 헙 숨도 멈추었다. 지민은 잠이 가득한 눈을 끔뻑이며 바로 앞에 있는 윤기를 바라봤다. 아, 형. 지민의 작은 소리에 윤기가 볼에 갖다대었던 손을 천천히 치웠다. 거실에는 여전히 적막이 감돌았다. 왜 기다리고 있어. 윤기가 결국 입을 떼었다. 윤기의 말에 지민이 바람 빠지는 웃음을 냈다.



저 기다리는 거 좋아해요.


......


좋아하는 사람 기다리는 거. 좋은데.


......


우리 같이 살기 전에. 데이트 할 때. 형 항상 저보다 빨리 왔었잖아요.


응.


그때 저 기다리면서 어떤 기분이었어요?



갑작스러운 물음에 윤기는 살짝 당황스러워 하는 기색을 비쳤다. 그의 표정에 지민은 흐흫 낮게 웃음을 흘렸다. 형 엄청 당황해 하는데? 지민의 말에 윤기가 한 손을 들어 지민의 머리에 살짝 딱콩을 때렸다. 아야. 지민이 맞은 부위를 문질렀다.



심장 터질 것 같았어.


......


매 번.


......


이상하지? 매 번 똑같은 너고, 똑같은 데이트였는데. 이상하게 매 번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


아 나 이러다 심장병 걸리는 거 아닌가 싶더라.



물론 지금도. 윤기가 입꼬리를 올려 웃으면서 하는 말에 지민이 순간 입을 꾹 다물었다. 얼굴이 서서히 붉어지는 것을 본 윤기가 그의 볼에 살짝 손을 갖다댔다. 오늘따라 왜 그러지? 지민의 물음에 윤기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고백을 막 하지?


......


오늘 인터뷰에서도 그렇고.


아.


오늘 형 계속 실검에 올랐던 거 알아요? 팬들이 사랑꾼이래요. 애인 엄청 좋아하는 거 다 보인다면서.


......


제 앞에서는 막 그런 거 얘기 잘 안해주면서 나 없는데서는 그런 말 많이 하나봐요.


처음이야. 어디에서 그렇게 티 내는 거. 너는 애인 있다고 얘기하고 다닌다는데 나도 숨길 이유가 없잖아.


......


아, 일부러 숨기려고 한 건 아니고. 그냥... 그, 음... 뭔가 부끄러워서.


알아요. 그렇게 굳이 말 안해도. 그렇게 굳이 다른 사람한테 티 안내도 형 나 좋아하는 거 알아. 매번 느껴.


......


내가 다른 사람들한테 애인 있다고 얘기한다는 말 듣고 아차 했어요?


음... 응. 좀 그랬어.


형은 형대로 나는 나대로 하는 방식이지 뭐. 꼭 다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 윤기는 볼을 만지작 거리던 손을 내렸다. 지민이 바로 머리를 손 하나를 빼 윤기의 손을 잡았다. 지민의 온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항상 윤기의 손보다 지민의 손이 더 따뜻했다. 너 따뜻해서 좋아. 언젠가 자신이 지민을 안고 자면서 했던 말이 생각났다.


아 형도 왔으니까 방에서 자야지. 지민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윤기도 따라 일어났다. 둘의 손은 여전히 맞잡은 채였다. 아, 근데 형 새로 나온다는 앨범이 뭐예요? 지민의 물음에 윤기가 작게 탄성을 뱉었다.



아, 그거.


형의 마지막 목표?


그냥 옛날부터 이런 앨범 하나 만들고 싶다 생각하던게 있어.


그게 뭔데요?


알려주면 넌 나를 좀 도와줘.


예? 제가요?


그냥 간단한거야. 약속하면 가르쳐줄게.



지민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윤기가 자신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뭐 별다를게 있나 싶었다. 지민의 동의에 윤기가 살짝 웃었다.



진짜 내 이야기들로만 채워진 앨범을 만들고 싶어서. 여태까지는 다른 가수들한테 노래를 주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내 개인적인 감정을 다 넣을 수 없었지만. 내 앨범은 그래도 되니까.


아...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꼈던 것들을 다 이야기 하고 싶었어. 소설처럼. 내 진심을 다 보여주고 싶은데.


......


그런데 내 이야기를 하려면 네가 꼭 필요해.


형.


그래서 부탁하는거야.


......


목소리 들려줘.


... 형 진짜.


이건 진심이야. 내 개인적 욕심이기도 하지만, 네 애인이기 전에 작곡가로서, 래퍼로서 하는 이야기이기도 해. 나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말이 아니야. 정말 조금이라도 괜찮아. 한 곡만, 후렴만이라도 좋으니까. 내 이야기를 불러줄 수 있는 사람은 너 밖에 없어.



지민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것 때문에 저번부터 노래 해달라고 조른 거였구나. 제 앞에 간절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윤기를 봤다. 맞잡은 손을 살살 흔들고 있었다. 수락해달라는 나름의 애교겠지. 지민은 다른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윤기의 고집은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나 간절하면 끝까지 매달릴 사람이었다. 후. 결국 한숨을 쉬었다.



응? 지민아...


알았어요.


어?


할게요.


진짜?


제가 어떻게 형을 이겨요. 내가 형 거절 못하는 거 잘 알면서.



윤기는 활짝 웃으며 지민을 꽉 껴안았다. 진짜 고마워. 지민은 윤기의 힘에 살짝 밀려나면서 그의 목을 껴안았다. 아 어떡해 너무 좋아. 윤기의 솔직한 말에 지민이 푸핫 웃었다. 아 진짜 거짓말 아니고 너무 벅차서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아. 윤기는 지민을 안은 손을 풀고 바로 폰을 꺼내서 막 타자치기 시작했다. 지민아 시간 되는 날 다 알려줘, 아 너무 설레서 뭐부터 해야할지 감이 안오는데. 윤기는 머리를 긁적이며 방으로 들어갔다. 지민은 멍하니 윤기의 등만 바라보다가 결국 또 웃음을 터뜨렸다. 요즘따라 형이 왜 이렇게 귀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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