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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민 남고생의 일상 10

길/남고생의 일상 (完)



1. 수학여행 마지막

  

전주, 경주를 돌고 마지막은 부산이었다. 부산 역시 자유롭게 다니고 시간에 맞추어 숙소에 오면 되는 형식이었다. 지민은 미식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 버스 입구에서 손을 내밀고 있는 태형을 봤다. 멈칫한 지민은 잠시 머뭇거리다 결국 그의 손을 잡았다. 단단한 그의 손이 지민을 확 잡아 당겼다. , ! 지민이 순간 중심을 잃고 그대로 태형 쪽으로 엎어졌다. 태형이 지민을 단단히 받쳐 안았다. 깜짝 놀랐잖아! 지민이 어깨에 쿵 부딪친 얼굴을 홱 들어 태형을 바라봤다. 비켜. 살짝 밀자 태형이 순순히 뒤로 밀려났다. 지민은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걸음을 옮겼지만, 속은 전혀 아무렇지 않았다. 태형을 아무렇지 않게 보기가 힘들었다.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그 술래잡기 이후로 계속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왜 이래 진짜. 지민은 답답함에 가슴만 툭툭 쳤다.

 


 

 

 

아이들은 신이 났다. 아무래도 부산에 오기는 힘드니까 다들 설레는 듯 했다. 야 근데 부산은 성인 돼서 와야 더 재밌는 거 아니냐. 정우가 지민에게 다가와 어깨에 팔을 턱 걸치며 말했다. 지민은 정우를 힐끗 쳐다봤다.

 

 

 

낮에 해운대 갔다가 밤에 클럽 딱!


고딩이 무슨 클럽이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러니까 성인 돼서 와야 재밌다는 거 아니야.

 

바다나 가.

 

야 김태형! 너도 갈 거지?

 

 

정우가 뒤돌아 태형을 바라봤다. 태형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 옛날에 부산에 살았는데. 지민의 말에 정우가 놀래서 지민을 내려다봤다. 진짜? 너 김태형이랑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다며.



그 보다 더 전에. 부산에 태어나서 4살 이었나 쟤 옆집으로 이사 왔어.

 

그럼 서울 와서 처음 사귄 친구가 김태형?

 

몰라. 엄마랑 아빠끼리도 친해서 태어났을 때부터 만났대. 근데 기억 안 나. 처음 만난 날도 기억 안나는데 무슨.

 

 

생각해보니 정말 징글징글한 인연이기는 하다. 지민은 갑자기 돋는 소름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럼 진짜 서로 모르는 게 없겠네. 정우의 말에 지민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눈만 봐도 구라 치는지 어떤지 다 아는데. 정우는 고개를 살짝 돌려 태형을 힐끔 쳐다봤다. 태형은 몇 걸음 뒤에서 천천히 자신들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 야 넌 무슨 왕따 코스프레 하냐, 여기로 와. 정우가 손짓 하며 뱉은 말에 태형은 조금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지민의 옆에 섰다. 윤정우 잠시 와 봐! 어디선가 정우를 부르는 목소리에, 정우는 어깨동무 하던 손을 내려 지민의 등을 툭 치며 자신을 부르는 곳을 떠났다. , 잠시만 윤정우! 지민이 다급히 그를 부르며 뒤돌아 봤지만 정우는 이미 지민이 안중에도 없었다. 순식간에 둘만 남겨진 상황에 지민은 마른침만 삼켰다. 그러다 또 퍼뜩 정신이 든다. 아니 왜? 내가 왜 김태형을 의식해? 아니 의식 한다고? 내가? 이상하다. 진짜 이상하다. 어제부터. 지민은 짜증스러움에 제 머리를 마구 헝클였다. 태형은 지민을 힐끗 보더니 말없이 손을 들어 슥슥 그의 머리를 정리해주었다. 묵직한 그의 손이 느껴졌다. 지민은 살짝 머리를 비켜 그의 손에서 벗어났다. 태형의 손이 우뚝 멈추더니 결국 손을 내렸다. 이상해. 태형이 나직이 말했다. 지민은 말없이 그를 지나쳐 걷다, 결국 태형에게 손이 잡혀 뒤돌려졌다. 태형의 표정이 드물게 굳어 있었다. 색시 이상하다고. 지민은 손목을 비틀어 손을 빼내었다. 그래, 이상하다. 자신이 생각해도 이상한데 남이 보면 얼마나 그럴까. 특히 태형이라면. 지민은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형은 살짝 제 입술을 짓이기다 다시 입을 열었다.

 

 

미안해.

 

......

 

내가 미안해.

 

네가 왜 미안한데.

 

말을 해 줘. 나한테 뭐라도 말을 해야 내가 고치지.

 

너 때문이 아니야.

 

그럼 왜 계속 피하는데.

 

... 피한 거 아니야.

 

 색시야.

 

그렇게 부르지마.

 


지민의 단호한 말에 태형이 입을 꾹 다물었다. 진짜 왜 그래... 기어들어가는 듯 작기만 한 태형의 목소리에 지민은 입술만 잘근잘근 씹었다. 우습지, 누가 봐도 이상한 건 자신인데 태형이는 마치 자신이 죄인인 것처럼 군다. 그의 행동이 자신을 자꾸 작게 만든다. 가슴께가 콱 막힌 것처럼 답답해서 지민이 가운데를 퉁퉁 쳤다. 아무것도 먹은 게 없는데 체한 것 같다. 어디 아파? 태형이 가까이 다가가자 지민이 그만큼 뒷걸음질 쳤다. 태형은 어정쩡한 자세 그대로 굳어 지민을 바라봤다. 들었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태형이 속삭이듯 하는 말에 지민은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그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지민도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라 제 자신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제가 어떻게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을까. 제 심장 어딘가가 이상해진 것이 확실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피가 안 통하는 것처럼 저릴 수 없는거다.

 

 

 


 

너희 싸웠어? 정우가 조심스레 다가와 태형에게 작게 속삭였다. 지민은 저 앞에서 지혁과 이한과 걸어가고 있었다. 태형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거짓말 치지마, 새끼야. 정우가 등을 아프게 때렸다. 아아. 태형은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몸부림을 친다던지, 맞은 부위를 문지르는 행동도 하지 않았다. 정우는 생각보다 심각한 것 같은 태형의 상태에 헉했다. 백 번 양보해서 둘이 싸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것이다. 정우는 입술만 달싹이다 결국 입을 열었다.

 

 

혹시 어제 우리 얘기 들은 거 아니야?

 

?

 

아니... 어제 네가 말한 거.

 

그건 절대 아니야.


 

다른 건 몰라도 그건 확신할 수 있다. 지민은 태형의 감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만약 제가 그에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면 절대로 이 정도로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하다못해 제 멱살이라도 잡고 직접적으로 물어봤겠지. 너 나 좋아해? 라고. 그래서 더 답답했다. 여태까지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싸웠을 때도 이렇게 피한 적은 없었다. 이유를 알면 고칠 수라도 있지, 말도 없이 피하기만 하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태형은 마른세수를 하며 후 한숨을 쉬었다. 정우는 그저 위로의 의미로 어깨를 두드려 주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너 김태형이랑 싸웠어?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이한에 지민은 작게 한숨만 쉬었다. 그런 거 아니야. 그런데 왜 아까부터 김태형 피하냐? 지혁의 말에 지민은 욱해서 지혁을 돌아봤다. 아 몰라 진짜! 갑자기 빽 소리를 지르는 지민에, 그들은 놀라 눈만 끔뻑였다. 얘 아까부터 왜 이렇게 예민해. 지혁의 중얼거림에 이한은 어깨만 으쓱였다.

 

미치겠네, 진짜. 지민은 머리를 헝클였다. 어쩐지 김태형을 보기가 껄끄럽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게 더 답답하다. 지민은 힐끗 고개를 돌렸다. 조금 떨어져서 걷고 있던 김태형과 눈이 마주쳤다. 지민은 흠칫 놀라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 한숨이 나왔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살 수 없는 것도 잘 안다. 자신도 답답하지만 아마 김태형도 답답해하고 있을 것이다.

 

 

 



밥을 먹으러 갔다. 공교롭게도 지민의 앞에 태형이 앉았다. 제 앞에서 딱 앉아서 자신을 바라보는 저 눈을 마주치기 힘들어서 자꾸 고개가 숙여졌다. 태형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 뚫어져라 지민을 쳐다봤다. 야 뭐 먹을래. 정우의 말에 메뉴를 고르는 것은 지혁과 이한 밖에 없었다. 야 너희 뭐하냐, 진짜. 결국 정우가 한마디 했다. 태형은 정자세로 앉아 계속 지민만 바라보고 있었고 지민은 죄 지은 사람처럼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태형은 지민을 빤히 쳐다보다가 수저통에서 수저를 꺼내 지민의 앞에 놓았다. 갑자기 제 시야에 훅 들어오는 수저에 지민은 흠칫 놀랐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 앞에서 한숨소리가 들렸다. 지민은 움찔했다. 색시야. 한숨 같은 부름에 지민은 결국 고개를 들었다. 하루 종일 이렇게 제대로 얼굴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태형은 지민과 눈이 마주치자 마른세수를 했다. 잠시 얘기 좀 하자. 그의 말에도 지민은 입을 꾹 다문 채 바라보기만 했다.

 

 

나 지금 진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거든.

 

아무것도 하지마. 내가 알아서 할 문제야. 넌 아무 문제없어.

 

계속 그런 식으로 피하기만 하잖아!


......

 

왜 피하는데? 왜 계속 사람 병신 만드냐고.

 

내가 언제 병신 만들었어.

 

지금 그러잖아. 계속 무시해서 사람 병신 만들고 있잖아.

 

그런 거 아니라고.

 

말해. 대체 왜 그러는지 이유라도 알아야겠으니까.

 

 

태형의 표정은 단호하기 그지없었다. 정말 이대로 물러나지 않을 작정이다. . 지민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시끌시끌한 식당에 저와 태형만 따로 고립된 세계처럼 공기가 조용했다. 제 모든 신경이 그에게로 향한 것 같았다. 그의 작은 움직임 하나도 크게 보였다. 굳게 쥔 주먹이 화를 참는 듯 했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지민은 할 말을 몇 번이나 머릿속에 되뇌며 입을 열었다.

 

 

생각할게 있어.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근데 네가 계속 내 눈에 띄면 제대로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단 말이야.

 

. 뭔데.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데.

  

오래 안 걸릴 거야. 그러니까 그때까지만 잠시 기다려 달라고.

 

... 나 솔직히 아직 납득이 안 되고, 왜 그러는지 이해도 안가고, 화도 덜 풀렸는데.

 

......


그냥 네 말만 믿고 기다리는 거야.

 


태형의 말에 지민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다른 아이들이 주문했던 해물탕이 나왔다. 너희 기 싸움에 우리 등 터지겠다, 이거나 먹어. 정우가 앞접시에 해물을 가득 담아 그들에게 건넸다. 지민은 젓가락을 들었다. 점점 머리가 복잡해진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 솔직히 모르겠다. 뭔가 이상하긴 한데 정확히 무엇이, 어떻게, 왜 그런지 모르겠으니 감조차 잡을 수 없다. , 또 태형을 생각하니 심장이 이상하게 뛴다. 이때까지 제 심장이 움직이는 것을 의식한 적도 없었는데 그를 생각하면 항상 심장의 두근거림도 귓가에 웅웅 울리기 시작한다. 지민은 애써 의식을 피하며 조개를 주워 먹었다.

 

 

 

 


마지막은 바다였다. 바닷가에서 해가 질 때까지 있다가 숙소로 돌아가는 것으로 수학여행을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해운대에는 해변에서 버스킹을 하기도 한대. 수학여행 루트를 짰을 때 지혁이 했던 말에 지민은 조금 기대 했었다. 해가 진 어두운 밤바다와 잔잔한 모래사장을 배경으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 꽤나 분위기 있을 것 같았다. 지민은 노래를 부르는 것도 좋아했으니까. 사실 부산에 와서 가장 기대 했던 것이 버스킹이기도 했다.

 

지민은 해변에 살포시 앉았다. 혹시나 모래가 안에 들어가지는 않을까 조금 걱정 되었지만 긴바지여서 이내 걱정을 덜었다. 두 무릎을 맞대고 팔로 끌어안은 채 바다를 바라봤다. 다른 애들은 어디 갔지. 잠시 그들이 생각났지만 곧 기억을 지웠다. 어디서든지 잘 있을 애들이었다.

 

태양이 제 마지막 빛을 다 뿜어내기 시작한 듯 하늘이 붉게 타올랐다. 노을은 어디서 봐도 항상 아름다웠다. 지민은 멍하니 저 멀리 수평선을 바라봤다. 어찌나 집중했던지 옆에 누가 앉았는지 인기척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귓가에 꽂고 있던 이어폰에서는 잔잔한 기타소리와 담백한 노랫소리가 들렸다. 낮게 깔린 듯 나직한 목소리는 어쩐지 태형의 목소리와 비슷했다. 지민은 이 노래를 좋아했다. 담담하게 부르는 것도 좋고 잔잔하게 울리는 이 감정도 좋았다. 음흠흠 지민은 작게 허밍을 했다. 어디선가 가수와는 다른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지민은 놀라 이어폰 줄을 당겨 다소 거칠게 빼내며 노랫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태형이 바다를 바라보며 지민의 허밍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뭐야. 지민의 물음에 태형이 그를 바라보며 헤 웃어보였다. 우리 색시 찾고 있었는데 여기 있었네. 그의 말에 지민은 다시 고개를 돌려 바다를 바라봤다. 붉은 하늘 아래 바다의 색이 점점 진해지기 시작했다.



색시 어디 갔나 했는데, 저 멀리서도 딱 색시가 보이는 거야.

 

......

 

한눈에 색시를 딱 알아봤지.

 

다른 애들은?

 

지금 다른 애들이 신경 쓰여?


 

태형은 살풋 인상을 찌푸렸다. 지민은 입을 다물었다. . 태형의 한숨소리가 들렸다. 죄를 지은 것도 없는데 죄인처럼 자꾸 몸이 움츠러든다. 파도가 잔잔히 밀려들어오면서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조용한 소리였다. 그 애들이 신경 쓰여? 태형이 다시 물었다. 태형의 눈동자가 노을빛을 머금고 반짝반짝 빛이 났다. 지민은 모르긴 몰라도 태형의 눈 하나는 예쁘다고 생각했다. 아마 가끔 그가 잘생겨 보이는 이유 중 눈이 한 70%를 차지하지는 않을까. 쓸데없이 크기만 하고. 지민은 일부러 마음에도 없는 생각을 하며 입을 삐죽였다. 그 와중에도 태형의 눈은 지민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태형은 제가 입고 있던 후드를 벗어 지민의 어깨에 살포시 얹어주었다. 아직 밤바람은 차.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퍼지고 지민은 자연스레 태형을 바라봤다. 태형의 눈동자 속에 노을빛이 일렁인다. 아 잘못 생각했다. 이 시간에는 김태형을 봐서는 안 되었다. 말도 안 되는 분위기에,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는 시간에, 그와 마주보고 있으면 안됐었다. , 지금 이 순간이 심장에 해롭다.

 

지민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했던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모르는 척 하고 싶었던 거다. 갑자기 확 변한 제 감정이 무서워서, 그 감정을 태형에게 들킬까봐, 그래서 무시하고 싶었던 거다. 어차피 지금 깨달은 감정이다. 조금만 아닌 척 하면 자연스레 사그라들지 않을까. 이건 김태형이 너무 잘 생겨서, 남자가 봐도 잘 생긴 편이니까 그냥 잠시 얼굴에 설렌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은 거다. 그래서 잠시 안보고 싶었다. 너무 붙어 다녀서 그런가. 잠시 얼굴을 안보면 좀 괜찮아지려나. 하지만 그것은 지민의 입장에서만 생각한 것이었다. 태형은 지민의 옆에서 잠시라도 벗어나는 것을 싫어했다.

 

위험하다.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과 바다와, 시원하면서도 잔잔한 파도소리가 점점 사고력을 잃게 만든다. 심지어 김태형은 그 잘생긴 얼굴로 가만히 한없이 진중한 표정으로, 지민을 바라봤다. 그 시선이 덫 같다고 생각했다. 어디 한 눈을 팔 수 없게 꽉 제 시선을 잡아놓고 천천히 천천히 깊숙이 제 속으로 파고드는. 그 덫에 다치는 것은 자신이었다. 이렇게 숨 막힐 수가. 거짓말 안하고 이대로 심장 터져 죽어버릴 것 같았다. 어쩌다 그 덫에 걸려버렸을까. 아니, 왜 이제야 자신을 바라보는 그 눈빛이 덫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까.

 

지민은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모래사장에 두 손을 짚고 몸을 일으키는 순간, 태형이 그의 손목을 확 잡았다. 갑작스러운 힘에 지민은 순간 휘청거렸다. 태형이 다른 손으로 허리를 감지 않았으면 지민은 꼼짝없이 모래사장에 처박혔을 것이다. 지민은 순간 욱해서 그를 노려봤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웃음기 하나 없이 진지했다. 방금 그것이 장난으로 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민은 잡힌 손에 힘을 주어 빼내려 했지만 그럴수록 태형이 손목을 꽉 잡았다. 당혹스러웠다. 얘 왜이래. 지민은 당황스러운 눈을 숨기지 않고 태형을 바라봤다. 흔들리는 그의 눈을 본 태형이 입을 열었다.

 

 

피하지마.


......

 

색시가 뭘 생각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은 못하겠어. 너무 힘들어.

 

김태형.

 

도와줄게. 내가 도와줄 테니까 나 그만 피하면 안돼?

 

미안해, 태형아.

 

소원이야.

 

 

태형의 입에서 소원이라는 말이 나오자 지민은 더 이상 그에게 강요할 수 없었다. 손목 잡힌 부근이 시큰해지기 시작했지만 지민은 이 손 떼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제 손목을 잡은 태형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하늘에 붉은빛이 점점 빠지면서 보라빛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두워지는 하늘 따라 바다도 점점 고요해졌다. 잔잔히 부서지는 파도 소리는 여전했다.

 

 

나 소원 들어줘야 하잖아.


......

 

내 소원 들어줘.


......

 

나 피하지마. 내 옆에서 떠나지마.


 

그에게 잡힌 손목이 시큰했다. 그리고 뜨거웠다. 지민은 어쩐지 제 속 같다고 생각했다. 속이 시큰거리고 울컥울컥 뜨거웠다. 나랑 약속해, 중학교 때처럼. 태형의 마지막 말에 지민은 아슬아슬 했던 제 속이 모래성처럼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2. 그 어느 날에

 

너 요즘 왜 그래, 진짜!

 

 

지민은 결국 태형을 돌려세우며 빽 소리를 질렀다. 뒤돌아본 태형의 얼굴을 보자, 지민은 순간 놀랐다. 태형의 표정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당혹스러움에 머리가 새하얘진 지민은 할 말도 잃어버린 채 입만 벙긋거렸다. ... 김태형... 혼란스러움에 말을 잇지 못하는 지민을 가만히 보던 태형은 제 팔을 잡고 있는 지민의 손을 덮어 잡은 채 천천히 손을 떼어냈다. 지민은 자신의 손등에 느껴지는 온기가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나자 순간 불안해졌다. 제 손 전체를 감싸 안던 온기가 사라지고 바깥의 서늘함만 손등에 남았다. 태형의 표정도 그것처럼 서늘했다. 너 왜 그래... 지민이 겨우 입을 열었지만 태형은 말없이 몸을 돌려 멀어졌다.



 

 

 

김태형이 요즘 이상하다. 모르긴 몰라도 그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김태형이 요즘 자신을 피한다. 갑자기 왜 그렇게 변했는지 이유도 알 수 없어 더 답답했다.

 

처음에는 갑자기 같이 등하교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교실에서 자신과 놀지 않고 다른 애들이랑만 놀기 시작했다. 조금 당혹스러웠긴 했다. 그래도 중학교 올라와서 다른 친구들도 사귀려 하니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태형이 다른 애들이랑 어울린다고 어딘가 꽁해지는 것이 속 좁은 인간도 아니고 우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태형이 자꾸 어딘가 모르게 어긋나고 있었다.

 

지민아, 요즘 태형이랑 싸웠니? 교무실로 직접 부르시면서까지 물어보는 선생님에게 고개를 젓는 것 밖에는 답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선생님은 한숨을 쉬셨다.

 

 

태형이가 요즘 들어 질 안 좋은 애들이랑 놀러 다니는 것 같아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오늘은 학교까지 안 나오고.

 

......

 

지민이는 태형이랑 많이 친하니까 이유라도 알 줄 알았는데.

 

아니요... 저도 요즘 김태형 잘 못 만나서요.

 

그래. 혹시나 서로 마음에 담아 둔 거 있으면 털어내고 예전처럼 잘 지내렴. 너희 둘, 사소한 다툼으로 떨어질 애들 아니잖아.

 

 

교무실에 나와서는 더욱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래, 많이 친하니까 김태형에 대해서 많이 아는 줄 알았다. 모르긴 몰라도 김태형만큼은 그의 부모님 다음으로 많이 알고 있는 줄 알았다. 근데 이게 뭐야. 사실은 그의 속은 하나도 몰랐던 것이다. 지금 그가 어디 있는지 조차 모른다. 그렇게까지 생각하니 갑자기 온 몸에 피가 식는 기분이 들었다. 헛웃음이 나온다. 정말 그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었나.

 

지민은 바로 폰을 들어 문자를 보냈다. [너 지금 어디야] 문자를 보내고 나서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여러 번 연속으로 보냈다. [너 이제 막 나가냐?] [뭐 하고 싸돌아다니면 학교도 안 나오냐고] [김태형 니 중2병 참는 것도 정도가 있다]

 

원래라면 금방 답장하는 앤데 이제는 답장도 안한다. . 한숨을 쉬며 폰을 주머니 안에 넣었다.

 

태형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은 한 달 전 즈음부터였다. 1학년 때는 다른 반이었기 때문에 태형이가 사귄 친구들이 조금 질 안 좋은 친구라는 것을 듣기만 했었다. 그래서 2학년 때 같은 반 되면서 태형이가 들과 조금 거리를 두기를 바랐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밀쳐진 게 오히려 자신이라는 생각을 하니 배신감에 눈가에 열까지 올랐다. 지민은 입술을 깨물며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지민은 더 이상 태형이 어긋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하아. 태형은 한숨을 쉬며 폰을 넣었다. 네 색시야? 정우의 말에 태형이 그를 노려봤다. 정우는 그의 표정에 기가 찬 듯 웃었다.

 

 

아이고, 무서버라. 지 색시 얘기 좀 했다고 사람 찢어 죽일 듯이 노려보네.

 

색시라고 부르지마, 내 색시야.

 

미친 새끼. 존나 친구 감싼다니까.

 

 

정우는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입에 물었다. 태형이 그걸 보자마자 담배를 확 채가 발로 짓밟았다. 씨발 진짜 뭐하냐! 정우는 화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으나 더 이상 태형에게 다가설 수 없었다. 태형의 신경을 거스르는 일은 웬만하면 피하고 싶었다.

 

태형은 태형대로 머리 아팠다. 한 가지 고민을 머리 빠개질 정도로 해본 적도 없었는데, 아마 지금이 그 처음이자 마지막 시기가 아닐까 싶다.

 

태형은 엄청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중이었다. 제 속이 정말로 질풍노도였다. 사람들은 모두 그 시기가 온다고 한다. 사춘기 때라서 감정의 동요가 격한 시기라고 한다. 그렇다면 제가 지금 느끼고 있는 이 낯선 감정이, 사춘기 때라서 감정의 동요가 격하기 때문에 그러는 건가. 태형은 그 어느 것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 어느 것도 확신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섣불리 그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제 자신도 제어가 안 되는 마음으로 그의 앞에 섰다가는 어떤 짓을 할지 몰랐다. 낯설었기 때문에 피했다.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에는 서툴렀기 때문에.

 

만약에 지금이 질풍노도의 시기라서 그러는 거라면, 그 시기가 조금 지나면 괜찮지 않을까. 그 때는 그를 다시 예전처럼 마주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막연한 생각만 들어다. 15살의 태형은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물론, 눈치 없는 제 색시는 절대 알 리 없지만.

 

 

 

 


골목 곳곳에 가로등 불이 켜질 때 즈음, 태형은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골목은 한적하다 못해 정적이 감돌았다. 바로 앞 골목만 돌면 제 집이다. 태형은 골목을 돌자마자 누군가의 힘에 의해 멱살이 잡히고 몸이 확 쏠렸다. 태형은 깜짝 놀라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 색시? 태형은 제 멱살을 잡고 노려보는 지민을 보고 간신히 입을 열었다. 지민은 어지간히도 화났는지 표정이 냉하기 그지없었다. 태형은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지민의 표정을 보고 내심 놀랐다. 태형은 단 한 번도 지민의 화난 표정을 본 적이 없었다. 멱살을 잡은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듯 했다.

 


너 왜 이제 와. 하루 종일 어디 갔었어. 왜 연락 하나도 안 받는데.

 

......

 

너 진짜 미쳤냐? 요즘 들어 왜 안하던 짓을 하는데.

 

......

 

하아.

 

 

지민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태형 때문에 결국 한숨을 쉬며 꽉 쥔 멱살을 풀었다. 그냥 허탈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도 모르겠다. 지민은 힘이 다 풀린 팔을 툭 떨치듯 내리고 태형을 지나쳤다. 천천히 제 집으로 향하는 걸음에는 힘이 없었다. 태형은 몸을 돌려 멀어지는 지민을 바라봤다. 지민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태형을 돌아봤다. 김태형. 멀리서 이름을 불렀다.

 

 

더 이상 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

 

 

태형은 주먹을 꽉 쥐었다. 어차피 지민에게는 보이지 않을 거리다. 혼란스러웠다. 이렇게 해도 되는 걸까. 제 마음 지우기에 너무 급급했던 것은 아닐까. 태형은 결코 지미노가 멀어지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어지럽기만 한 감정을 잠재울 시간이 필요했다. 색시야. 태형이 작게 불렀다. 웅얼거리듯 작은 목소리에도 지민은 들은 듯 가만히 서 있었다. 속에 알 수 없는 뜨거움이 일렁였다. 태형은 결국 도망치듯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태형이랑 싸웠냐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열이 머리끝까지 오르는 것을 느끼며 지민은 인간의 인내심의 한계를 경험하는 중이었다. 싸운 적 없어요. 지민의 짜증어린 대답에도 선생님들은 태형의 일을 계속 물어봤다. 그래도 지민이가 제일 친했는데 태형이와 이야기 좀 해보렴, 요즘 자꾸 안좋은 길로 빠지려고 해서 걱정이 되네.

 

그런 걱정을 왜 똑같은 학생한테 해결 하라고 하시는 건데요. 지민은 턱 끝까지 차오르는 말을 애써 꾹꾹 눌러 담으며 교무실을 나섰다. 이제는 짜증이 나려 한다. 그 따위 새끼 이제 나랑 상관없는 일이다. 그저 걔는 걔대로, 나는 나대로. 그렇게 끝날 일이다. 지민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그의 얼굴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지민은 결국 그가 신경 쓰인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인생의 전부를 김태형과 보냈는데 그렇게 한 번에 끊어낼 수는 없던 것이다. 꽉 쥔 두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종례시간이 되어서야 학교에 슬금슬금 들어온 저 머저리 같은 새끼를 더 이상 모른 척 넘어갈 수가 없었다.

 

. 지민은 성큼성큼 다가가 태형의 어깨를 잡아 확 돌렸다. 태형은 예의 그 차가운 눈으로 지민을 올려다보았다. 너 진짜 요즘 왜 이래. 왜 이렇게 변했어.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으면 이렇게 변하는데. 지금 반항 하는 거냐. 왜 안하던 짓을 해. 질 안 좋은 애들이랑 다니지마. 싸움 하지마. 너 그런 애 아닌 거 내가 잘 알아. 그런 거 다 헛소문인 거 다 알아. 내가 어떻게 해야 해? 불만 있으면 이딴 식으로 하지 말고 그냥 말로 해. 내 말 무시 하지마. 나 피하지마.

 

하고 싶은 말은 천지였다. 지민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마음을 정리했다. 종례 하고 나 좀 봐. 그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태형은 말이 없었다. 지민은 제 자리로 돌아갔다.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간단한 종례를 했다. 소떼처럼 우르르 교실 밖을 나가는 학생들 사이에서 지민은 태형을 찾으려 낑낑댔다. 그 새끼는 제 말은 어디로 들었는지 이미 교실 밖을 나갔다. 이 씨발... 지민은 절로 욕지기가 튀어나는 것을 애써 참으며 애들을 밀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김태형!! 지민은 거의 괴성을 지르듯 그의 이름을 부르며 태형의 손목을 확 잡아 돌렸다. 방심했던 탓인지 태형은 지민의 힘에 의해 홱 돌아섰다. 지민은 헉헉 숨을 고르며 태형을 올려다봤다. 최대한 머릿속을 정리하려 애썼다. 너 진짜 왜 그러는지 이유나 좀 알자. 지민의 말을 무시한 채 태형은 걸음을 옮겼다. 지민은 오기가 생겨 그의 뒤를 졸졸 쫓으며 코치코치 캐물었다. 오늘은 진짜 무슨 일 있어도 얘기 듣고 간다. 지민의 표정은 결연했다.

 

태형의 걸음이 더 빨라졌다. 바닥에 신발을 툭 던지고 대충 발에 끼워 나갔다. 지민도 대충 신발에 발을 욱여 넣고 후다닥 태형의 뒤를 쫓았다. 야이씨, 김태형!! 뒤에서 지민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태형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계단의 끝이 너무 멀리 있었다. 길기만 한 계단을 한 단, 두 단, 밟고 내려갔다. 거기 멈춰보라고! 지민의 목소리가 또 들리기 시작한다. , 존나 미움 받겠네. 태형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이미 어느 정도 각오한 일이긴 하지만 어쩌면, 제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미움 받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씨발! 보지마!! 우리 이제 끝이야!!

 

 

격앙된 지민의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제 옆을 훅 스쳐지나가더니 제 앞에 툭 떨어졌다. 신발이었다. 계단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떨어진 신발은 몇 번 더 굴러 떨어지다 멈추었다. 태형은 가만히 그 신발을 내려다보았다. 조금 때 탄 흰 신발이 끈이 다 풀린 채 덩그러니 있었다.

 

 

씨발 진짜 왜 그러는데!! 내가 대체 뭘 잘못 했는데 그렇게 계속 피하냐고!!!

 

 

악에 받친 목소리에 물기가 어려 있는 듯 했다. 태형은 몇 걸음 더 내려가 허리를 숙여 그 신발을 들고 천천히 몸을 돌려 지민을 올려봤다. 지민은 계단에 주저앉아 태형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닌 척 하지만 다 알고 있다. 태형은 지금 지민이 애써 울음을 참고 있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눈가가 벌게져 씩씩 거리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저 얼굴을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화를 주체 못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눈물이 고여 있는 그를 보며 태형은 한 걸음, 두 걸음,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지민의 얼굴이 점점 가까이 보였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본 지민은 입을 앙 다물었다. 그를 향한 도끼눈은 사라지지 않았다.

 

태형은 그의 밑에서 한쪽 무릎만 꿇어 앉아 그의 신발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지민의 발목을 살짝 감싸 잡아 신발을 신겨주기 시작했다. 지민은 킁 코를 훌쩍이며 태형이 하는 대로 가만히 따랐다. 울지마. 태형이 리본을 묶으며 나직이 말했다. 나 때문에 울지마. 매듭을 꽉 당긴 태형이 지민을 올려다보았다. 벌게진 눈을 하고 코를 훌쩍거리면서도 애써 울지 않으려는 듯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지민의 얼굴을 보자니, 심장이 저릿저릿했다. 그 저릿저릿함이 혈관을 타고 퍼지는지 손가락 끝까지 저릿저릿해졌다. 누가 심장을 막 쥐어짜내는 것처럼 욱신욱신 했다. 손이 떨렸다. 태형은 아무렇지 않은 척 손을 숨겼다. 어차피 색시는 제 이런 사소한 행동 하나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지마. 지민이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나 피하지 말라고 개새끼야.

 

......

 

약속해. 피하지 않는다고. 내 옆에 있겠다고 하라고 씨발아...

 

너는 진짜...

 

 

태형은 손을 들어 지민의 머리 위에 툭 얹었다. 제 힘에 의해서인지 지민의 고개가 살짝 숙여졌다. 부들부들한 그의 머리카락이 손바닥에 느껴졌다. 태형은 천천히 지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의 머리카락에 제 손에 따라 살랑살랑 움직였다. 너는 진짜 뭐. 지민이 눈만 도르륵 올려 태형을 바라봤다.

 


왜 자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드냐.

 

 

그렇게 말할 수는 없어, 태형은 지민에게 웃어 보이기만 했다. 태형은 지쳐버렸다. 지민을 보는 것보다 피하는 것이 더 힘들었다. 어떻게 해도 그를 피할 수 없음을 깨달아버렸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제 셔츠 끝을 잡아당기며 약속하라 낑낑대는 색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뿐이었다.





















---


2는 태형이와 지민이가 중2 때.






...ㅋㅋㅋㅋ...  ㅋㅋ... 제가 너무 늦었죠...

망할 현생은 자비를 베풀어 주시지 않네여...

한꺼번에 몰려온 과제더미에 허덕이다

이제야 좀 여유가 생겼네요.

제가 있는 곳은 아직 방학을 하지 않았기에.

하나 둘 씩 종강을 하고 있고

다음주에 완전히 다 끝나기 때문에

이제는 요즘보다 자주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 올라오는 것 없이 먼지만 쌓이던 창고임에도

들려주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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