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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민 말도 안되는 육아물 썰11

길/육아물


요즘 태형은 도하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니 그 때마다 심장이 철렁철렁 하는 것이다. 제일 처음에는 잠시 물 좀 마신다고 부엌 갔다가 돌아오니 거실에 얌전히 앉아서 잘 놀고 있던 애가 사라져 심장이 철렁했다. 아들? 거실에 덩그러니 서서 도하를 불렀지만 제 목소리만 살짝 울릴 뿐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집 안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숨길 수는 없었다. 현관문과 중문은 제대로 닫혀 있는지, 베란다 문은 잘 닫혀 있는지 확인 한 후 집안 구석구석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들! 자신이 부른다고 대답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태형은 계속해서 불러댔다. 거실, 화장실, 서재, 아가 방, 자신의 방, 옷 방까지 다 뒤져 봤는데도 보이지 않자 갑자기 숨까지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분명히 집 안에 있을 텐데, 그 애가 밖에 나갈 수가 없는 것을 잘 알면서도 머릿속에는 벌써 최악의 상황까지 만들어냈다. 속이 울컥울컥했다. 집은 왜 또 이렇게 넓은지. 괜히 애꿎은 집만 욕하며 마구 뒤졌다.

 

없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점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어떡하지? 진짜 어디로 갔지. 그 잠깐 새에 이렇게 바로 사라졌을 리가 없는데. 집 안에 있는 걸 알면서도 괜한 불안감에 계속 눈물이 비집고 나올 것 같았다. 그러다 눈에 띈 계단에 설마 해서 다다다 올라가봤다. 2층 거실 한가운데 앉아 좋아하는 인형을 바닥에 탕탕 내려치고 있는 도하의 뒷모습을 보자마자 태형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스르륵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흐으... 꾹 참았는데 아이의 동글동글한 뒤통수와 앙증맞은 등을 보자마자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 제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결국 다 쏟아냈다. 목 안쪽에서부터 끅끅거리는 소리가 났다.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도하가 뒤돌아 제 아빠를 봤다. 빠빠! 도하가 다다다 기어와 태형의 허벅지를 짚고 태형에게 안겼다. 태형은 도하를 꾹 안았다. 빠빠. 도하는 얼굴이 벌게져 눈물을 뚝뚝 떨구는 태형을 보며 점점 자신도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따라 울기 시작했다. 으에에엥!!!! 빠빠!!! 으이잉!!! 태형은 자신보다 더 서럽게 우는 도하의 몸을 둥둥 거리며 달래면서도 제 눈물을 달래지는 못했다.

 

 

 

 

 

그 날 이후로 도저히 도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겠는 것이다. 도하가 기는 속도는 웬만한 성인이 걷는 속도 못지않은 것 같았다. 어찌나 빨리 기어 다니는지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 덕에 태형은 꼭 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도하를 업거나 안게 되었다. 지민에게는 그 날 일을 굳이 말하지 않았다. 애 제대로 안보고 뭐했냐고 화를 내기도 하겠지만, 왠지 자신이 말하다 울 것 같아서 그러기도 했다. 지민에게는 계속 당부했다. 애가 기어 다니는 속도가 우사인 볼트 급이라고. 지민이 오버하지 말라고 핀잔을 줬었다.

 

지민은 주말마다 집에 왔다. 여기 계속 있어도 된다는 태형의 말에 지민은 단호히 거절했다. 이제 고3인데 자기도 공부해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태형은 지민이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잘 알아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지민을 붙잡고 떼를 쓸 수 없었다. 게다가 애초에 지민은 도하를 같이 키울 이유조차 없었다. 엄마 보고 싶다고 칭얼거릴 때는 참 난감했다. 도하는 이제 제 엄마가 자주 없다는 사실을 점점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도어락을 해제하는 소리만 들리면 현관 앞까지 다다다 기어가곤 했다. 지민은 그런 도하를 매번 안고 집 안에 들어오곤 했다.

 

도하가 자라면서 궁금한 것이 많아졌다. 집 안 곳곳 이리저리 쏘다니기를 좋아했다. 지민과 태형은 그럴 때마다 씰룩거리는 통통한 엉덩이만 보면서 어디 부딪치지는 않을까, 어디 다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저번에 빠른 속도로 기어가다 그만 식탁다리에 머리를 찧어 집 떠나가라 울어대던 도하를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철렁했다. 애 키우다가 내가 심장마비로 먼저 돌아가시겠다. 저번에 지민이 한 말에 태형도 동의 했었다.

 

 

도하가 걸어 다니면 좀 더 좋은데 데려갈 수 있을텐데.

 

좋은데 어디?

 

많지. 당장에 집 앞 놀이터 가도 되고.

 

 

지민의 말에 태형은 도하를 유심히 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들. 한 손에 인형을 잡은 채 거의 인형을 뭉개며 이리저리 기어 다니는 도하를 뒤에서 불렀다. 도하야. 태형이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도하는 엉덩이를 붙여 앉은 후 머리만 돌려 태형을 바라봤다. 아 잠깐만 이건 소장감이야. 태형은 주머니에 넣어두던 폰을 꺼내 바로 도하를 찍어댔다. 도하는 찰칵찰칵 들리는 소리에 꺄르르 웃어보였다. 태형은 도하의 웃음에 따라 웃었다. 태형이 웃을때마다 네모로 변하는 입은 언제 봐도 신기했다. 네가 하도 찍어 대서 이제 도하가 저 소리만 나면 자기 찍는 줄을 알아. 지민의 말에 태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 휴대폰에 지민은 평생 모를 그의 사진과 도하의 사진이 엄청 많았다. 태형의 보물이었다.

 

인형을 손으로 마구 뭉개던 도하는 갑자기 엎드리더니 제 방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옛날에는 딱히 안 그랬는데 요즘은 도하가 기기 시작하면 긴장된다. 태형과 지민은 숨까지 죽여 가며 매의 눈으로 도하를 봤다. 아 진심 안 되겠다, 보호 장비를 사거나 모서리마다 스펀지를 사던가 해야지. 지민의 말에 태형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 방에 들어간 도하는 인형을 제 등에 업은 채 이리저리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이 넓은 집 안 곳곳을 다다다 기어 다니는 모습을 태형은 전부 동영상 안에 담아냈다. 도하야. 지민이 부르자 태형의 방에서 빼꼼 나온 도하가 기어와 바닥에 앉아있는 지민의 품에 안겼다. 마마! 미나, 미나! 도하가 눈을 휘어 웃으며 하는 말까지 영상 속에 다 담아낸 태형은 저장 버튼을 누른 후에야 바닥을 치며 웃었다. 미나래, 미나. 지민은 도하를 안은 채 엎드려서 이제는 꺼이꺼이 우는 태형을 노려봤다.

 

도하는 지민과 태형이 하는 말을 다 따라 하기 시작했다. 애가 배우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지민은 도하 앞에서 대화를 나눌 때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도하가 요새 꽂힌 단어는 미나였다. 태형이가 지민을 부르는 것을 듣고 도하가 따라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 도하가 자신을 보고 미나라고 불렀을 때 너무 놀라 말도 안 나왔다. 제 팔을 톡톡 치며 미나! 미나! 거리는 도하가 너무 사랑스러워 꽉 안아줬었다. 그 이후로 도하가 마마랑 미나를 번갈아 쓰는 것이다. 엄마 해봐 엄마. 엄마! 지민의 말에 도하가 따라서 엄마 엄마 외쳤다. 그래봤자 그 때만 잠깐 쓰고 곧 마마나 미나로 돌아오지만. 반대로 태형한테는 파파 아니면 태태라고 했다. 지민이 평소에 태형을 태태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서 따라 하는 것이었다. 지민이 화나서 김태형! 소리치면 그의 밑에서 다리 쭉 뻗고 앉아 태혀이! 따라 소리치는 도하를 볼 때면 태형은 절로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았다. 둘 다 복숭아 색으로 물들인 통통한 볼을 움직이며 말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몸부림이 다 쳐졌다.

 

 

 

우리 도하, 서볼까요? 지민은 도하의 두 허리를 잡고 자리에 세웠다. 도하는 허공에서 발을 움직였다. 마치 자전거를 타는 모양새에 태형은 그것도 영상으로 담아내기 시작했다. 너는 그것 좀 작작 찍어. 지민의 말에도 태형은 아랑곳 안했다. 나중에 남는 게 사진이야. 지민은 작게 쯧 혀를 차곤 다시 도하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도하야, 소파 잡아봐 소파.

 

으으응! 미나! 앙대!

 

... 안 돼는 또 어디서 배운 거야.

 

 

지민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소파를 팡팡 내려치면서 앙대 앙대 외치는 도하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아이고, 우리 아들 왜 이렇게 말을 잘해, ? 우리 아들 천재 아니야? 태형은 호들갑 떨면서 폰을 도하 가까이 들이댔다.

 

 

아들, 아빠 이름 뭐야. 아빠 이름.

 

태태! 태태! 앙대 태태, 앙대.

 

대박, 지민아 우리 아들 언어에 머리가 트였나봐.

 

미나 이뽀 이뽀!

 

헐 세상에 예뻐까지 알다니, 우리 아들 누구 아들인데 이렇게 이쁜말만 골라서 하지?

 

너는 안 돼가 이쁜 말이냐?

 

아들, 또 얘기해봐.

 

 

태형은 지민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신나서 폰을 들이대며 도하를 부추겼다. 도하는 두 손을 소파에 떼자마자 바닥에 콩 엉덩방아를 찧었다 도하야! 지민이 깜짝 놀라 도하를 안아들었지만 도하는 괜찮은지 박수만 짝짝 쳐댔다. 아직 다리 힘이 부족한가... 지민은 속으로 생각하며 도하의 두 다리를 주물주물거렸다. 이뽀 도하 이뽀. 도하가 박수를 치며 웅얼거리듯 하는 말에 태형은 아예 뒤로 넘어갔다. ... 좋은 세상이었다... 태형의 리액션에 도하는 꺄르르 웃어댔다.

 

 

도하 예뻐요?

 

도하 이뽀.

 

엄마 예뻐요?

 

미나 이뽀! 이뽀!

 

아빠는? 아빠 예뻐요?

 

태태 이뽀 이뽀!

 

 

지민의 물음에 도하가 엉덩이를 들썩이며 대답했다. 태형은 도하의 대답에 웃음을 터뜨린 지민까지 동영상으로 찍고 나서야 폰을 넣었다. 오늘도 엄청난 수확이야. 태형은 오늘 찍은 영상들을 외장하드에 옮길 생각을 하며 도하를 바라봤다. 도하는 다시 지민의 무릎에서 내려와 천천히 어디론가 기어가기 시작했다. 지민은 천천히 도하의 뒤를 따라갔다. 부엌으로 향하는 도하에 지민이 바로 도하를 안아들었다. 앙대! 도하가 지민의 품에서 버둥거렸지만 지민은 그런 도하를 꽉 안았다. 이렇게 또 서랍 열어서 안에 다 꺼내려고? 지민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도하는 푹 지민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해. 거실로 오자 자신을 올려다보며 말하는 태형에, 지민은 도하 몰래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네가 치울 거 아니면 조용히 해. 지민의 말에 태형은 입을 다물었다. 사실, 청소는 태형도 할 수 있었다. 다만, 깔끔하게 정리를 잘 못해서 항상 지민이 다시 정리 하고는 했다. 태형은 그때마다 지민의 뒤에 안절부절 못하면서 지민아 내가 할게. 같은 말을 꺼냈지만 넌 그냥 정리에는 손 안대는 게 도와주는 거야라는 말을 들은 이후로 태형은 얌전히 청소만 했다.

 

 

아니, 장난감 많은데 왜 서랍 안에 들은 걸 다 꺼내는지 모르겠네.

 

그게 더 재미있나보지.

 

위험하잖아. 특히 부엌은 깨 같은 거 쏟아지면 노답이고, 칼 떨어지면 위험한데.

 

부엌에 아예 문을 달아놓을까.

 

뭐야, 그건.

 

슬라이딩 도어 달면 되지. 잠글 수 있는 걸로.

 

 

지민은 생각지도 못한 태형의 말에 푸핫 웃었다. 제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있던 도하가 빼꼼 고개를 들어 지민을 바라보다 따라 웃었다. 아들 재밌어? 태형의 말에 도하가 태형 쪽으로 고개를 돌려 꺄르르 웃었다. 어쨌든, 우리 도하 부엌은 가면 안돼요. 지민의 말을 아는지 모르는지 손가락만 쭉쭉 빠는 도하에, 태형이 살짝 그의 손을 빼내었다. 솔직히 얘 다 알아듣는다. 지민의 말에 태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복숭아, 걷는 것 보다 말을 더 빨리 배우네.

 

 

근데 도하 말 진짜 빨리 배우는 건가.

 

몰라. 이맘때 즈음이면 다 엄마 아빠는 하지 않나. 나머지는 그냥 우리가 자주 하는 말 따라 하는 수준이고.

 

아 주위에 애가 없으니까 뭐 제대로 크고 있는 건지를 모르겠네.

 

 

우으응..으브! 도하가 갑자기 버둥대자 지민이 그를 살짝 바닥에 내려주었다. 도하는 또 빠르게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아들 걸어 다니기 시작하면 더 힘들겠는데? 도하를 멍하니 바라보던 태형이 말했다. 지금도 집 안 곳곳을 매일 돌아다니는데 걸어 다니기 시작하고 밖에 나가면 얼마나 더 그러겠어. 태형의 말도 일리 있었다. 진짜 한눈팔면 안 된다, 너 매번 말하는 거지만 진짜 도하 두고 화장실도 가지 마 알았어? 지민의 말에 태형은 괜히 찔려 어색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저번에 도하 사라진 줄 알고 울면서 찾았던 그 날 일을 지민이 알 리가 없는데 왠지 다 알고 있을 것 같은 기분에 태형은 괜히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나만 입 다물면 돼, 나만. 태형은 몇 번이나 다짐했다.

 

 

 

나 저녁 준비 할 테니까 도하 부엌으로 안 오도록 해줘. 지민의 말에 태형은 티비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충 고개만 끄덕였다. 지민은 멀뚱히 서서 그런 태형을 보다 성큼성큼 다가와 태형의 엉덩이를 퍽 내려쳤다. , 아파!! 태형이 짜증내면서 상체를 일으켜 앉아 지민을 올려다봤다. 그런 모습까지 얄미워 지민은 입술만 잘근잘근 씹었다.

 

 

내가 진짜 누구 때문에 여기서 시간 죽이고 있는지 알지?

 

... 미안.

 

진짜 마음에 안들면 바로 집에 가버릴 거니까 알아서 몸 사려라.

 

.

 

도하 보고 있어.

 

 

지민의 말에 태형은 바로 티비를 끄고 도하를 찾기 시작했다. 도하야. 아들. 우리 복숭아. 어디 갔어? 태형의 부름에 어디선가 입에 인형을 문 채 도하가 기어 나왔다. 아들, 이거 입에 무는 거 아니라고 했지. 태형이 재빨리 그에게 달려가 인형을 입에서 빼내고 줄줄 흐르는 침을 거즈수건으로 닦았다. 미나! 미나! 태형의 손길을 피하면서 엄마를 부르는 도하에, 태형은 도하를 아예 안아서 둥둥 몸을 튕겨주었다. 엄마 지금 맘마 만들어, 맘마 다 만들 때까지 아빠랑 놀자. 그럼에도 도하는 자꾸 발버둥 치며 태형의 품에서 벗어나려 했다. 으이잉!! 조그만 손으로 퍽퍽 태형을 때리기까지 하는 통에 태형은 결국 소파에 살포시 도하를 내려놓았다. 우으응... 뭐가 계속 마음에 안 드는지 투정만 부리는 도하 앞에 인형을 흔들어 보기도 하고, 도하가 좋아하는 까꿍 놀이도 해보고, 카메라도 들이대 봤는데 그의 표정은 펴질 생각을 안 한다. 마마! 마마! 손을 뻗으며 자꾸 엄마만 찾는 도하에, 태형은 난감함에 머리만 긁적였다.

 

 

아빠도 엄마 보여주고 싶지만 아들이 부엌으로 가기에는 너무 위험해.

 

으브으!

 

무슨 말인지 알겠어, 김도하?

 

아브브! 으브...!

 

, 알겠냐고요. 복숭아씨.

 

 

태형은 도하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몰랑몰랑한 감촉에 손에 느껴지자 태형이 작게 키득거렸다. 진짜 지민이 볼 만지는 것 같아. 태형이 제 볼을 검지로 콕콕 찌르자 도하는 큰 눈만 끔뻑이다가 제 고사리 같은 손으로 똑같이 제 볼을 콕콕 찔렀다. 아이고!!! 귀여워 죽겠네!!! 태형은 결국 도하를 꼭 안고 거실 바닥을 굴렀다.

 

멀리서 들리는 태형의 앓는 소리에 지민은 작게 웃었다. 저렇게도 좋을까. 처음 도하를 키운다 했을 때는 걱정 밖에 안됐는데 도하 키우는 거 보면 괜한 걱정이 아니었나 싶다. 아직 서툰 부분이 있긴 해도 나름 꼼꼼하게 챙길 거 다 챙기고 잘 키우는 거 보면 좋은 아빠다. 예전보다 많이 밝아지고 웃음도 많아졌다. 지민은 그 점이 제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덕에 육아에 일절 관여를 하지 않겠다고 했던 자신이 결국 도하를 같이 키우게 되었지만.

 

오늘은 자고 내일 집에 갈까. 파를 썰면서 의미 없는 생각을 하던 지민은 갑자기 거실에서 들리는 태형의 괴성에 인상을 찌푸렸다. 우와아아아!!!!! 지민아!!!!! 제 이름을 크게 부르면서 다다다 달려오는 태형에, 결국 지민은 칼을 내려놓고 태형을 돌아봤다.

 

 

야 내가 그렇게 크게,

 

, 도하가!! 도하가!

 

도하?

 

빨리 와 봐!

 

 

갑자기 제 손을 확 잡아당기는 태형에 지민은 순간 휘청거렸다. 빨리빨리빨리!!! 태형이 잔뜩 흥분하며 지민을 질질 끌고 갔다. 잠깐, 잠깐만 내가 갈게! 지민은 정신없이 태형의 손에 이끌려 거실에 나갔다가 보이는 광경에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빽 질렀다. 도하야!!!

 

도하가 두 다리로 선 채 고개만 돌려 지민을 바라봤다. 지민의 얼굴이 보이자마자 꺄르르 웃으며 몇 발자국 내딛는 도하에 태형은 결국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마마! 몇 걸음 걷다가 쿵 엉덩방아를 찧은 도하에, 지민이 깜짝 놀라 후다닥 도하에게 달려가 그를 안아주었다. 도하는 아프지도 않은지 여전히 방실방실 웃고 있었다. 미나! 미나! 도하가 웅얼거리며 지민의 두 볼에 손을 갖다 대었다. 어떡해, 우리 복숭아 진짜 걸어. 지민은 감격스러움에 뒤돌아 태형을 바라봤다가 기겁을 했다. 너 왜 울어! 지민이 도하를 안은 채 태형의 앞에 마주 앉았다. 흐으... 우리, , 우리 아들이... 태형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팔을 뻗었다. 지민은 도하를 안겨주었다. 아이고, 우리 도하가!! 태형은 도하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도하는 태형의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우리 아들이 벌써 걷기 시작하다니...

 

......

 

이러다 나중에는 뛰기 시작하고, 말하기 시작하고, 학교 다니기 시작하고, 여친 생겨서 오고, 취직 하고, 결혼 하겠지...

 

야 아직 2살 밖에 안됐어.

 

기어 다니기만 할 것 같았던 우리 복숭아가... 아 너무 감격스러워.

 

눈물이나 닦아.

 

 

태형은 그제야 한 손을 들어 눈물을 닦았다. 태형의 얼굴을 멍하니 보던 도하가 제 손을 태형의 눈 밑에 갖다 대고 슥슥 닦기 시작했다. 빠빠.. 웅얼거리면서 부르는 도하에 태형은 다시 도하를 꾹 안았다. 아들아 제발 천천히 커줘...

 

말하기 시작하면 아주 오열을 하겠네. 지민은 그 생각을 하며 폰을 꺼내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여전히 얼굴에 눈물을 가득 묻힌 채 도하를 안고 있는 태형을 찍으며 말했다. 아들 걷는 거 안 찍을 거야? 아 맞아. 태형은 그제야 도하를 바닥에 내려주었다. 도하는 멀뚱히 앉아 태형을 바라보며 눈을 끔뻑거렸다. 태형은 그대로 조금 떨어져 앉았다. 아들, 아빠한테 와봐. 태형의 말에 도하가 기어갔다. 아니, 도하야 일어나야지. 태형은 도하에게 다가가 다시 멀리 앉히고 뒤로 갔다. 태형이 움직일 때마다 도하가 기어서 졸졸 쫓아갔다. ! ! 아빠 이름을 부르면서 졸졸 따라다니는 도하에 태형은 금세 목적을 잊고 헤벌쭉한 얼굴을 하고선 거실을 이리저리 배회했다. 그때마다 얼굴을 높게 치켜들고 따라오는 도하가 귀엽기만 하다.

 

지민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결국 들고 있던 폰을 내려놓았다. 너 도하 걷는 거 영상으로 안 찍을 거야아 맞다. 태형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도하의 앞에 앉아, 그의 허리를 두 손으로 잡고 일으켰다. 도하가 허공에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다. 태형이 살짝 세워주자 그대로 바닥에 쿵 주저앉았다. 태형은 머리를 긁적였다. 분명 스스로 일어나서 걸었는데. 지민은 결국 카메라를 껐다. 기분 내키면 걷나보다. 지민의 말에 태형의 표정이 살짝 시무룩해졌다. 아들 처음 걸었을 때 찍었어야 했는데... 지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저녁 하러 간다, 부엌에 애 오게 하지 마. 지민의 말에 태형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하는 고개를 들어 지민을 올려다보더니 지민의 바지를 꾹 부여잡고 제 힘으로 서기 시작했다. 헐 지민아! 지민아! 태형의 호들갑에 지민도 깜짝 놀라 내려다 봤다. 미나, 으브! 도하가 두 발로 선 채 지민을 올려다봤다. 태형이 급하게 손을 뻗어 제 폰을 들고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아들. 태형의 부름에 도하가 태형을 돌아봤다. 도하가 두 발로 선 채 카메라를 향해 꺄 웃는 모습이 제대로 찍혔다. 아 너무 감격이야. 태형은 또 울컥해서 한 손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지민은 도하가 붙잡은 발을 한걸음 뗐다. 그만큼 도하가 아장아장 걸었다. 그 모든 행동들이 태형의 폰에 찍히고 있었다. 또 한 걸음 움직이자 그만큼 아장아장 따라왔다. 태형아 이거 봐, 너무 귀엽다. 지민이 눈을 접어 웃으며 태형을 향해 웃었다. 태형은 그의 웃음도 카메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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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하 10개월

지민이 태형이 19

어느 주말

 

 

 

 

 

아 현생 진짜 욕나온다

빨리 방학이 왔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