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민 남고생의 일상 8
길/남고생의 일상 (完)1. 페북
오랜만에 들어간 페북에 친구 추천이 와 있었다. 쓸데없이 이런 거 존나 뜬다니까. 작게 쯧 혀를 차며 누군가 보던 지민은 예상치 못한 사람에 누워있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 사람의 프로필을 눌러봤지만 아무런 글도 사진도 올라온 것은 없었다. 지민은 침대에서 내려와 바로 발코니로 나갔다. 김태형! 김태형! 그의 외침에 맞은편 방에 커튼이 젖혀지더니 태형이 나왔다. 태형은 뿌듯한 웃음을 지으면서 발코니 문을 열었다.
너 페북 뭐야? 너도 페북 할거야?
응.
갑자기 왜? 너 그런 거 귀찮다고 안했잖아.
그냥. 그런데 색시 페북 엄청 열심히 하나봐? 뭐 되게 많이 올렸던데.
뭐... 이것저것.
흐음...
아, 너 사진별로야? 싫으면 지우고.
아니 그건 상관없는데.
... 아, 너 또 내 춤 영상 가지고 지랄 하지마라 진짜.
태형이 들켰다는 듯 혀를 살짝 내보였다. 이씨 저럴 줄 알았어. 지민은 태형을 밉지 않게 노려봤다. 아니이... 맨날 사람들이 색시 페북 보고 이야기를 하니까 대체 뭐가 올라오길래 그렇게 말들이 많은지 궁금해서 만들었어. 태형의 말을 듣던 지민의 얼굴이 와자작 썩어 들어갔다.
야 이 자식아, 그 말은 지금 내 페북 감시하려고 만들었다는 거야?
그런 의미는 아니었지만 색시가 그렇게 느꼈다면 뭐...
맞잖아, 새끼야!
열까지 올라 벌게진 지민의 얼굴을 여유로운 표정으로 보던 태형은 아예 발코니 난간에 팔을 받치고 턱을 괴기까지 했다. 씨익씨익 거리던 지민은 결국 후 한숨을 쉬었다. 쟤한테 화내봤자 제 속만 열 뻗치지 그에게는 아무런 반응도 얻어낼 수 없음을 아주 잘 알았다. 색시야. 태형의 물음에 지민은 태형을 바라봤다. 같이 사진 찍을래? 태형의 물음에 지민은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갈까?
아니, 내가 갈게!
태형이 바로 후다닥 방 밖을 나가는 모습을 보고 지민도 따라 방을 나섰다. 계단을 내려와 현관문을 열어 문을 받치고 기다렸다. 작은 문을 열고 마당 쪽으로 들어오는 태형의 모습이 보였다. 색시야. 지민이 보이자 헤 웃으며 다가온 태형이 자연스레 집 안에 들어갔다. 태형이 다 들어가고 나서야 지민이 문을 닫았다. 근데 갑자기 사진은 왜? 지민의 물음에 태형은 히히 웃기만 할 뿐 가르쳐 주지 않았다.
소파에 발라당 뒤로 눕듯이 앉은 태형이 제 옆자리를 툭툭 쳤다. 지민은 그의 옆에 앉아 태형을 바라봤다. 자, 페북에 올릴 거니까 제대로 붙으세요. 태형이 폰을 높이 들면서 하는 말에 피식 웃은 지민이 그의 옆에 붙었다. 다른 한 손을 자연스레 지민의 어깨를 감싼 태형이 셀카 화면에 익살맞은 표정을 지었다. 색시야 너도 이렇게 표정 지어. 태형의 표정을 본 지민은 빵터져 그의 가슴팍을 퍽 때렸다. 야 그게 뭐야. 아, 빨리. 태형의 재촉에 지민은 웃음을 참으며 따라 익살맞은 표정을 지었다. 지민은 찍힌 사진을 보며 질색했다. 어우야, 그건 페북에 올리지 마라. 태형도 폰을 내려다 봤다.
왜? 잘 나왔는데?
야 너만 잘 나왔지 난 뭐냐. 존나 빵떡이야.
아니야. 귀엽게 잘 나왔어.
아 싫어. 진짜 이상하게 나왔어. 너 올리기만 해봐, 진짜.
헐, 색시야. 미안.
올렸네. 해맑게 웃으며 폰을 보여주는 태형에, 지민이 질색하며 태형의 폰을 빼앗았다. 아 싫다고 했잖아!! 재빨리 삭제를 누르려는 지민의 손을 제지하고 제 폰을 다시 뺏어온 태형이 지민을 밉지 않게 노려봤다.
왜 내 페북이잖아. 내 마음대로 올릴 거야.
아 그건 진짜 안된다고! 이상하다고! 아 내 볼 어쩔 건데!
왜! 뭐! 볼이 어때서, 귀엽기만 하구먼!
눈 삐었냐? 지만 잘 나왔다고 막 올리냐?
아닌데... 진짜 예쁜데...
태형은 제 폰을 엄지로 쓱쓱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지민은 결국 입을 다물었다. 저렇게 좋아하는데... 지민은 결국 또 그렇게 넘어갔다.
근데 색시야, 내가 이렇게 사진을 올리면 다른 사람들도 다 볼 수 있어? 태형의 물음에 지민이 고개를 빼서 태형의 폰을 바라봤다. 글쎄, 넌 지금 친구가 한명도 없어서... 일단 나 친추해. 지민의 말에 태형이 눈만 끔뻑이며 지민을 바라봤다. 폰만 쳐다보고 있던 지민도 고개를 돌려 태형을 바라봤다. 친구추가 하라고. 지민의 말에 태형이 멋쩍게 웃었다. 친구추가? 어벙한 말투에 헛웃음을 뱉은 지민이 결국 그의 손에서 폰을 뺏었다. 어차피 제대로 쓰지도 않을 거 왜 만들었대. 혼잣말로 중얼거린 지민이 익숙하게 자신을 찾아 친구요청을 보낸 후 자신의 폰으로 친구 요청을 수락했다.
이렇게 하면 내 사진을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어?
너랑 친구인 사람이 볼 수 있고 내가 좋아요를 눌렀거나 댓글을 쓰면 나랑 친구인 사람도 볼 수 있을걸.
아 진짜? 그러면 내가 이 사진 올렸으니까 너만 볼 수 있어?
몰라, 너는 사진 퍼지는 거 순식간일걸. 타고 타고 들어가면 다 나와.
아 그래?
태형은 신기한 듯 몇 번 만지작거리다가 이내 흥미가 식었는지 옆에 툭 폰을 던지듯 놔두었다. 근데 너 진짜 왜 페북 만들었어. 지민의 물음에 태형은 비싯비싯 웃기만 하고 얘기 해주지 않았다. 지민은 뚱한 표정으로 꿍얼거렸다. 그래, 말해주기 싫으면 하지 마라 치사하게. 색시는 모르는 게 좋을걸. 태형의 의미심장한 말에 지민은 고개만 갸웃했다. 내가 왜?
진짜 감시하려고 페북 만든 거야? 또 한 번 울리는 카톡 알람에 지민은 으아아악!!!! 악을 지르며 제 머리를 마구 헝클였다. 저 알람을 하도 들어서 이제 노이로제 걸릴 것 같았다. 지민은 벌써 20번째 카톡에 들어갔다. 그 와중에도 뭐 그리 할 말이 많은지 카톡 알람이 계속 울렸다.
[색시야 이 영상은 좀 아니지 않냐.]
[사진]
[이것도 좀 너무 야해]
[사진]
[얘네는 뭔데 색시한테 친한 척이야 아는 사람?]
[사진]
[아 색시야 이거 나한테만 보여줬던 거 아니었어?ㅠㅠㅠㅠ]
[사진]
이 와중에 정성스레 캡처해서 보내는 게 대단하다싶다. 지민은 무시하고 카톡을 나왔다. 그러자 또 무섭게 울리기 시작하는 알람에 지민은 아예 무음으로 바꾸었다. 아 이제 좀 조용하나 싶었더니 발코니 쪽 창문을 툭툭 치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색시야, 일부러 못 듣는 척 하는 거 다 알아. 태형의 목소리도 들렸다. 지민은 베개로 두 귀를 막았다가 결국 짜증을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을 거칠게 열어제끼니 태형이 기다란 막대기를 들고 서 있었다. 아, 나왔다.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꼴에 지민은 욱했다.
아 나왔다? 나왔다아? 너 나한테 무슨 악감정 있어? 왜 계속 못 괴롭혀 안달이야, 이 새끼야!
몰랐는데 색시 페북 되게 오래 했더라. 올라온 게 생각보다 훨씬 더 많아서 놀랐어.
당연하지, 내가 그걸 언제부터 시작했는데.
진짜 마음 같아서는 색시 춤 영상 다 내리고 싶지만.
너 이러려고 페북 가입했지.
그럼. 이거 아니면 내가 페북 가입 할 이유가 뭐가 있어.
하...
아 근데 모르는 사람한테서 계속 친추와. 그거 막는 방법 없어?
몰라, 새끼야 너 알아서 해.
지민은 홱 뒤돌아서 발코니 창을 확 닫았다. 창을 닫기가 무섭게 또 탕탕탕 창을 쳐대기 시작하는 통에 지민은 아예 제 방을 나갔다. 발코니를 없애든가 해야지 원. 지민은 거실로 내려가 소파에 푹 몸을 뉘었다. 이제야 폰이 좀 잠잠해졌다. 지민은 카톡을 다시 확인하기 시작했다.
[색시야 영상 진짜 많이 올렸네]
[내 사진도 진짜 많이 올렸네]
[좋아 내 사진 올린 거]
[같이 찍은 사진도 많이 올리지]
[색시 되게 잘 나왔다 댓글 보니까 다 칭찬해]
너 칭찬한 거지 나 칭찬한 거냐? 지민은 피식 웃었다.
[아 색시야 이건 너무했다 내가 이거 제일 좋아하는 거 알면서]
[사진]
[이건 인간적으로 내리면 안돼? 이건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지민은 망설임 없이 카톡을 나갔다. 태형이가 좋아한다던 춤 영상은 사실 지민도 좋아하는 것이었다. 언제였더라, 초등학교 땐가 중학교 땐가. 중학교 때였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제 인생 영상이었다. 처음으로 수많은 관객들 앞에서 춤을 췄었다. 정말 정신없이 췄었다. 어떻게 췄는지 지금도 기억이 안난다. 기억나는 거라고는 끝난 노래와 함께 열광적인 반응뿐이었다. 나중에 태형이 춤 춘 영상을 보내주면서 말했었다. 너무 예뻤다고, 잘했다고, 내가 네 친구인 게 너무 자랑스럽다고. 아마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춤에 빠졌었던 것 같다. 아 지금 생각해보니까 김태형 이 자식 이때부터 남 앞에서 춤추는 걸 싫어했던 것 같기도 하고. 지민은 페북에 들어갔다. 알림은 언제나 미어터졌다. 그냥 똑같은 고딩일 뿐인데 왜 이렇게 관심을 주는 거지. 지민은 여태 제 페북의 인기를 이해하지 못했다. 딱히 다른 사람들의 페북과 다를 것도 없는데. 아 물론 제 춤에 관심을 가지고 좋아해주시면 고맙지만. 그 중 김태형이 댓글을 남겼다는 알림에 지민은 망설임 없이 댓글을 하나하나 보기 시작했다.
멋있네 색시야
항상 예쁘고 멋있지만 춤 출 때가 제일 멋있어
헐 이런 사진을 올리다니 부끄럽게
나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나 많이 올렸다니 나 이거 다 보기 전까지는 안잠
와 이 사진도 있었구나 대박이다ㅋㅋㅋㅋㅋㅋㅋ
어 이 사진 나 모르는 사진인데 나 몰래 찍었구나 하긴 내가 찍고 싶은 얼굴이긴 하지ㅋㅋㅋㅋㅋ
사진 속 색시도 예쁘지만 실물로 보는 색시는 훨씬 더 예뻐
색시야 너 춤 잘 추는 거 이제 다른 사람들도 다 아니까 이제 그만 올리면 안될까
아 이건 나만 보고 싶었는데ㅠㅠㅠㅠㅠㅠㅠㅠ 여기에 올리면 어떡해ㅠㅠㅠㅠㅠㅠㅠ
지민은 하나하나 태형의 댓글을 읽어보면서 낄낄댔다. 완전 자기 멋대로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지민의 입꼬리는 내려갈 줄 몰랐다. 제일 최근에 올렸던 글부터 천천히 내리면서 하나하나 댓글을 보던 지민은 제일 처음 올렸던 영상 댓글에서 움찔 손을 멈추었다. 태형이가 제일 좋아한다는 춤 영상. 제가 처음으로 많은 관객들 앞에서 췄던 그 날 영상. 저 역시 제일 좋아하는 그 영상. 기어코 여기까지 다 봤는지 어김없이 댓글이 있었다.
또 반했어 그때처럼
다른 댓글들과는 다르게 한마디만 적혀 있는 그 댓글에 지민은 순간 멍해졌다. 얘 또 장난치네. 지민은 잠시 고민하다가 태형의 댓글을 눌러 답댓을 달았다. 태형의 많은 댓글 중에서 처음으로 다는 답댓이었다.
ㅋㅋㅋㅋㅋ 이 형님이 좀 멋있지 아마 이 영상은 남자들도 반할 걸ㅋㅋㅋㅋ
답댓은 없었다.
1. 여장
후후훗. 아까부터 음흉하게 웃는 태형에 지민이 끔찍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태형을 바라봤다. 태형은 손등으로 입을 가리며 웃음을 참아보지만 계속해서 새어나오는 웃음을 어찌 할 수는 없었다. 음흠흠흠 얼마나 신이 났는지 콧노래까지 부르며 책상서랍을 뒤져 교과서를 꺼내는 모습을 쭉 본 지민이 입을 열었다.
너 어디 다쳤어?
아-니?
누구한테 사기 맞았냐?
아아니이!
근데 왜 이렇게 미친놈처럼 실실 웃고 있지?
으흐흐흥.
태형은 누가 봐도 기분 좋은 듯한 웃음을 지으며 지민에게 얼굴을 들이댔다. 아오 씨, 지금 어디다 얼굴을 들이미는 거야! 지민이 태형의 얼굴을 밀어냈다. 우리 색시- 태형은 말꼬리를 늘이며 얼굴을 더 들이댔다. 왜 이래 얘가 진짜 미쳤나봐! 지민은 점점 몸을 뒤로 빼며 그의 얼굴을 밀어냈다. 그제야 가까이 들이대던 얼굴을 빼는 태형이다. 내가 뭘 들고 있는지 알면 아마 색시 깜짝 놀라 뒤로 자빠질걸. 태형의 말에 지민이 힐끗 태형을 바라봤다. 뭔데. 지민의 물음에 태형은 의미심장하게 씨익 웃었다. 마치 먹잇감을 포착했다는 듯한 그 눈빛에 지민은 아차 했다. 쟤 저런 표정 지으면 분명 뭐가 있다는 건데.
색시가 너어무 예뻐서 여장해도 여자로 착각하는 사람 많겠다 그치.
뭔 개소리야, 존나 미쳤나봐.
색시 중학교 때도 여장대회에서 1등 했잖아.
아 씨발 흑역사 얘기 하지마 좆같으니까. 근데 갑자기 그 얘긴 왜 하는데.
으흐흫.
나 그 때 사진 다 지우고 찢어버렸는데? 너한테 없을텐데?
음, 글쎄.
씨발! 너 지금 가지고 있지! 어디 있어!
지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미친 듯이 태형의 몸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 잠깐 으핰핰핳핳앜 간지, 간지러워! 태형이 지민의 어깨를 꾹 잡고 밀어내려고 하지만 이런 힘은 대체 어디서 나는지 지민은 밀려나지도 않았다. 대체 어떻게 구한거야! 지민은 거의 악을 지르며 태형의 바지 주머니에 안에 손을 넣었다. 아 간지럽다고 진짜! 태형이 의자 위에서 몸을 비틀다가 결국 우당탕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지민의 집념은 완고했다. 아예 태형의 눕히고 위에 올라타 못 움직이게 막고 주머니를 뒤졌다. 아, 항복 항복! 태형이 두 팔과 다리를 휘젓고 팡팡 바닥을 내려쳐도 지민은 꿈쩍도 안했다. 온 주머니를 다 뒤져도 나오지 않았다. 아씨 어딨는 거야. 지민은 그 상태로 손을 뻗어 가방을 들고 와 뒤지기 시작했다. 아 어디 뒀냐고! 지민의 윽박지름에 태형은 미묘한 웃음만 보이면서 지민을 올려다봤다. 책상서랍 안에도 손을 넣어 찾아봤다.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다. 나 그 사진 가지고 있다 한 적 없는데. 태형의 말에 그제야 지민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태형을 내려다봤다. 나 그 사진 가지고 있다고 말한 적 없어, 색시야. 지민은 입술을 꾹 깨물고 일어났다. 태형은 상체를 일으켜 앉은 채로 지민을 올려다봤다. 아, 뭔가 찜찜한데. 지민은 미심쩍은 눈빛으로 태형을 바라봤다. 저 요상하게 빙글빙글 웃는 낯짝이 거슬린단 말이지...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으니 답답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태형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색시 어릴 때 여장 사진은 있지!
태형의 말에 지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의자가 뒤로 넘어가면서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야 이 씨발아! 지민은 진즉에 교실 밖을 뛰쳐나간 태형의 뒤를 따라 뛰쳐나갔다. 색시 너무 예쁜 거 아니야? 나 순간 누나인줄 알았잖아! 태형이 도망가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너 잡히면 진짜 뒤진다! 지민이 빠른 속도로 태형의 뒤를 쫓았다.
지민은 부끄러운 제 과거를 활활 다 태워버린 줄 알았다. 사진은 남기고 싶다는 엄마의 말에도 그것만큼은 안된다며 길길이 날뛴 끝에, 엄마가 다 처리한 줄 알았는데 그걸 어떻게 태형이가 가지고 갔는지 의문이다. 또 김태형이 사바사바 했거나 엄마가 태형이한테 줬겠지. 굳이 복잡하게 생각 안해도 어떤 루트로 사진이 저 또라이한테 갔는지 알만하다.
지민의 부모님은 둘째에게 첫째 옷을 자주 입히고는 했었다. 그러니까, 지민은 어렸을 때 꽤나 자주 제 누나의 옷을 입었었다. 애기 때는 다 예뻐서 괜찮다는 이유로 치마도 자주 입고 사진을 찍었다. 유치원생 때까지는 그랬다. 뭣도 모르고 예쁜 옷 입는다고 좋아했었지... 지민은 지금도 옛날에 제가 그런 옷을 입고 돌아다닌 기억이 되살아나면 이불을 뻥뻥 차댔다. 이제 이불을 뻥뻥 차댈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배신감인지 뭔지 뒤통수가 괜히 아리다.
너 안오냐 개새끼야!!! 지민이 빽 소리를 질렀지만 태형은 이미 저 멀리 계단을 내려가면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지민은 두 무릎을 손으로 짚고 헥헥 숨을 몰아쉬었다. 옛날부터 날씨, 계절 가리지 않고 마냥 기분 좋은 강아지 마냥 운동장을 활보한 태형과, 땀 흐르는 것은 춤추는 것 말고는 절대 싫은 지민은 애초에 달리기 실력이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아 씨발 진짜 저거 어떡하지. 지민은 결국 복도 바닥에 벌러덩 엎어졌다. 아직도 얼굴이 화끈화끈하다. 중학교 때 사진이 아닌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지, 제 기억 저어기 구석탱이 처박아 놓았던 과거가 드러난 것을 비통해 해야 할지 가늠도 안됐다. 아니 그냥 어이가 없어. 지민은 결국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래층으로 내려간 태형은 헉헉 숨을 몰아쉬며 지민이 안오나 목을 쭉 빼고 두리번거렸다. 안오네.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쉰 태형은 마이 안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내 내려다보았다. 흐흫. 태형은 어지간히도 기분 좋은 듯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지민은 하나 간과한 게 있었다. 본인의 사진은 본인 집에만 있는 줄 안다. 태형과 지민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친했다. 둘이 붙어 지낸 만큼 서로 가지고 있는 사진도 많을 것이고, 당연히 지민의 여러 모습이 태형의 사진첩에도 있었다. 어제 아무 생각 없이 사진첩을 열어봤다가 발견한 사진들이었다. 중학교 때 여장 사진도 지민이 다 없애 버렸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마 클라우드 뒤져보면 나올지도 몰랐다. 어렸을 때 이렇게 다니기도 했구나. 태형은 문득 그런 생각을 하며 엄지로 살살 사진을 쓸었다. 그러다 갑자기 아아악!!! 소리를 지르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런 멍청한 두뇌 같으니라고! 이런 모습을 기억하고 있어야지!!!
야, 내놔. 지민이 손을 뻗으면서 하는 말에 태형은 들은 척도 안했다. 그거 내 사진이잖아, 엄마한테 받았지? 그의 물음에 고개만 젓는다. 내건데. 허. 지민은 헛웃음 쳤다.
야 그게 무슨 네 거야. 우리 집에서 받은 거 아냐?
아닌데? 진짜 우리 집 사진첩에서 가져온 건데.
... 그거 나잖아. 빨리 줘봐.
싫어. 바로 찢어버릴 거면서. 이거 내 사진이야. 내 거니까 너도 함부로 못해.
야 그게 무슨!... 그게 무슨 네 거야. 내 얼굴인데.
내 거야.
김태형.
그렇게 불러도 안 줘.
지민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진짜 저 새끼 팰 수도 없고... 지민은 제 풀에 지쳐 자리에 풀썩 앉았다. 자신의 앨범만 없애면 될 줄 알았더니 그것보다 더 큰 김태형이라는 산이 있었다. 김태형은 생각도 못했는데... 세상에 김태형네 집 앨범에도 내 사진이 있을 거란 생각은 절대 못했지.
태형은 옆에서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지민을 힐끔 보더니 의자채로 슥슥 다가가 지민의 옆에 딱 붙었다. 지민은 고개만 살짝 돌려 태형을 힐끗 쳐다봤다. 왜, 또 뭐하려고. 지민의 말에 태형이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속삭였다.
내가 색시 치마 입은 사진 다 줄까?
뭐? 진짜?
대신,
아 싫어.
뭐야. 나 말도 안꺼냈어.
그걸 빌미로 뭐 말도 안되는 거 시킬 거잖아.
아니야.
... 뭔데.
나 소원 하나 들어줘.
말도 안되는 거 맞네!
이게 뭐가 말이 안되는데!
또라이한테 소원을 하나 들어준다는 약속을 하면 그게 미친 거지,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태형의 양 볼이 부풀었다. 그렇게 해도 그건 안돼. 지민의 단호박에 미운 눈으로 지민을 바라보던 태형이 사진을 꺼냈다. 지민을 향해 보이는 사진에 지민이 벌떡 자리에 일어났지만 사진을 든 손을 뒤로 빼고 다른 한 손으로 그를 막은 태형의 행동에, 지민은 결국 자리에 다시 앉았다.
내가 어떤 소원을 빌 줄 알고?
그래, 어떤 소원을 빌 줄 모르니까 승낙하면 안되지.
......
너 지금 하는 거 보니까 정말 말도 안되는 거 시키려 했구먼.
그건 아니야!
네가 퍽도 아니겠다. 지금도 그걸로 협박하는데.
이씨, 너는 친구가 이렇게까지 바라면 왜 그럴까 궁금하지도 않냐?
내가 네 생각을 어떻게 따라가니.
페북에 올려버릴 거야.
죽는다 진짜.
흥. 내 거 내가 올리겠다는데.
뭐가 내거야?
갑자기 태형의 손에서 쑥 빠지는 사진에, 태형이 그대로 고개를 젖혀 위를 바라봤다. 헐 쌤. 태형과 지민은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선생님의 손에 들린 사진을 바라봤다. 선생님은 사진을 내려다봤다. 쌤이 들어오는데도 둘만의 세상이길래 뭐 때문인가 했더니, 이거 때문이었어? 선생님이 사진을 팔랑거리며 말하자 둘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이쁜 애네. 누군데?
색시요.
선생님의 물음에 태형이 망설임 없이 답했다. 지민은 진심으로 놀라 두 눈이 확장된 채 태형을 바라봤다. 그래봤자 태형이 더 앞에 있어 지민이 어떤 표정을 지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선생님은 살짝 당황한 기색을 비치며 사진과 지민을 번갈아봤다. 대박, 이게 빡찜이라고?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정우가 꽥 소리를 질렀다. 어디 어디? 갑자기 아이들의 우르르 몰려오기 시작했다. 지민은 한 손으로 제 눈을 가렸다. 망했다. 지민의 머릿속에 저 말이 가득 들어찼다.
태형이가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색시 색시 노래를 부르던 이유를 알겠네. 선생님의 말씀에 아이들이 더욱 붙었다. 쌤 저희도 보여주세요! 보여주세요! 그들의 말에도 선생님은 아예 배에 사진을 딱 붙인 채 보여주지 않았다. 너희들이 이걸 봐서 뭐하게, 빨리 앉아 수업해야 해. 선생님의 단호한 말에 아이들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제 자리에 앉았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다 자리에 앉고 나서야 태형에게 그 사진을 돌려주었다. 지민이 옛날에 되게 오해 많이 받았겠네. 선생님의 말에 지민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색시야.
......
색시야, 화났어?
......
근데 진짜로 이건 내 거잖아.
태형의 마지막 말에 지민은 우뚝 발걸음을 멈추고 홱 뒤돌았다. 서너 걸음 뒤에서 따라 걸어오던 태형도 멈추어 서서 지민을 바라봤다. 그래, 소원 하나 들어줄게. 뜬금없는 지민의 말에 태형의 눈에 의아함이 돌았다. 내가 네 소원 들어준다고.
그러니까 내 사진 다 줘.
정말이지?
나 거짓말 하는 거 봤어?
알았어.
소원이 뭔데.
그건 비밀.
어? 이번에는 지민이 의아함을 담은 눈으로 태형을 바라봤다. 태형은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지민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아 올렸다. 지민은 자연스레 손바닥을 펴보였다. 태형은 지민의 손에 사진을 올렸다. 나중에 내가 빌고 싶을 때 그 때 말 할 거야. 태형의 말에 제 사진만 내려다보던 지민이 고개를 들어 태형을 바라봤다. 그러다 까먹어도 소용없어. 그의 말에 태형이 피식 웃었다. 절대 그럴 일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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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쓰고 있는 것 중에
아마 남고생이 제일 먼저 끝날 것 같네요.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창고에 들어오시는 분들 중에
그냥 아무거나 검색하다가 들어온건지
정말로 저의 글을 보기 위해 검색해서 들어온건지
가끔 궁금할 때가 있어요
정말 제 글을 보기 위해서 검색하고 들어온거면
좀 기쁘네여ㅋㅋㅋㅋㅋ
사실 뷔민 남고생으로 들어오는 분들이 많아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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