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민 무제 4
잡하루가 아무리 좆같이 굴러가도 아침은 항상 오고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돌아간다. 그러니까, 내가 인생에 어떤 풍파를 겪어도 세상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으며 내가 순식간에 이 세상에 사라져도 세상은 여전히 평화롭게 아침을 맞이 한다는거지.
태형은 눈을 뜨고 커다란 창으로 밝게 들어오는 햇살을 느끼자마자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 당장 어제 그런 엄청난 일을 겪었는데 마치 아무 일 없었던 양, 평화롭기만 한 아침이 어젯밤과 너무 큰 괴리감이 느껴졌다. 멍하니 침대에 누워 눈만 끔뻑이다가 문득 깨달음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근데 여기 어디야.
無在
주위를 둘러봐도 난생 처음 보는 방이다. 태형은 순간 전에 없던 소름을 느꼈다. 씨발 대체 여긴 어디야. 머리가 복잡해져 시야를 가리고 있는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온 몸을 방망이로 두들겨 맞은 것처럼 욱씬거렸다. 아으으... 결국 다시 침대에 누웠다. 팔 하나 들 힘도 없다. 멍하니 하얀 천장만 바라보던 태형은 문득 떠오른 기억에 다급히 제 가슴팍을 더듬거렸다. 어제와 같은 통증은 없었지만 무서웠다. 설마 혈흔으로 딱딱하게 굳은 옷자락을 만지게 되지 않을까, 말도 안되는 크기의 낫에 관통당한 가슴의 구멍에 손이 닿이지는 않을까. 머릿속에는 이런저런 두려움으로 복잡하게 얽혀 당장이라도 머리가 터질 것 같았지만, 겉으로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아니, 과부화로 열이 오르는 머리와는 다르게 속은 이상할 정도로 차게 식어 침착함을 넘어 냉정한 느낌마저 들었다. 손이 살짝 떨리는 것이 스스로도 느껴졌다. 심장부부근을 더듬거리다 그 주위로 점차 넓혔다. 가슴부근을 다 거친 손은 길을 잃어 방황하는 듯 여기저기 슥슥 만지기 시작했다. 어디를 만져도 그저 매끈하기만 한 제 몸을 느낀 태형은 다시 한 번 상체를 벌떡 일으켜 웃옷을 팍 올려 맨 몸을 보기 시작했다. 어디에도 그 대낫이 관통한 자국이 없었다.
태형은 재빨리 침대에서 나와 방에 붙어 있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급하게 내려오느라 힘이 빠진 다리 때문에 순간 휘청이긴 했지만 금방 중심 잡고 뛰쳐갔다. 두 다리에 엉켜있던 이불이 태형 따라 침대에 떨어졌다. 반쯤 열린 화장실 문을 거칠게 열어 문이 벽에 부딪쳐 꽝 소리가 났다. 거의 폭죽 터지는 소리와 맞먹는 데시벨에 깜짝 놀랄만도 하건만, 태형은 지금 '대낫이 관통한 자국'에 정신이 팔려 그런 소리 따위에 시선을 돌릴 시간이 없었다.
벽 한 쪽에 커다랗게 붙어있는 거울을 바라봤다가 제 처참한 몰골을 보고 기함을 했다. 대체 어떻게 뒹굴었으면 이렇게 엉망진창일 수가 있을까. 태형은 재빨리 물을 틀어 대충 세수하고 머리를 정리했다. 거지꼴이 따로 없었다. 제가 입고 있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잠옷만 깔끔했다.
이제야 좀 진정이 된 태형은 뒤늦게 빡침이 올라왔다. 태형은 뭐라도 다 때려부술듯한 표정으로 화장실을 나와 방문을 거칠게 열고 나갔다. 박지미이인!!! 우레와 같은 그의 목소리가 온 집에 울렸다. 낯설기만 한 집이지만 두 눈이 분노에 가린 태형에게는 그 어느 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에 팍 힘을 준 채 집 안 곳곳을 다닌 태형은 저 멀리 보이는 익숙한 뒷모습에 망설임 없이 다가가 바로 멱살을 잡아챘다. 아침댓바람부터 멱살 잡힌 지민은 당혹스러움에 숨도 헙 들이키며 그를 바라봤다.
너 이새끼야 나한테 뭔 짓 했어!!!
버, 벌써 일어났어?
벌써 일어났어? 버얼써 일어났어어?? 그게 지금 나한테 할 소리냐?
아니, 아직 몸이 좀 아플텐데.
그래 씨발 네가 나 자는새에 신나게 방망이질을 했는지 아주 그냥 온 관절이 끊어질 것 같고 욱신거려 죽겠다. 이게 네가 원하는 거냐? 네가 원하는 거냐고!
어, 말해보라고!! 아예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어대는 통에 지민은 정신을 못차리고 태형에게 휘둘렸다. 자, 잠시만! 지민은 그에게 흔들려 정신 없는 와중에도 그를 진정 시킨답시고 태형의 팔뚝을 탁탁 쳤다. 잠시만이고 나발이고 빨리 어떻게 되는건지 설명이나 해!! 분노로 앞이 먼 태형은 진정이고 자시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지금 겪고 있는 이 상황이 황당하고 어이가 없고 말도 안되 기가 찰 뿐이었다. 지민이 힘을 주어 그를 세게 밀쳐내고 나서야 태형이 잡고 있던 멱살을 놓고 두어걸음 물러났다. 어후 씨발 갑자기 어디서 이런 힘이 난거야. 지민은 제 목을 잡은 채 잔기침을 몇 번이나 했다.
좀 진정이 된 태형은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봤다. 기다란 식탁에 나란히 앉아있던 사람들이 전부다 하던 행동을 멈추고 벙한 표정으로 태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같이 입을 떡 벌리고 있는 것이, 어지간히도 놀란 듯 싶다. 태형은 그들과 눈이 마주치자 바로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슬금슬금 게걸음으로 지민의 옆에 붙었다. 아, 안녕하세요... 갑자기 기어들어가는 듯한 태형의 인사에, 그들도 대충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들의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분명 박지민과 연관이 있고 자신을 보러왔던 사람들이었다. 태형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아침댓바람부터 모이는 것이 참 대단하다 싶었다. 아침 먹을래? 그 중 한명이 시리얼을 푼 숟가락을 든 채 물었다. 태형은 어색하게 웃어보이기만 했다. 남자는 그대로 제 입에 넣고 무어라 물었다. 입 안에 시리얼이 잔뜩 들어간 상태라 약간 어버버거렸다.
너 근데 몸 아프지 않아? 괜찮아?
아파요.
대단하다. 원래 하루만에 막 걸을 수 없을텐데.
... 예?
태형은 그의 말에 순간 불안감이 확 끼쳐왔다. 원래 하루만에 걸을 수 없다고? 그럼 난 그런 고통을 참으면서까지 이렇게 서 있는건가. 원래 이 정도로 아프면 못움직이는 건가. 태형이 갈피를 못잡고 동공지진 일어나는 것을 끝까지 본 남자가 푸핫 웃음을 터뜨렸다. 너 진짜 웃긴다, 내가 그렇게 말했다고 애써 아프려 하는 건 뭐야. 남자의 말에 태형이 그를 째려봤다. 저 지금 엄청 심각하거든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알지.
나도 잘 알아.
뭘 잘 알아요. 사람도 아니면서.
나도 사람이야.
예?!
태형은 거짓말 안하고 사람이 놀라서 눈이 튀어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눈 튀어나올 정도로 놀란 적도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남자는 태형의 반응에 깔깔깔 웃으며 거의 뒤로 넘어갔다. 옆에 있던 다른 남자가 그를 잡아주지 았았더라면 분명 그는 당장에라도 뒤로 넘어갔을 것이다. 남자는 간신히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나는 정호석. 보다시피 나도 인간이고.
보다시피...
그래. 나 그래도 사람 같지 않아?
태형은 구태여 그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분명 저를 포함해서 5명이 있는 자리에 사신인 박지민 하나 뿐인 것은 아닐테고 태형은 아닌 척 하면서 그 커다란 눈을 대굴대굴 굴리며 남은 사신이 누구일까 스캔 하기 시작했다. 그의 눈빛을 단박에 알아차린 호석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 경계 할 필요 없어, 우린 다 같은 편이니까. 그의 말에 태형은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같은 편이라니. 이제는 꼼짝없이 그들에게 묶였다고 생각하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허무감만 들어찼다.
허허. 감정 없는 웃음만 내뱉으며 쓰러지듯 의자에 앉았다. 그냥 머리가 아팠다. 머리도 아프고 온 몸도 쑤시고 그 와중에 내가 왜 이런 고통을 느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이유 모를 회의감마저 들었다. 태형은 이마를 짚었다. 그들이 있는 부엌이 조용해졌다. 이 와중에 또 자신을 배려하겠답시고 찍소리 하나 내지 않는 그들 때문에 태형은 자신이 대체 어떤한 감정으로 바라봐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이제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조차 모르겠다. 화는 나는데 이제는 그 화가 누구에게 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태형은 이 상황에 적응이 안되었고, 여전히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했으며, 여전히 혼란스러워 했다.
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건데...
한참 뒤에 한마디 툭 나온 태형의 말에, 식탁에 앉아 있던 그들이 태형을 힐끔 돌아봤다. 고개를 숙인 채 이마만 짚고 있던 태형이 후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어 그들을 바라봤다. 아침에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어제 겪은 그 일의 후유증이 너무 커서인지 그의 얼굴이 초췌해 보였다. 간신히 내뱉은 듯 목소리에도 느껴지는 괴로움에 그들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섣불리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내가... 태형은 목이 매이는 듯 잠시 말을 멈추고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대체 뭘 해야 하는 건데.
그는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에 수긍한 것이 아니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막막함이 온전히 묻어나왔다. 하아. 지민도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제 파트너는 항상 이래왔기 때문에 이제는 별스럽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니었다. 매 번 만날 때마다 운명을 거부하고 자신을 거부해 온 파트너 때문에 이제는 지친 것도 사실이었다. 분위기는 가라앉을 때로 가라앉았다. 새로 시작하게 된 사신 파트너는 여전히 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고, 그런 그와 계약을 맺은 지민은 어찌 되었든 그와 함께 해야한다. 둘 다 좋지 않은 표정에 다른 사람들이 차마 끼어들지도 못하고 그저 분위기만 보면서 힐끔힐끔 눈치 볼 뿐이었다.
인간.
식탁 끝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전부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팔꿈치를 식탁에 대고 손바닥으로 관자놀이 부근을 받친 채 태형을 보고 있던 윤기였다. 저 형은 또 무슨 말 하려고. 호석이 옆에 앉아있는 남준의 귀에다 작게 속삭였다. 남준은 그러지 말라며 호석의 어깨를 토닥였지만 내심 그도 속으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저 형은 인간의 감정이라곤 요만큼도 이해 못하는 존재니까. 지금도 태형이 뭐 때문에 저렇게 혼란스러워 하고 화를 내고 거부하는지 조금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태형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윤기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불안한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윤기는 삐딱하게 기울이고 있던 머리를 들어 제대로 태형을 쳐다보았다.
언제까지 그렇게 투정만 부리고 있을래. 너만 지금 인생 꼬였어? 쟤도 너랑 상황 똑같았던 건 마찬가지야.
윤기가 턱짓으로 호석을 가리켰다. 갑자기 자신에게 시선이 쏠려 호석은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태형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태형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이 이상 자신이 처한 상황을 거부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투정일 뿐이었다. 그래서 더욱 혼란스러웠다. 목숨에 위협을 느끼고 같은 반 학생이 사실은 사람이 아니었던 데다가, 그가 들고 다니는 커다란 대낫에 가슴을 관통 당하고 이제 파트너니까 함께 해야한다는 말을 듣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런 비현실적인 일들을 전부 이해하고 수긍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태형은 제 자신이 답답했다. 어떻게 해야할까 갈피를 잡지 못했다. 여러 복잡한 생각과 심정이 머릿속과 마음속을 마구 헤집었다. 태형은 짜증스러움에 결국 두 손으로 머리를 마구 헝클이더니 쾅 식탁을 내려치며 쭉 앉아있는 그들을 바라봤다. 잔뜩 헝클어져 정신없는 머리는 신경쓰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되는건데.
아까와는 달리 결연한 말투였다.
태형은 마루에 걸터앉아 멍하니 정원만 바라봤다. 정신 없어서 여기가 어딘지 제대로 알지 못했는데 알고보니 그들이 사는 곳이었다. 사신들은 돈도 잘 버나보지, 이런 으리으리한데서 다 살고. 태형은 두 손으로 턱을 괸 채 무심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정원은 꽤나 넓었다. 아니, 정원뿐만이 아니라 이 집 자체가 굉장히 넓었다. 한국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직 많이 혼란스럽지? 위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태형이 고개를 들었다. 호석이 그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를 따라 천천히 시선을 내린 태형은 그가 자리에 앉는 것을 보고 다시 정원으로 고개를 돌렸다. 둘 사이에는 잠시 말이 없었다. 태형은 물어보고 싶은게 많았지만 무엇부터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 몰라 고민했다. 호석은 그런 태형의 마음을 다 이해한다는 듯 살풋 웃어보였다.
윤기형이 아까 한 말 있잖아.
윤기형?... 아아... 그 사람...
그래, 그 사람. 좀 차갑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니니까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마.
그 사람 말이 틀린 건 아니니까...
태형은 말 끝을 흐리며 마른세수를 했다. 결국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아직 모르는 것과 납득이 안되는 것 투성이었다. 이제는 어제의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 때의 고통을 잊은 것도 아니었다. 심장 부근에 숨이 턱 막히는 듯한 욱신거림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태형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께로 손이 올라가 입고 있는 옷을 움켜쥐었다. 호석은 그런 미세한 움직임도 슬쩍 다 보고 있었다.
각성한 거 많이 아팠어?
각성?
지민이 무기를 네 몸에 꽂아 넣은 거 말이야. 좀 무자비한 방법이긴 하지만 그게 제대로 먹히긴 해서.
... 그 방법 말고 다른게 있어요?
......
박지민 이 새끼 어딨어.
호석은 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태형의 다리를 부여잡았다. 지민이한테는 그게 최선이어서 그랬어!! 무슨 최선? 나 얼마나 아팠는지 알기나 해요? 지금도 막 온 몸이 욱신거린다고요! 태형은 다리를 탈탈 털었지만 호석은 끈질기게 붙어왔다. 네가 너무 거부해서 지민이가 어쩔 수 없이 그런거야! 호석의 말에 태형은 씩씩거리며 호석을 내려봤다. 일단 진정하고 앉아봐. 제 옆자리를 탁탁 치면서 말하는 호석에, 태형은 말 없이 호석을 내려보다가 결국 자리에 앉았다. 호석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또 격분한 태형이가 지민이를 찾으러 갔다가 얼마나 또 둘이 왕왕거릴지 안봐도 뻔했다. 둘의 싸움은 옆에서 지켜보는 쪽이 더 곤욕이다.
형은 어떻게 각성했는데요?
태형의 물음에 호석의 얼굴이 와자작 굳었다. 바로 풀어지긴 했지만 순간적으로 굳어진 얼굴을 태형이 보았다. 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던 호석이 입을 열었다.
어쨌든 너희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야.
뭔데요.
그냥... 기를 공유하는 거야.
무슨 기?
호석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 기를 공유하는데요? 꼬치꼬치 캐묻는 태형에 식은땀까지 삐질삐질 나는 기분이었다. 누가봐도 당화스러워 하는 기색이 역력한 호석의 표정에 태형은 의문만 늘어갔다. 아니 대체 어떻게 했길래 저렇게 말하기를 꺼려하는거지.
어차피 이미 각성 했는데 다른 방법이 궁금해 할 필요가 뭐가 있어.
형이 그렇게 빼니까 더 궁금한데요?
그냥 네가 한 각성이 제일 확실하고 강해.
아 또 그런게 차이가 있어요?
기를 공유하는 거 보다 피를 공유하는게 네가 봐도 확실해 보이지 않냐?
아...
태형은 무의식적으로 제 가슴팍을 쓸었다. 이제는 가슴의 통증도 없고 말끔했지만 어제의 기억이 어지간히도 충격적이었던지 아직도 잊지 못하는 듯 했다. 근데요, 사신이 세 명이면 사람도 세 명이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태형의 물음에 호석은 또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윤기 형 파트너가 있긴 한데 지금 냉전 중이라.
예?
둘이 싸웠거든. 그래서 파트너가 집을 나갔어.
... 어떻게 위로를 해줘야 할지 모르겠네요.
뭐 또 금방 들어올거야. 둘이 죽네 사네 해도 기본적으로 상성이 끝내주게 잘 맞는데다가 사실 서로 없으면 또 못살아.
아... 네...
지민이가 말해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신이랑 파트너랑 오래 떨어져 있으면 안되거든. 뭐 그 둘은 굳이 그런 거 아니더라도 원래 떨어져 있으면 금방 서로를 찾는 사람들이지만.
호석은 푸핫 웃으며 말했다. 둘이 싸우는 거 보면 진짜 유치하다니까. 형 처음에 각성 했을 때 기분 어땠어요? 태형의 물음에 호석은 웃고 있던 표정을 풀고 진지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사실, 나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너한테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어.
... 왜요?
너랑 상황이 달랐다고 해야하나. 나는 남준이가 필요했어, 절박했고. 애초에 너처럼 뭐가 이상한지 구분 할 정도로 머리가 자란 것도 아니었고.
호석아! 집 안 쪽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호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 궁금한게 더 많을텐데 나머지는 지민이한테 물어봐. 호석은 태형의 어깨를 두어번 두들기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형! 태형은 몸을 돌려 애처롭게 그를 불렀지만 호석은 이미 집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호석이 가고 언제 와있었는지, 팔짱을 낀 채 문틀에 기대어 있는 지민과 눈이 마주친 태형은 안본 척 슬쩍 몸을 제자리로 돌려 다시 정원을 바라봤다. 아이고야, 집 진짜 좋다. 괜히 혼잣말을 하며 아닌 척 해보지만 지민은 이미 마루로 나와 태형의 옆자리에 앉았다. 많이 이야기 했어? 항상 듣던 목소리와는 다르게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태형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지민을 바라봤다. 태형을 돌아본 지민은 태형의 표정을 보고 인상을 팍 찌푸렸다. 뭐야, 그 표정은. 다시 돌아온 까칠한 지민의 목소리에 태형의 표정이 질리다는 듯 풀어졌다. 그럼 그렇지.
태형은 턱을 괸 채 가만히 지민을 바라봤다. 노란색 맨투맨을 입고 있는 지민은 학교에서 보던 것과 같이 흑발이었다. 입만 안열면 애가 참 순해 보이고 좋은데.
뭘 그렇게 봐.
에이씨, 진짜. 너는 그냥 입을 열지마.
틱틱대는 지민의 말에 태형이 팍 짜증을 냈다. 진짜 이 새끼는 입만 열면 성격 파탄이야. 서로 기분만 상해 둘 다 홱 정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둘 사이에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가끔 지저귀는 새소리만 어디선가 들려올 뿐이었다. 이제 바빠질거야. 지민이 한마디 툭 던졌다. 태형은 안그런 척 하면서 귀 기울여 들었다. 그의 귀가 쫑긋쫑긋 움직였다.
각성을 좀 성급히 한 것은 인정해. 너도 나도 급해서 그런거니까.
......
그... 미안하다.
태형이 놀라 두 눈이 동그랗게 떠지며 고개를 홱 돌려 지민을 바라봤다. 지민은 힐끗힐끗 태형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주 미세한 움직임이었지만 태형의 눈에 잘 띄었다. 네가 사과를 할 줄도 아네. 태형이 멍한 표정으로 혼잣말 하듯 중얼거리자 지민이 욱했다. 야, 나도 양심이 있고 죄책감이라는게 있거든?
아아, 하도 인간인간 거리길래 사신은 그런게 없는 줄 알았지.
진짜 죽고 싶냐?
너는 정말 예쁜 말 하는 법부터 배워야겠다.
누가 할 소리를. 잘해주려고 해도 꼭 초를 쳐요.
......
왜. 계속 왜 그렇게 보는데.
야.
뭐.
우리 화해하자.
태형은 세운 무릎에 얼굴을 기댄 채 손을 내밀었다. 지민은 멍한 표정으로 그가 내민 손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태형을 바라봤다. 들어보니까 파트너랑 사신은 오래 떨어져 있으면 안된다던데. 지민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호석이 형이 가르쳐 주었나보다. 가만히 제 손만 내려다 보고 있는 지민에, 태형은 손을 한 번 흔들었다. 얼른. 태형의 재촉에 지민은 천천히 그의 손을 맞잡았다. 악수한다고 잡은 손이 태형의 손에 덮혀 거의 가려지자 태형이 큭 웃었다. 웃지마. 지민은 괜히 어색해서 한소리 했다. 어쨌든 계약한 입장인데 잘해보자. 손을 자연스럽게 빼며 하는 말에 지민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태형은 다시 정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 연못도 있었네. 태형이 작게 혼잣말 하는 것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지민이 입술을 달싹였다. 야. 지민이 작게 불렀다. 태형은 지민을 살짝 바라봤다.
너무 그렇게 억지로 노력 안해도 돼.
... 어?
아무렇지 않은 척 해도 어차피 이해 못 할 일이란 거,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
네가 뭘 걱정하고 있는지, 뭘 불안해 하고 있는지 알아. 어쨌든 끌어들인 건 나니까 지켜줄게. 너 안 죽어.
지민의 말에 태형이 헛웃음을 뱉으며 마른세수를 했다. 너 계속 그거 신경쓰고 있었냐? 태형의 물음에도 지민은 대답이 없었다. 입 꾹 다문 채 앞만 보고 있는 지민의 표정을 가만히 보던 태형이 살짝 한숨을 쉬며 머리를 쓸어넘겼다. 보면 볼수록 지민을 모르겠다. 지민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솔직히 아직 겁 나는 거 맞아.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니까 네가 신경 써주는 것도 알아. 근데 너도 나 필요한 거 아니야? 네말대로 나를 끌어들인 건 내가 필요하니까 그런 거일텐데 나도 뭔가 도움은 되야 할 거 아니야.
......
너 혼자 다 짊어질 생각 하지마. 우리 일이야. 적어도 내 몸 지킬 수 있도록 강해질게.
......
아 그래도 아직은 무서우니까 나 좀 도와줘...
결연한 표정으로 강하게 말하던 태형이 마지막에 애교부리듯 풀어지는 말에, 지민도 결국 피식 웃었다.
***
이번에는 괜찮냐.
문틀에 기대 서 있던 윤기가 지민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지민은 마루에서 두 무릎을 세워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 가볍게 얹은 머리가 살짝 옆으로 기울어졌다. 살짝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적어도 옛날보다는 낫겠죠.
그래, 애가 겁은 많아도 깡은 있어보이더라.
모르죠. 또 이러다 나중에 안한다고 도망갈지.
그러면 죽여야지 뭐.
지민이 무슨 말을 그렇게 햐냐는 듯 인상을 팍 찌푸리며 윤기를 돌아봤다. 그의 표정을 본 윤기가 따라 인상을 찌푸렸다. 나 더 이상 너 미련맞을 짓 하는 거 못 봐. 윤기의 목소리에는 장난기라곤 없었다. 단호하기 그지 없는 그의 말에 지민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윤기는 웅크려 앉은 지민의 뒷모습을 가만히 내려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항상 걱정하고 있어.
내가 앤가.
애지. 너 전정국보다 애야.
인간이랑 비교하지 마요.
김석진이랑 정호석도 엄청 걱정하고 있어. 인간 주제에.
형은 석진이 형이랑 빨리 화해나 해요.
싸운 적 없어.
웃겨. 석진이 형이 일주일이나 안들어 오는 거보면 각 나오는데.
윤기는 입술을 감춰물었다. 할 말 없죠? 지민이 고개를 돌려 윤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윤기가 미간을 살풋 찌푸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안 싸웠어, 걔가 지멋대로 나간거라니까. 끝까지 부정하는 윤기를 보던 지민이 에휴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나지만 석진이 형도 진짜 파트너 운 없어요. 윤기의 어깨를 토닥이곤 집 안으로 들어가는 지민의 뒷모습만 멍하니 바라보던 윤기가 별안간 빽 소리를 질렀다. 야, 너 그거 무슨 뜻이야! 내가 별로라는 거야?!
네 파트너 갔어? 거실에서 티비를 보던 호석이 지민을 발견하고 물었다. 지민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근데 아직 각성한지도 얼마 안됐는데 떨어져도 되는거야? 호석의 물음에 지민은 물을 따르던 손을 우뚝 멈추었다. 이제서야 자신의 상황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는데, 거기에 또 초 치는 건 좀 아니다 싶어서요. 지민의 대답에 호석이 지민이 있는 곳을 힐끗 쳐다봤다.
그래도 그런 건 바로 이야기 해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있을 일에 대비해서도 그렇고.
어떻게 바로 여기서 살라고 그래요. 아직 자기가 뭔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는데.
나중에 일 터지면 너무 늦어, 지민아. 피를 공유한 상황에 지금 태형이가 얼마나 위험한지 뻔히 알면서.
......
네 맘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지민이는 너무 과거에 매여 있는 것 같아.
......
벌써부터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두려워 하지마.
지민은 떨리기 시작한 손을 애써 무시하며 천천히 들고 있던 컵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호석의 말은 구구절절 다 맞는 말이었다. 어쨌든 책임을 지겠다고 이야기를 한 상황에 이 집에서 나가는 것을 막지 않은 것은 잘못된 일이었다. 떨리는 두 손을 천천히 올려 얼굴을 묻었다. 태형은 아마 모르겠지만 지민도 태형만큼이나 지금까지의 상황들이 혼란스럽기만 했다. 호석의 말마따나 과거에 얽매여 있었다. 지민은 여전히 무언가에 도피중이었다.
호석아, 이거 이상해!! 멀리서 들리는 남준의 목소리에 호석이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우당탕탕 남준에게 달려갔다. 너 내가 아무거나 건들이지 말라 그랬지!! 호석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거실은 어떤 소음도 없이 조용해졌다. 지민은 천천히 손을 내렸다.
술렁술렁거리는 목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태형은 결국 이어폰 볼륨을 더 높혔다. 그런 일이 있어도 귀신 보는 건 여전하구나. 태형은 괜히 음악목록을 내리면서 생각했다. 귀신들의 잡담을 듣고 싶어서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계속 들렸다. 이 동네 귀신은 요새 자신이 화제거리인지 보이는 귀신마다 자신을 보고 놀라며 쑥덕거린다. 나 참 무슨 구경났냐고요. 태형은 괜히 인상을 팍 찌푸렸다. 눈이 마주친 귀신이 황급히 시선을 내리깠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자기 괴롭히면서 이야기 들어달라고 하던 것들이 사신이랑 인연 좀 닿았다고 이렇게 달라지나 싶다.
그런데 왜 혼자 다닌데? 아이고야 목숨줄이 두렵지 않은갑지. 파트너 있다고 그러는거지 뭐. 긴가민가 했는데 정말 그거였네. 어쩐지 기가 심상치 않더라니까. 저렇게 단독행동 하는 그것도 처음 봤네. 사신이랑 어지간히도 안친한가 보지.
여전히 음악을 헤치며 파고드는 그들의 목소리에 태형은 결국 짜증스럽게 이어폰을 빼냈다. 뒤에서 쑥덕거리지 말고 할 말 있으면 앞에서 하지? 아무도 보이지 않는 삭막한 골목에 태형의 목소리만 울렸다. 씨익씨익 거리며 주위를 홱홱 둘러보던 태형은 온 몸으로 짜증을 내며 거칠게 걸음을 옮겼다. 너 그렇게 혼자 다니면 위험하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속에 팍 꽂혔다. 태형은 다시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도 없었다. 아니 모습이라도 보여야 할 거 아니야.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머리를 헝클였다.
갑자기 이유 모를 공포감이 엄습했다. 아 씨발 진짜... 태형은 자꾸 그 이상한 괴물을 만났던 일이 떠오르자 마음이 급해졌다. 귀신들이 자꾸 쓸데없는 말을 해서 더 그렇다. 얘네들은 사람 가지고 장난 치는 걸 좋아하는 애들이다. 분명 자신이 겁을 먹고 벌벌 떠는게 재밌어서 더 그러는 것이다.
사신한테 묶였으면 인간도 아니었네. 귓가를 스치는 조용한 목소리에 걸음을 빨리 하던 태형이 우뚝 멈추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전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당연하지, 인간이 어떻게 사신한테 묶여.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깔깔깔깔 소름끼치는 웃음소리가 사방팔방으로 퍼졌다. 태형은 한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휘청였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간신히 중심을 잡은 태형이 천천히 머리에서 손을 뗐다. 무재네. 어디서 나는지 모를 목소리가 웅웅 울렸다. 무재였어. 무재라니. 이제 깨달은거야? 각성한지 얼마 안됐나보지? 피 냄새가 진동을 하네. 어린 무재네.
무재가... 뭐야. 태형의 중얼거림에 머리가 아플 정도로 속닥거리던 목소리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무언가 제 머리를 꾹꾹 누르는 것 같던 압박감이 한순간에 사라져, 태형은 후 숨을 크게 내쉬었다. 속이 안좋아 비틀거리며 담벼락에 턱 기대었다. 점점 가라앉던 해는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하늘이 점점 진하게 물들고 있었다.
한낱 잡귀들이 떠들어대는 소리 듣지마.
익숙한 목소리에 태형은 숙이고 있던 고개를 팍 들었다. 익숙한 얼굴이 보이자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에 태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민은 눈썹 한 쪽을 꿈틀했다. 아 다행이다, 너라도 있어서. 태형은 삐딱하게 기대고 있던 몸을 바로했다.
잡귀들이 떠들어대는 거 하나하나 상대해 주지 말라고.
알았다고. 근데 너 왜 나왔냐.
......
나 데려다 주려고?
... 몰라 새끼야. 빨리 집에나 가.
뭐야, 온 목적이 있을 거 아니야.
아 네가 또 밤길 무서워 벌벌 떨고 있을까봐 왔다, 됐냐?
뭐? 야 나 그렇게 찌질이 아니야! 그래도 애기 때부터 온갖 귀신은 다 봤었는데.
내 앞에서 질질 짜던 애가 누군데.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일인데 그럴수도 있지.
빨리 앞장이나 서.
지민이 손을 휘휘 저으며 하는 말에 태형이 입술만 달싹이다 결국 발을 뗐다. 여전히 고요하기만 한 골목길이었지만 아까보다 한결 마음이 편해져 태형은 작게 허밍까지 했다. 지민은 그런 태형을 힐끗힐끗 쳐다봤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계속 곁눈질로 힐끗힐끗거리는 시선이 느껴져 태형은 결국 아아! 소리치며 지민을 봤다. 갑작스런 그의 괴성에 흠칫 놀란 지민은 곧 인상을 팍 찌푸리며 태형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왜왜왜 뭐 왜 뭐. 뭔 말이 하고 싶은 건데.
아니...
그럼 그렇게 남 눈치를 보지 말던가. 뭐하는거야.
... 티났어?
지금 나랑 장난치냐.
지민은 괜히 머리를 만지작 거리고 흠흠 헛기침을 하는 등 답지 않게 머뭇거리자, 태형은 의아해져 고개만 갸웃거렸다. 야 진짜 너 답지 않게 왜그래. 태형이 지민을 툭툭 건들며 말했다. 대체 얘는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었던건지 지민은 헛웃음만 나와 피식거렸다.
사실 너한테 말 못한게 있어.
그게 한 두개겠냐.
......
뭔데.
같이 살자.
우와아악!!!
태형은 그 말을 듣자마자 양 팔을 거세게 문지르며 온 몸을 베베 꼬았다. 지민은 자신이 말해놓고 쪽팔림에 얼굴이 시뻘게졌다. 미동도 않고 꿋꿋히 서 있는 지민과는 다르게 태형은 마구 움직이며 몸을 비틀어댔다. 제정신이야? 태형이 훅 다가와 지민의 이마에 손을 갖다대었다. 큼지막한 손이 지민의 눈까지 다 덮었다. 눈을 가린 손을 치우자 그의 얼굴이 바로 앞에 보였다. 나 제정신이야. 지민은 자신도 부끄러운 걸 아는지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태형은 그제서야 얼굴을 뒤로 빼며 살짝 굽혔던 허리를 폈다.
프로포즈가 저돌적이네.
빨리 대답이나 해. 답은 응 밖에 없어.
넌 진짜 볼때마다 사람을 놀래켜. 뭐가 진짜 너인지 모르겠어.
나랑 같이 살아야 널 지켜줄 수가 있어.
목숨으로 협박하는거야?
협박이 아니라 사실을 얘기 해주는거야.
흐응. 태형은 지민은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말은 술술 잘하면서 눈은 못마주친다. 어둑한 저녁빛 사이에서도 그의 홍조 오른 볼이 보였다. 엄청 부끄러워 하네.
사실 태형의 입장에서는 거절 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부모님의 허락도 받아야 하겠지만 지금 당장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언제 어디서 그런 괴물을 만날지도 모르고, 아직 많은 것이 불안정 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그 집에 있는 것이 훨씬 더 나았다. 아까도, 집에 나오자마자 잡귀들이 못살게 굴지 않았던가. 지민을 만나자마자 거짓말처럼 사라진 그것들에 내심 안도했던 것도 있었다. 어쨌든 아직 태형은 지민이 없으면 안되었다. 이것도 계약인거지. 태형의 물음에 지민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태형은 손을 내밀었다. 이번에 지민은 망설임 없이 그의 손을 맞잡았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태형이 고개를 숙이며 말하자 지민도 어설프게 따라 고개를 숙였다.
---
4화만에 제목을 지어봤어요
앞에 적혀 있다시피 無在입니다!
무제와 똑같은 음인 무재죠ㅋㅋㅋ
아마 5화가 나온다면 무재 5로 나올 것 같습니다
아직 갈 길이 한참 먼 무재입니다...
'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뷔민 이런 거 보고 싶다 (0) | 2017.07.29 |
---|---|
슙민 도깨비 조각글 (1) | 2017.07.18 |
뷔민 무제 3 (2) | 2017.05.21 |
뷔민 무제 2 (4) | 2017.05.09 |
뷔민 무제 (2) | 2017.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