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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민 말도 안되는 육아물 썰6

길/육아물


나 놀이터 데려다 죠...

 

 

아까부터 칭얼대는 도하에 결국 지민은 하던 일을 내려놓고 도하를 봤다. 김도하, 엄마가 뭐라고 했어요? 도하 할 일 다 하면 데려다 준다고 했었죠지민의 말에 도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빠는 맨날 데려다 줬단 말이야. 도하의 투정에 지민은 이마를 짚었다. 아니 대체 평소에 애를 어떻게 가르친 거야. 지금 집에 없는 태형이 원망스러웠다. 지민은 결국 하던 일을 두고 도하 앞에 마주 앉았다. 지민이 두 손을 내밀자 도하도 작은 두 손을 내밀었다. 지민은 그의 두 손을 잡고 좀 더 가까이 도하를 끌었다.

 

 

엄마랑 약속했잖아요. 도하 할 일 다 끝내고 나서 놀기로.

 

놀다 와서 하께...

 

그렇게 미루는 습관 어디서 배웠어요. 엄마는 그렇게 가르친 적이 없는데.

 

 

도하는 말이 없었다. 보나마나 김태형 때문이겠지 뭐. 태형은 아이를 굉장히 자유롭게 풀어주는 편이었다.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단 예의에 어긋나거나 윤리적으로 맞지 않는 일에는 단호히. 지민은 그런 부분이 걱정스러웠다. 그래도 한글이나 간단한 산수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은데 태형은 그런 공부마저도 아이가 하고 싶어 하면 하고 싶어 하는 대로 안 하고 싶으면 하지 않는 대로 놔두는 식이었다.

 

 

아직 6살 밖에 안됐어, 그런 애 붙잡고 뭘 하려는 것 보다 애 하고 싶은 걸 해야지.

 

이제 6살이야, 그래도 기본적인 건 지금부터라도 해 둬야지, 유치원도 안가는데.

 

 

둘은 교육관이 조금 달랐다. 뭐가 더 좋은지는 몰랐다. 다만 태형은 도하가 하기 싫어하는 일이 있고, 그것이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면 억지로 시키지 않았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는 공부도 포함 되어 있었다. 지민은 그게 염려스러웠다. 아니 왜 공부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야? 유치원도 안 보낼 거면 유치원에서 배우는 것 정도는 집에서 해줘야지. 그러다 도하가 다른 애들에 비해 뒤처지면 어떡해. 지민의 말에도 태형은 그 부분에 있어서는 물러나지 않았다. 다른 것은 거의 지민의 뜻에 맡기면서도 그것 하나만큼은 태형의 너무 확고했다. 아이의 선택과 자유에 맡기는 것. 지민의 입장에서는 그 기준이 너무 모호했다. 그래서 둘은 나름의 타협을 했다. 다른 건 몰라도 매일 하루에 1시간씩은 한글과 산수를 시키자고. 매일 1시간은 공부를 시키자고. 그런데 여기서 또 둘의 의견은 갈렸다. 언제든 하루에 1시간만 하면 되는 거 아니냐, 애 하고 싶은 시간 그때그때 맞춰서 하면 된다는 태형과, 지금부터라도 시간을 정해서 규칙적으로 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지민. 태형은 죽어도 물러나지를 않으니 지민은 그때그때 도하와 약속을 정해놓고 약속을 지키는 쪽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도하, 엄마랑 약속했잖아요. 약속은 지키는 거예요.

 

...알아써.

 

 

도하는 그대로 자리에 일어나 자신의 방으로 뛰어갔다. 지민은 도하 몰래 한숨을 쉬었다. , 힘들다. 이런 것에 태형과 차이가 있을 거란 생각은 못했는데. 아무래도 태형과 있는 시간이 훨씬 더 많다보니 상대적으로 태형의 방식에 도하가 물드는 것은 있었다.

 

도하는 방에서 자신의 필통과 교재 두 권을 들고 왔다. 거실에 알아서 자신의 책상을 펴놓고 얌전히 앉는 모습이 퍽 귀엽다. 지민은 도하의 옆에 앉았다. 도하는 교재를 펴다가 별안간 탁 덮더니 같이 가져온 연습장을 폈다. 마마가 단어 불러주면 내가 써 보께. 필통에서 꼬물꼬물 연필을 꺼내면서 하는 말에 지민은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럴까요?

 

 

그럼 엄마 이름이랑 아빠 이름이랑 도하 이름 써보세요.

 

그거 너무 쉬어.

 

쉬워? 엄마 아빠 이름이 뭔데요?

 

...

 

 

도하는 꼬물꼬물 연습장에 쓰기 시작했다. 지민은 턱을 괸 채 도하가 쓰는 것을 조용히 보기만 했다. 차례로 박지민, 김태형, 김도하를 써내는 도하가 기특하기만 하다. 다 쓰고 뿌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도하에, 지민은 결국 도하를 꽉 껴안고 몸을 흔들었다. 아이고 이렇게 귀여운 애가 어디서 왔어, ? 어디서 왔어요. 꺄흐흫 마마 숨마켜! 지민은 그제야 도하를 놔주고 잔뜩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했다. 아빠가 이거 보면 또 좋다고 사진 엄청 찍겠네. 지민의 말에 도하가 대꾸했다. 파파는 내가 하나 쓰 때마다 사진 찌거.

 

태형은 도하가 뭘 할 때마다 사진이나 영상을 남겼다. 벌써 도하 영상과 사진 용량이 1테라를 넘어가고 있었다. 도하가 처음으로 아빠라고 쓴 종이는 지갑에 넣어 다녔다. 아빠 이름 써준 적 있어요? 지민의 물음에 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맨날 파파가 써달라고 해, 마마랑 파파 이름. 아 그래서 쉽다고 했구나. 지민은 머쓱함에 볼을 긁적였다.

 

 

도하 한자이름 어떻게 써요?

 

한자? ...

 

 

도하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거침없이 써 내려 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자를 가르칠 생각이 없었지만그래도 이름 정도는 써야하지 않을까 싶어서 한번 가르쳐 줬더니 그 이후로 한자 쓰는 것을 좋아한 도하였다. 그래서 지민은 매일 한 자씩 가르쳐 주고는 했다.

 

 

도하는 이름 뜻이 뭐예요?

 

... 보슝아, 복슝아? 나무 아래.

 

우리 도하, 잘 기억하네.

 

마마 근데 나 복슝아 나무 미테서 태어 나써?

 

 

도하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며 묻는 말에 지민은 피식 웃으며 도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거를 애한테 어떻게 설명해주어야 하나...

 

 

우리 도하 세상에 나왔을 때 복숭아꽃이 예쁘게 피는 때라 도하라는 이름을 붙인 거예요.

 

?

 

, .

 

그럼 마마 이름은 무슨 뜨시야?

 

 

도하의 물음에 지민은 눈을 접어 웃었다. 그럼 엄마가 엄마 이름이랑 아빠 이름 가르쳐 줄 테니까 나중에 아빠 오면 도하가 아빠한테 이야기 할래요? 응응! 지민의 물음에 도하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답했다.

 

 

 

 

 

 

 

 

 

 

도어락 해제하는 소리에 책을 읽고 있던 지민이 현관 앞으로 갔다. 놀이터에 놀러간 도하가 온 줄 알았는데 태형이었다. 왔어? 지민의 물음에 태형은 그대로 지민을 껴안았다. , 힘들어... 어쩐지 풀이 죽은 목소리에 지민은 태형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태형은 지민을 안은 채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지민은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앞에 잘 봐, 나 부딪치게 하지 마. 지민의 말에 태형이 피식 웃었다. 그의 숨이 지민의 귓가에 닿았다. 태형은 그대로 천천히 방 안까지 들어왔다. 아들은? 놀이터. 태형의 물음에 지민이 간단히 대답했다.

 

태형이 살짝 몸을 떼고 가만히 지민을 내려 봤다. 넥타이 풀어줘. 그의 말에 지민은 익숙하게 넥타이를 풀었다. 자켓도 벗어. 지민의 말에 고분고분 자켓을 벗어 건네자 지민이 그대로 옷걸이에 걸어 행거에 걸었다. 한번 입었으니까 드라이 해야겠네. 아니, 드라이 안 해도 돼. 태형의 말에 지민은 뒤돌아 어느새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태형을 봤다.

 

 

드라이 하지 말라고?

 

그 옷 버려.

 

?

 

이제 입을 일 없을 거야. 입을 일 있다고 해도 그냥 새로 살 거니까 그거 그냥 버려.

 

......

 

아니면 누구 주던지.

 

그래도 이 비싼걸.

 

몰라. 그 사람들이 준 거 보기 싫어.

 

......

 

아니면 네가 사주든가. 평생 입고 다닐 수 있는데.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지만 그 속이 뻔히 보이는 태형에, 지민은 무어라 말도 못하고 그저 옷만 만지작거렸다. 오늘... 어땠어? 지민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태형은 그저 오라고 손짓만 했다. 가까이 다가온 지민의 허리를 감아 그대로 눕힌 태형은 그를 꽉 끌어안았다. 평소라면 미쳤냐며 자신을 퍽퍽 쳐댔을 지민이지만 오늘은 날이 날인지라 가만히 안겨주는 모습에 오오, 태형은 감탄했다. 웬일이야 박지민? 웬일은 무슨.

 

 

네가 웬일로 가만히 안겨?

 

오늘만이야.

 

그런 건 너 혼자만 정하는 게 아닐 텐데. 내가 안고 싶을 때 안으면 되지, .

 

참 나.

 

나 정리했어.

 

 

지민은 살짝 놀랐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잠시 방 안에 정적이 돌았다.

 

 

아니, 정리 당한건가? 어쨌든.

 

...어쩌......

 

... 어쩌다는 아니야. 그냥 옛날부터 마음먹은 일을 오늘 얘기하신거지 뭐.

 

거기는 어떡하고...

 

몰라. 알아서들 하겠지. 나 이제 그 쪽 사람 아닌데 뭐.

 

 

지민은 더 이상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어떤 위로도 섣불리 할 수 없었다. 무심코 뱉은 말이 그에게 어떤 상처로 갈지 모르니까. 지민은 그저 그의 등을 쓸어주며 온기를 나눠주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태형은 자세를 살짝 고치며 지민을 더욱 깊게 끌어안았다.

 

 

나 이제 진짜 너랑 도하 밖에 없어.

 

......

 

지민아.

 

.

 

 

태형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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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하 6

태형 지민 23

 

어느 토요일

 

 

 

 

 

뷔민 말도 안되는 육아물 썰5

길/육아물



아가 여기로 와보세요. 태형은 쭈그려 앉아 박수를 짝짝 치면서 도하를 불렀다. 도하는 그의 박수소리를 듣고 다다다 기어가 태형의 품에 안겼다. 오구 잘 한다 울 아가. 태형은 아이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둘의 모습을 소파에 앉아 가만히 보던 지민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보통 이때쯤 되면 혼자서 일어난다던데.

누구. 아가?

왜 아직도 안 서는 거지. 무슨 문제 있는 거 아니야?

왜 보통 언제 서는데.

 

10개월이면 다 서기 시작한다던데.

 

 

그래? 태형은 지민의 말에 도하를 쳐다봤다. 태형의 품에 안겨 있던 도하는 제 아빠가 내려다보자 방긋방긋 웃으며 두 손을 들어 잼잼 해보였다. 파파! 으바, , 브브... 결국 꺄르르 웃는 도하에 태형도 바로 사르르 웃었다. 아이고 우리 아가, 신나쪄요? 꺄으! 태형이 통통한 볼에 마구 뽀뽀를 했다. 도하도 퍽 기분이 좋은지 꺄르르 웃으며 통통한 손을 마구 휘저었다. 심각한 건 지민뿐이었다.

 

 

야 안 되겠어.

 

또 뭐가.

 

아가 일어서는 연습이라도 시키게.

 

아 때 되면 다 걷겠지.

 

그러다 시기 놓치면 진짜 어떡해.

 

난 우리 아가 믿어. 그치이?

 

아브브......

 

아구! 우리 아가 누구 아들인데 이렇게 귀여워?

 

파파! 파파!

 

 

결국 태형은 눈이 사라지도록 함박웃음을 지으며 도하를 꽉 껴안았다. 꺄으으! 도하도 꺄르르 웃었다. 나 참 웃는 건 또 소름 돋게 똑같이 생겼네. 지민은 결국 소파에 몸을 묻었다.

 

 

 

 

 

 

 

 

 

 

아가, 맘마 먹자 맘마.

 

우으응.

 

 

아이의 입가에 숟가락을 갖다 대자 도리질하며 숟가락을 피해버리는 도하에, 지민은 속으로 한숨을 쉬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도하 맘마 먹기 싫어요? 시여. 왜 싫어요? 시여. 반복이다. 도하는 이상하게 이유식을 굉장히 싫어했다. 재료가 마음에 안 드는 건가 다른 걸로 바꿔 보아도, 혹시 내가 못 만드는 건가 사와도 이유식은 입도 대지 않았다. 그나마 소시지를 잘게 다져 완자 형식으로 만든 것은 잘 먹었다. 어떻게든 이유식을 먹여보려고 소시지를 섞어 넣으면 또 안 먹는다. 매번 밥 먹을 때마다 지민과 태형은 그 작은 아이 앞에서 쩔쩔맸다. 대체 누구 닮았길래 이렇게 애가 까딸스러워? 지민은 태형을 흘겨보았다. 태형은 애써 그의 시선을 무시하며 숟가락을 든 채 오버란 오버는 다 떨었다. 자 이거 봐봐 우리 아들, 아이고 엄청 맛있겠네 이게 뭐야? 소시지네? 맛있겠지? 아빠가 먹어볼까? 아이고 맛있네 이렇게 맛있는 걸 왜 우리 아들은 안 먹을까? 자 아들 한번만 먹어봐. 태형이 다시 숟가락을 도하의 입에 살짝 밀어 넣었다. 으으응! 도하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대로 입 안에 들어간 이유식을 뱉어냈다. , 힘들어. 태형은 철푸덕 바닥에 쓰러졌다

 

 

아이고 아빠 힘들어. 아빠 쓰러졌어.

 

파파..우응...

 

우리 아들이 밥 안 먹어서 아빠 쓰러졌어.

 

 

태형이 쓰러진 채로 고개만 들어 도하를 슬쩍 봤다. 아기 의자에 앉은 도하가 태형을 향해 손을 뻗은채 손을 잼잼했다. 안아달라는 뜻이었다. 태형은 몸을 일으켜 앉은 채로 도하를 올려다봤다. 도하가 밥 안 먹으면 아빠 안아주지 않을 거야. 태형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도하의 얼굴이 점점 찡그려지기 시작하더니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으으응...으이이잉... 쭉 뻗은 두 손을 휘저어도 태형은 단호한 표정으로 움직이는 척도 안했다. 아이의 칭얼거림이 점점 심해지자 안절부절 못하는 것은 지민이었다. 보다 못한 지민이 대신 안아주려 하자 태형이 쓰읍! 인상을 찌푸리며 지민을 봤다.

 

 

그렇게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면 안 돼.

 

그래도 애 울잖아.

 

안돼.

 

 

한층 진지해진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하는 태형에 지민은 그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전적으로 도하는 태형의 아이였다. 지민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듯 도하는 칭얼거림을 멈추었다. 태형은 다시 일어나 숟가락을 들어 도하의 입가에 갖다 대었다. 아들이 이거 먹으면 아빠가 안아줄게. 도하는 싫은 소리를 내면서 태형을 힐끗힐끗 눈치보다 살짝 입에 넣어 먹기 시작했다. 와씨! 태형과 지민은 속을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우리 도하가 먹는다. 몇 숟갈 먹다가 머리를 흔들며 거부 하길래 결국 더 이상 먹이지는 못했지만 이 정도면 나름 선전했다. 태형은 도하를 안고 여기저기 뽀뽀 했다. 또 다른 이유식을 찾아봐야겠네... 지민은 작게 한숨을 쉬며 밥그릇을 치웠다.

 

밥을 다 먹은 도하는 여기저기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요즘 들어 뭐가 그리 궁금한 것이 많은지 뽈뽈뽈 기어 다니면서 여기저기 들어가 보고 앉아서 손에 닿는 것을 이것저것 집어서 보기 시작했다. 혹시나 위험한 것이나 중요한 것은 아이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올려놓았지만 저렇게 돌아다니다가 어디 부딪치기라도 하면 어쩌나, 지민과 태형은 항상 전전긍긍이었다.

 

나 그럼 집에 갈게. 지민의 말에 거실에 앉아서 도하와 잼잼 놀이 하고 있던 태형이 고개만 돌려 지민을 올려다봤다. 지민은 벌써 자신이 들고 온 가방을 매고 있었다. 왜 벌써 가? 태형의 물음에 지민은 그를 어이없다는 듯 쳐다봤다.

 

 

, 우리 이제 고3이야. 나 공부해야 한다고.

 

무슨 공부야방학에.

 

내가 너랑 같냐? 내가 가고 싶은 대 가려면 지금도 어림없어. 내가 여기에 쏟을 시간이 없다고.

 

 

태형은 할 말이 없어 입만 꾹 다물고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표정으로 지민을 바라봤다. 지민은 어깨만 으쓱일 뿐이었다. 내가 처음부터 말했지 널 온전히 도와주기는 힘들 거라고, 네 애니까 전적으로 네가 알아서 키우라고. 다 맞는 말이었지만 왠지 마음에 안 들어 태형은 계속 지민을 뚱하게 쳐다봤다. 그의 앞에 앉아 있는 도하도 맑은 눈을 깜빡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 간다. 지민이 현관 쪽으로 몸을 틀자 뒤에서 다다다 도하가 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마마..으으웅...으이...마마..마마! 제 앞까지 온 도하가 무어라 옹알이를 하면서 지민의 정강이를 안았다. 마마! 마마! 계속해서 자신을 부르는 도하에, 지민은 살풋 웃으며 쭈그려 앉아 도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도하, 엄마 내일 올게요. 으응! 지민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도하가 고개를 저으며 얼굴을 정강이에 부빗거렸다. 지민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멀리서 보고 있는 태형에게 입모양으로 SOS를 보냈다. 야 나 좀 도와줘! 태형은 그의 입모양을 보고 살짝 시선만 틀어 못 본 척 했다. 저 새끼가... 지민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엄마가 내일 꼭 올게요.

 

으으응...

 

도하 이제 네가 언제 오는지 다 알아. 우리 아들 엄청 똑똑하거든.

 

?

 

내일은 평일이라서 네가 안 온다는 걸 안거지.

 

 

태형의 말에 지민은 도하를 내려 봤다. 울망울망한 눈이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으브..으으응... 도하는 무어라 자꾸 웅얼거리며 지민의 바짓가랑이를 잡아 당겼다. 다소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도하를 내려다보던 지민은 결국 도하를 안아 올렸다. 몸을 통통 튕기며 도하를 달래기 시작했다. 우리 도하 엄마랑 있고 싶어요? 지민의 물음에 무어라 옹알이를 하던 도하는 지민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우으응...으브ㅡ바바으.. 얼굴을 묻은 채 끊임없이 옹알이를 하는 도하가 귀여워 지민은 결국 푸핫 웃음을 터뜨렸다. 태형은 그런 둘의 모습을 멀찍이 바라보기만 하다 문득 든 생각에 다급히 폰을 찾았다. 빨리빨리 폰 폰 박지민 알아차리기 전에. 태형은 속으로 빨리빨리 외치며 소파를 더듬어 폰을 찾아냈다. 지민이 도하를 어르는데 신경이 팔렸을 때 재빨리 카메라 어플를을 켜서 셔터를 마구 눌렀다. 소리가 나지 않는 카메라였기 때문에 지민한테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지민은 사진 찍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태형의 갤러리에는 몰래 찍은 지민과 도하의 사진이 수백 장 있었다. 지민한테 들키면 최소 전체삭제다.

 

아 맞아, 도하 서는 연습 시켜야해. 지민은 문득 든 생각에 도하를 소파에 살짝 내려놓았다. 으이잉!! 도하가 지민의 품에서 떨어지자마자 바로 울망이는 통에 지민은 재빨리 가방을 벗고 다시 안아주어야 했다. 아싸. 태형은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지민은 어느새 독서실로 가야 한다는 것을 까맣게 잊은 듯 했다. 이렇게 시간을 벌다가 시간이 늦어버려 또 지민이 여기서 자는 것이 태형의 최종 목표였다.

 

 

자 우리 도하, 우리 서볼까요?

 

마마?

 

, 엄마 여기 있어요.

 

 

지민은 도하를 안아 거실 바닥에 앉혔다. 도하는 손가락을 입에 넣은 채 지민을 올려다봤다. 동글동글한 도하의 뒤태에 태형은 심장을 부여잡았다. 아 미친 귀염사가 이런 건가. 태형은 다시 폰을 잡아들었다. 왠지 인생샷이 찍힐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민이 도하의 허리를 잡고 도하를 일으켜 세웠다. 도하는 여전히 손가락을 입에 넣고 쭉쭉 빨며 지민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지민은 도하를 보며 살짝 웃어 보인 후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천천히 손을 놓았다. 손을 떼기가 무섭게 쿵 하고 엉덩방아를 찧은 도하에 지민과 태형이 동시에 헉 소리를 냈다. 태형은 아예 반쯤 일어났다. 다행히 도하는 평온한 표정으로 지민만 멀뚱히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지민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입 안에 거의 반쯤 들어간 도하의 손을 빼냈다. , 손수건 좀 가져다 줘. 지민의 부탁에 태형은 손수건을 던졌다. 지민은 도하의 손을 꼼꼼하게 닦은 후 고개를 숙여 도하와 시선을 맞추었다. 아직 도하는 설 준비가 안됐나 봐요, 그쵸? 지민의 말에 도하는 머리를 갸웃 했다. 알아듣고서 그러는지 그냥 고개를 갸웃하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지민은 알아들었다 생각하고 살살 도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도하는 기어가 지민의 품에 파고들었다. 지민이 자연스레 도하를 안았다. 도하는 누가 안아주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때 되면 알아서 걷겠지.

 

...

 

도하 엄청 똑똑하니까 진짜 알아서 잘할 거야.

 

그래.

 

 

어딘가 시원찮은 지민의 대답에 태형은 작게 콧바람을 내쉬었다. 아들, 여기로 와봐. 태형은 옆에 있는 딸랑이를 흔들었다. 소리는 기가 막히게 듣는 도하는 고개를 팍 들어 태형이 흔들고 있는 딸랑이 쪽으로 다다다 기어갔다. 아빠랑 놀자? 태형의 말에 엉덩이 깔고 앉은 도하가 꺄륵 웃으며 박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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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하 10개월

태형과 지민은 19

어느 2월달에

 

 

 

 

 

 

 

 

 


뷔민 말도 안되는 육아물 썰4

길/육아물



마마! 마마!

도하의 다급한 목소리에 이불 속에 파묻혀 있던 지민이 이불을 확 젖히며 벌떡 일어났다. 왜 우리 도하! 뭔 일 있어?!

도하는 침대 위로 영차영차 올라와 지민에게 폭 안겼다. 마마 빠리 이러나라고 파파가 깨우래써. 제 가슴팍에 머리를 부빗거리며 하는 말에 지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도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도하한테 무슨 큰일이라도 난 줄 알았잖아요. 지민은 도하의 등을 토닥이며 중얼거렸다. 금방 일어나 목이 잠겨 있었다.


참 나 내가 일어나라고 할 때는 꿈쩍도 안했으면서 아들이 부르면 바로 일어나는 거 봐.


태형이 어느새 방에 와 문가에 기대어 팔짱을 낀 채 투덜댔다. 지민은 그런 태형을 보고 헤 웃어보였다. 머리 정리하고 눈곱이나 떼라. 태형의 말에 지민은 머쓱해져 손으로 머리를 눌렀다. 금방 일어나서 못생기긴 했지...? 지민의 말에 태형은 팔짱을 풀며 지민에게 다가갔다. 태형이 손을 뻗어 지민의 머리를 꾹 눌렀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누가 못생겼대.


너 빨리 준비나 해, 출근 늦겠다.

?...헐 지금 몇 시야.

7시 반.

아 왜 지금 깨워줘!!!


지민은 빽 소리를 지으며 도하를 안아 태형에게 넘기고 후다닥 화장실로 들어갔다. 마마 오늘도 하꾜가? 도하가 고개를 뒤로 젖혀 태형을 올려다봤다. , 너희 엄마 오늘도 학교 가.










태형아!

현관에서 신발까지 다 신은 지민이 태형을 부르자 방에서 태형이 나왔다. 태형의 뒤로 도하가 다다다 달려와 지민에게 폴짝 안겼다. 아구구, 우리 도하 그렇게 달려오면 엄마 힘들어요. 지민은 눈을 접어 웃으며 도하를 한번 고쳐 안았다.


마마 가지 마, 오늘 도하랑 가치 노라!

미안해요. 엄마 오늘도 가야하는데 어쩌지?

왜 마마 맨날 나가? 파파도 안 나가는데 마마는 왜 그래?

아빠는 나갈 필요가 없으니까 그러지.


도하의 물음에 태형이 뿌듯한 표정으로 옆구리에 손까지 올리며 말했다. 그의 행동에 도하의 표정이 점점 울망해졌다. 이제 파파가 나가! 마마 나랑 노라! 도하의 말에 태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야, 이제 아빠 싫다는 거야? 일로 와, 김도하. 엄마 귀찮게 하지 마.

시러! 파파랑 노는 거 시러!

쓰읍! 엄마 지금 빨리 가야하니까 빨리 아빠한테 와.


으으응... 도하가 작게 투정을 부리자 태형은 일부러 더욱 표정을 굳혔다. 그의 표정을 본 도하는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태형에게 손을 뻗었다. 지민은 도하를 넘겨주었다. 그럼 나 갔다 올게, 집 어지르지 말고, 밥 거르지 말고, 도하 잘 챙기고. 또 잔소리가 시작되려 하자 태형은 한 손으로 지민을 밀었다. 내가 애냐, 빨리 갔다 와 지각할라.


애도 아니면서 애 같은 짓만 골라서 하니까 그렇지!

걱정하지마쇼.


손까지 흔드는 태형이 못미더워 못마땅하게 쳐다보던 지민은 시간에 쫓겨 결국 집을 나섰다. 잘 갔다 와. 문이 닫힐 때까지 손을 흔들던 태형은 문이 찰칵 닫히는 소리가 나자마자 도하를 안은 채 후다닥 집 안으로 들어왔다. 아들, 오늘 우리의 임무를 잊진 않았겠지? 비장한 표정으로 비장한 목소리를 내며 말하는 제 아빠에, 도하도 나름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올해 4학년인 지민은 교생실습을 피할 수 없었다. 매번 자신이 대학생활을 하려고 할 때마다 온갖 방해에 투정까지 부리던 태형은, 교생실습 간다고 하니 그 투정이 절정에 달했었다. 결과적으로 또 한 번 태형이 한걸음 물러났지만.

여하튼 지민은 교생실습 일주일 차였다. 첫날에는 가지 말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태형을 말리느라 아침부터 진을 다 뺐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많이 나아진 것이다. 집을 나서는데 10분도 안 걸렸으니. 지민이 교생실습을 하는 학교는 그가 다니던 고등학교였다. 거의 5년 만에 다시 온 모교는 익숙한 듯 낯설었었다. 5년 새에 군데군데 많이 바뀐 탓이었다워낙 낯도 많이 가리는 편인 지민이라 첫날에는 너무 힘들었다. 교생에 대한 학생들의 끊임없는 관심 덕에 제가 고등학생 때는 몰랐던 교탁 앞의 그 부담감을 뼈저리게 느꼈다. 문득 얼굴도, 이름도 기억 안 나는 그 때의 교생 선생님이 생각났다. 교생 쌤, 쌤도 그때 이런 기분이었나요. 고등학생들은 항상 짓궂다. 특히 교생 앞에서는 더 하다. 세월이 다름에도 고등학교 시절, 생각 하는 것이나 행동들은 다 똑같다. 몇 년 전 저 자리에 앉아 공부하던 자신이 어느새 이 자리에 서서 학생들을 보고 있다는 사실에 꽤나 가슴 벅차 올랐었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지 한 사흘 즈음 되었을 때, 너는 마치 학생들을 다루는 게 유치원생들 다루는 것 같다는 말을 들은 지민은 속으로 뜨끔했다. 집에 아이가 있어서 그런가, 워낙 다정하고 조곤조곤하게 말하는 편인 지민이 아이까지 있다 보니 말 한마디도 영향이 갔을 게 분명하다. 하하하, 그런가요 원래 이렇게 말했었는데. 지민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하자 선생님도 호탕하게 웃으며 지민의 어깨를 쳤다. 하긴, 너도 그 나이 또래 답지 않은 구석이 있긴 했지.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먼저 걸음을 하신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며 지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해보면 애가 있다는 게 죄도 아니고, 그렇다고 들킬 일도 없는데 괜히 도둑도 아니면서 제 발 저리는 기분이다.

 

선생님을 하다보면 곤란한 일이 학생들이 놀자고 하는 것이었고, 학생들이 연애 이야기를 해달라는 것과, 선생님에 대한 질문이 있을 때였다. 특히 지민은 자신에 대한 궁금증이 있을 때 제일 긴장했다. 애들이 집요할 정도로 자신에 대해 궁금한 게 많다고 다른 교생들한테 털어놓은 적도 있다. 24살인 남자 교사가 잘 없을 뿐더러 그의 외모나, 행동, 말투 등이 고등학생들을 뭇 설레게 만든다는 것은 생각도 안하는 지민이다.

 

지민이 고3 때 담임이셨던 국어 선생님은 이번에도 담임을 하셨기 때문에 자연히 그 반 아이들과 함께 있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지민은 점심시간이나 청소시간에 교실에 들르고는 했다. 그 때 되면 애들이 우르를 지민에게 모여 함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야기 주제는 대부분 지민의 연애였다.

 

 

쌤 오늘은 꼭 해주세요.

 

뭘요?

 

쌤 오늘은 꼭 첫사랑 이야기 해준다고 했잖아요.

 

아니 첫사랑은 대체 왜 궁금한 거예요.

 

궁금하니까요. 쌤 이 학교에서 제일 유명한 거 알아요? 쌤 오기 전부터 쌤들이 들어올 때마다 쌤 칭찬했었어요. 이렇게 착하고, 참하고, 공부도 잘하는 애도 없었다고.

 

다른 선생님들이 오버 하시는 거예요. 저 그냥 평범한 남학생이었는걸요.

 

에이, 말도 안돼. 선생님 엄청 인기 많았을 것 같은데. 고백 한 여자 많다던데요?

 

...

 

 

지민이 순간 당황한 모습을 본 아이들이 꺄아 소리를 질렀다. 뭐야 뭐야, 쌤 진짜 인기 많았네요, 그러면서 괜히 계속 빼고. 아니에요, 저 말고 다른 애가 진짜 인기 많았어요. 지민은 손사래를 치며 애써 해명했다.

 

 

나 때 엄청엄청 잘생긴 친구가 있어서, 그 친구가 진짜 인기 많았어요. 제가 그 애랑 자주 같이 다니니까 선생님들이 오해하신 거예요.

 

뭐야. 그런 거예요?

 

쌤이 그렇게까지 말하는 거면 그 사람은 대체 얼마나 잘생긴 거예요?

 

연예인 뺨치게 잘생겼어요. 잠깐만요 나 사진이 있을 텐데.

 

 

지민은 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아이들이 우르를 가까이 붙자, 지민이 쓰읍! 단호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찾을 때까지 보지마세요. 제 말에 앞에서 옹기종기 모여 자신을 올려다보는 학생들에, 지민은 웃음이 터졌다. 교생 쌤이 웃음을 터뜨리자, 아이들도 따라 웃었다. 쌤 웃는 거 귀여워요. 한 학생의 말에 지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랑 하나 하자면 그런 소리 많이 들어요.

 

지민이 보여준 사진에 아이들은 탄성을 질렀다. 와 대박이야. 쌤한테 이런 친구도 있어요? 진짜 어디 연예인 아니에요? 와 역시 사람은 끼리끼리 논다더니. 와 대박 무슨 아이돌 같애. 여기저기서 들리는 태형의 칭찬에 지민은 자신이 다 칭찬 받는 기분이 들어 절로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진짜 잘생겼죠? 얘가 얼마나 인기 많았는데. , 물론 지금도 인기 많았지만. 얘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막 뒤돌아보고 그런다니까.

 

이 애기는 누군데요?

 

 

한 아이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들어 지민을 쳐다봤다. 지민이 보여줬던 사진은 태형이 도하를 안은 채 같이 브이 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 조카예요. 지민의 말에 아아 아이들이 수긍을 했다. 살짝 떨렸던 지민의 목소리는 아무도 듣지 못한 듯 했다.

 

그래서 선생님 첫사랑은요? 한 아이의 갑작스런 물음에 지민은 순간 헉 소리가 나왔다. 잊은 줄 알았는데. 공부하는데 그런 집념을 보였으면 벌써 서울대 문턱은 바라봤을 것이다. 지민은 잠시 고민했다.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적당할까.

 

 

저 첫사랑 진짜 별 거 없어요.

 

, 대박 있기는 했나보네요?

그럼 쌤 나이가 있는데 물어볼 걸 물어봐라.

 

쌤은 첫 연애가 첫사랑이라는 거예요, 아니면 정말 사랑이라고 느꼈던 걸 첫사랑이라는 거예요?

 

? ... ... 글쎄요. 사랑이구나 라고 처음 그런 생각이 든 사람이랑 첫 연애를 해서.

 

오 대박 쌤 성공하셨네요. 몇 살 때 사귀셨어요?

 

...20살때요.

 

20살이 첫사랑이라고요?

 

... 그렇죠. 딱히 그런 거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어서요. 그 애가 먼저 고백해서 그냥저냥 얼떨결에 사귀었는데 지내다 보니까 점점 좋아져서... , 처음에는 내가 너무 미안하고 그래서 몇 번 거절했었는데 그 애가 괜찮다고, 그렇게라도 자기는 괜찮다고 그래서... 그래도 지금은 잘 사귀고 있어요.

 

뭐야, 쌤 지금 애인 있어요?!

 

? 그거 물어본 거 아니었어요?

 

첫사랑을 물어봤지, 첫사랑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지는 몰랐죠!

 

 

본의 아니게 학생들에게 멘붕을 선사한 지민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 미안해요 그렇게 다 이야기 할 생각은 없었는데 아무래도 첫사랑 이야기 하려면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이야기가 나와서... 안절부절 못하는 지민을 본 아이들은 결국 웃고 말았다. 쌤 좋아하는 애들 엄청 많은데 이 이야기 하면 애들 다 울고불고 난리 나겠네요. 쌤이 티도 안내시고 반지 같은 것도 없어서 당연히 없다고 생각했었어요. 한 아이의 말에 지민은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사귄지 몇 년이 됐는데 그렇다 할 반지나 목걸이 같은 커플 아이템이 하나도 없다. 지민은 자신도 모르게 제 손가락을 살짝 쓰다듬었다. 이번 기회에 하나 맞출까...

 

 

 

 

 

 

 

 

 

 

***

 

 

 

 

 

 

 

 

 

 

태형은 선글라스를 끼고 거울을 봤다. 크으, 외모 봐라 진짜 쥑인다. 턱을 쓰다듬으며 한껏 거만한 목소리로 하는 말에, 태형의 옆에 서 있던 도하도 선글라스를 낀 채 거울을 보며 태형을 따라했다. 지짜 지긴다! 태형은 큭큭 웃으며 도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김씨 부자는 외출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민이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은 5. 5시 안에 모든 준비를 끝마쳐야 했다. 태형은 마지막으로 시계를 찼다. 완벽해. 거울을 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은 태형은 도하에게도 똑같은 옷을 입혔다. 이야, 도련님은 뉘집 자식이길래 이래 멋있냐. 아빠 자식! 그래, 내 자식이지! 태형은 오버스럽게 감동 받은 표정을 지으며 도하를 껴안았다. , 이제 가볼까.

 

 

 

 

 

그들은 단연 눈에 띄었다. 웬 남정네 한명과 어린아이 한명이 똑같이 옷을 맞춰 입고 선글라스를 낀 채 거리를 활보하는데 심지어 그 남자는 눈 돌아갈 정도로 잘생겼으니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태형은 이제 그런 시선이 익숙했다. 아니, 옛날부터 그래왔던 터라 그게 당연한줄 알고 있었다. 연예인인가? 선글라스를 끼고 딱히 평범한 착장은 아니었던 터라 그렇게 생각하고 힐끔 거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태형과 도하는 지민의 대학교 근처에 있는 카페로 자연스레 들어갔다.

 

 

난 네가 올 때마다 쪽팔려서 고개를 못 들겠어.

 

 

카페 들어가자마자 들리는 말이 저거다. 태형은 선글라스를 홱 벗으며 소리쳤다. 왜왜왜! 지민이가 나 맨날 멋있다고 해주는데? 우리 아들도 얼마나 멋있어, ? 태형은 무릎을 굽혀 앉아 도하의 양 어깨에 손을 올렸다. , 봐봐 나랑 커플 옷이라고. 태형이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셔츠와 니트, 바지, 신발, 머리위에 얹어진 베레모까지 완벽하게 맞춘 그들은 누가 봐도 우리 부자예요 티를 내고 있었다. 석진은 팔짱끼던 손을 올려 눈을 가렸다. 지민이가 그 모습을 보고도 멋있다고 했다고? 우리 지민이는 맨날 우리한테 멋있다고 그래. 그 자식 분명 콩깍지 제대로 씌어서 눈이 어떻게 된 게 분명해.

 

석진의 말에 태형은 입꼬리를 축 내린 채 석진을 노려보며 일어났다. 됐고, 빨리 케이크 만드는 거나 가르쳐 줘. 석진은 카운터에 미리 준비 해 놓은 앞치마를 던졌다. 오오. 태형은 아슬아슬하게 받았다. 모자 벋고 손 걷고, 저기 가서 손 씻고 앞치마 하고 들어와. 제 할 말만 하고 먼저 주방으로 쏙 들어간 석진을 멍하니 보던 태형은, 그가 눈에 보이지 않자 도하를 내려다 봤다. 아빠가 앞치마 매줄까?

 

일주일 전부터 매일 전화로 케이크 만드는 거 가르쳐 달라고 떼쓰던 태형에, 참다못한 석진이 항복 선언을 내리고 케이크 만드는 것을 도와주기로 한 날이 오늘이었다. 앞치마를 두른 채 기대에 가득 찬 태형의 표정을 본 석진은 헛웃음만 나왔다.

 

 

, 이제 말해봐. 왜 갑자기 케이크 만드는 법 가르쳐 달라고 했는지. 우리 카페 이런 것 안하는 거 알지?

 

에이. 깐깐하게 굴지 맙시다. 쌓아 놓은 인맥 이럴 때 쓰는 거지 언제 써보겠습니까.

 

다른데 가면 케이크 직접 만들 수 있는데 많아.

 

지민이가 형 거 좋아해.

 

, .

 

아 맞다. 올해는 형 짐니한테 케이크 주지 마. 내가 줄 거니까.

 

네에 네에.

 

 

석진은 대충 대꾸하며 케이크시트를 올렸다. 오 이게 뭐야, 이런 핫케이크 만들라고 내가 여기 온 거 아닌데. 태형의 말에 석진은 그를 노려봤다. 모르면 조용히 있어, 이 사람아. 석진은 생크림과 스파츌라를 꺼냈다. , 일단 생크림을 스파츌라로 시트에 발라. 태형은 그의 말에 스파츌라를 든 채 멀뚱멀뚱 서 있었다. , 초코생크림은 없어? 초코랑 생크림이랑 반반 하고 싶은데. 석진은 이마를 짚었다. 존나 귀가 터지는 한이 있어도 이 애의 부탁을 들어주는 게 아니었다. 내가 박지민 때문에 참는다. 석진은 속으로 참을 인자를 새기며 스파츌라를 하나 더 꺼냈다.

 

 

삼쪼. 이러케 하는 거 마자요?

 

 

태형을 가르친답시고 스파츌라를 꺼내 시범을 보이던 석진은 도하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제 손에 딱 맞는 작은 스파츌라를 든 채 자신을 올려다보는 도하에, 석진은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고, 우리 도하 엄청 잘 하네, 누구 닮아서 이렇게 잘 만들어? 나 닮았지 누구를 닮아. 도하를 마구 칭찬하던 석진은 태형의 말에 그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왜 그렇게 봐요. 너는 양심을 좀 키울 필요가 있어.

 

 

도하는 무슨 케이크 만들 거야?

 

...마마는 생크림 케이크 조아 해여. 딸기 있는 거.

 

 

석진은 시트에 생크림을 덧바르는 도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우리 도하가 아빠는 닮지 말아야 할 텐데. 왜요, 내가 어때서요. 도하야 너는 무조건 엄마를 닮아야 해, 알았지? 석진의 말에 태형은 스파츌러를 휘두르며 방방 뛰었다. 아니 내가 어디가 어때서. 태형이 들이대며 끈질기게 물어와 석진은 태형을 밀어냈다. 넌 빨리 케이크 만들기나 해.

 

 

근데 너희 케이크만 만들어서 줄 거야?

 

그럴 리가 있나.

 

 

석진의 물음에 태형은 손가락을 좌우로 까딱거리며 다른 한 손으로는 주머니에서 조그만 상자를 꺼냈다. 오 뭐야 김태형 돈 좀 썼나본데? 석진이 상자를 들자 태형이 찰싹 그의 손을 때렸다. 지민이가 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못 봐요. 와 겁나 쪼잔한 거봐, 야 일단 디자인이 어떤지 다른 사람들도 좀 봐야 괜찮은지 알 거 아니야. 전 제 안목을 믿어요, 내가 골랐는데 당연히 지민이도 좋아하겠지. 난 네 안목을 못 믿겠는데. 아 형이 무슨 지민이에요?

 

 

삼쪼 나 딸기도 올리고 시퍼여.

 

 

둘의 투닥거림은 도하가 석진을 부르고 나서야 끝이 났다. 태형은 도하가 바른 케이크를 보고 탄성을 질렀다. 와 진짜 어쩌지 형, 우리 아들 진짜 이쪽으로 보내야 할까봐 진짜 이 정도면 천재 아니야? 또 시작된 제 아들 자랑에 석진은 못 말린다는 듯 고개만 저었다. 대부분의 부모가 그렇듯 태형도 제 아들 자랑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였다. 태형이나 지민은 석진의 카페에 곧 잘 오고는 했었는데 그때마다 제 아들 자랑하기 바빴다. 형형 어제 도하가 그린 그림 봐봐, 진짜 천재 아니냐? , 형도 알지 우리 도하 말 진짜 빨리 배운 거, 진짜 우리 아들 천재인가 봐. , 내가 글 가르쳐 준 적도 없었는데 스스로 책을 읽고 있더라니까? 진짜 대단하지 않아? 우리 도하는 정말 천재임이 틀림없어. 도하를 처음 만난 날부터 지금까지 도하에 관련된 그 어떤 사소한 것이라도 안들은 것이 없었다. 둘은 입만 열면 도하 칭찬이었다. 처음에는 정말 아들을 아끼는 구나 흐뭇한 형의 마음으로 바라봤지만 정말 만날 때마다 그 이야기니 석진 지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제는 도하 이야기 하려고 하면 물 흘리듯 이야기를 흘리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수준에 다다랐다.

 

 

너희 이거 몇 시까지 만들어 가야해?

 

음 일단 케이크 만들고 마트 들려서 장을 좀 보고 집에 와서 요리 좀 하고 세팅도 해야지.

 

뭐 만들 건데.

 

미역국.

 

만들 줄은 아냐?

 

당연하지. 인터넷은 괜히 있어?

 

 

석진은 절로 머리가 아파지는 기분에 이마를 짚었다. 너희 지민이한테 들키지는 않았지? 석진의 물음에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부자의 얼굴이 쌍둥이처럼 똑같았다.

 

오늘은 1013. 지민의 생일이었다.

 

 

 

 

 

 

 

 

 

 

 

 

 

 

 

 

 

 

 


뷔민 말도 안되는 육아물 썰3

길/육아물


 

 

아이의 칭얼거림에 잠귀가 밝은 지민의 눈이 번쩍 떠졌다. 어어, 그래 아가 왜 울어. 지민은 다급히 옆에 있는 아기 침대에서 아이를 안아 올리고 몸을 살짝 튕겨주면서 아이를 달래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아이가 심하게 칭얼거리는 편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민은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한 채 거의 본능적으로 아이를 달랬다. 처음 한두 번은 너무 힘들었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이런 것도 다 적응이 되더라.

 

 

아이는 잠들기 전까지 안아주어야 했다. 이 아이는 이제 사람의 품을 알아서, 자신이 잠들기 전까지 품에서 떼어내면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고 다시 칭얼거렸다. 지민은 아이를 꼭 안은 채 침대에서 자고 있는 태형을 노려봤다. 이 개새끼 내가 그럴 줄 알았어. 키우긴 뭘 키워 썅. 그렇게 김태형한테 당했으면서 나도 참 학습력 없다.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서 김태형 저 자식의 뭘 믿고 이렇게 허락 했냐고. 지민은 속으로 태형을 마구 씹으면서 지난 날의 자신을 탓했다.

 

 

갑자기 아이를 키우게 된지 이제 2개월이 다 되어 간다. 처음에는 어느 것 하나 익숙지 못해 실수하기 일쑤고, 아이도 많이 울렸지만 지금은 그래도 제법 아이 키우는 사람 느낌이 난다. 아이가 다시 색색 숨소리를 내며 자는 것을 느끼고 지민은 조심히 아이를 침대에 눕혔다. 가끔 눕히다가 다시 깨서 울먹거리는 일도 있었는데 오늘은 다행히 그러지 않는다. 지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침대에 누웠다. 으으응... 태형이 몸을 뒤척이다 자연스레 지민을 안았다. 제 품에 파고들어 머리를 부비다가 다시 잠이 드는 태형을 멀뚱히 본 지민은 태형의 볼을 한번 쿡 찔러봤다. 얘 지금 자는 척 하는 거 아니야?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에 지민은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다가 밝은 빛이 한꺼번에 들어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아 눈부셔... 지금 몇 시야... 지민은 옆 협탁을 더듬거려 간신히 폰을 잡아 홀드를 눌렀다. 1140. 헐 씨발 뭐야깜짝 놀라 이불을 젖히며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잠에 막 깨어나서 머리도 안돌아가고 상황파악이 안되어 계속 시계만 보다 옆에 보이는 일요일에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 진짜 깜짝 놀랐네다시 누워서 꼬물꼬물 이불을 코 아래까지 끌어올렸다.

 

 

으이이잉...

 

 

아이의 울먹임에 지민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 보니 옆에 태형이도 없고 아기 침대에 아이도 없었다. ... 주말에 늦잠도 못 자고 이게 뭐냐고... 지민은 투덜대며 침대를 나왔다. 예비 고3한테 주말은 황금 같은 시간이다. 특히 지민은 주말에 늦잠 자는 것을 정말 좋아했다. 그것도 2개월 전까지의 이야기였지만.

 

 

아가 울지 마... 엄마 깨우지 마요, 아가.

 

이이잉...빠바...

 

아빠가 잠귀가 어두워서 맨날 엄마가 고생한단 말이야. 이럴 때 만이라도 엄마 깨우면 안 돼. 엄마가 늦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아?

 

아브브...으브...마마...

 

그래 너희 엄마.

 

 

나가려고 문고리를 잡는 순간 들리는 대화에, 지민은 그 자세로 우뚝 멈춰 서서 조용히 둘의 대화를 듣기 시작했다. 대화라고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이지만 태형은 옹알이만 하는 아이 앞에서 계속 이야기 하는 게 웃겼다. 내가 밤에 계속 깨는 건 아냐오늘 새벽, 자신을 안은 게 잠결에 한 것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가 엄마 속 썩이면 절대 안 돼. 괜히 아빠 때문에 엄마도 고생하고 있는 거야.

 

으으응...우부브...

 

너 알겠다고 한 거다?

 

으브...

 

그래, 착하다. 우리 아가.

 

 

그게 어딜 봐서 알겠다고 한 거냐, 그냥 옹알이 한 거지. 무조건 자기식대로 해석하는 태형에, 결국 지민은 작게 웃었다. 진짜 애 하나 있어도 잘 논다. 태형의 장점이라면 장점이었다. 어느 누구와도 잘 노는 거. 아이가 태형이 친화력 좋은 거 닮았으면 좋겠네. 지민은 문득 그런 생각을 하며 방문을 열었다. 거실 바닥에 아기랑 똑같이 다리를 쭉 피고 앉아 마주보고 놀고 있던 태형은 지민을 보고 놀라 후다닥 지민에게 다가왔다. , 깼어? 살짝 당황하는 태형에, 지민은 눈썹 한쪽을 치켜 올렸다.

 

 

뭐야, 그 반응은?

 

아니... 왜 이렇게 빨리 일어났어. 조금 더 자지.

 

그냥 눈이 떠져서 일어난 거야.

 

, 그래? 아 다행이다. 난 또 내가 깨운 줄 알고.

 

으에엥!

 

 

자신을 놔두고 가버린 게 못내 서러운지 빽 소리를 지르며 다다다 기어오는 아이에 지민은 자연스레 아이를 안아 올렸다. 아이는 익숙하게 지민의 품에 안겼다. 그새를 못 참고 오는 거봐. 태형은 아이의 코를 살짝 콩 밀며 말했다.

 

 

아 그리고 엄마라고 하지 마. 진짜 나보고 엄마라고 부르잖아.

 

애 앞에서 그런 말 하지 마.

 

그러다 진짜 엄마로 굳혀지면 어떡해.

 

이미 엄마 된 것 같은데.

 

......

 

, 너한테 엄마라고 그래.

 

 

씨발. 욕지기가 나오는 걸 간신히 참은 지민은 태형을 노려보며 눈으로 욕했다. 태형이 그걸 모를 리 없는데도 모르는 척 지민의 품에서 아이를 빼 와 자신이 안았다. 아빠랑 거실에서 놀자? 아이를 통통 튕기며 거실로 향하는 태형의 뒷모습에다 대고 소리쳤다.

 

 

야 나 그냥 네가 애 키우는 거 도와주는 거야. 알지?

 

, 알겠다니까.

 

나 엄마 아니라고.

 

그건 장담 못하겠다. 애가 이미 입에 붙어서.

 

!

 

 

지민의 큰 소리에 태형은 고개만 돌려 살짝 혀를 내밀었다. 유치하게 메롱이나 하는 저 혀를 뽑아버리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누른 지민은 부엌으로 들어갔다. 점심 뭐 먹을래. 라면. 죽을래? 햄버거. 지민은 결국 쿵쿵쿵 거칠게 부엌을 나와 거실로 갔다. 꽤나 저돌적으로 다가오는 지민을 발견한 태형은 화들짝 놀라며 다급히 말했다. , 된장찌개 된장찌개. 진작 그럴 것이지. 지민은 다시 뒤돌아 부엌으로 들어갔다.

 

 

 

 

 

 

 

 

 

 

나 이제부터 고3 대비 할 거니까 주말에 나 부르지 마.

 

아 왜... 평소에도 주말 밖에 안 왔으면서... 주말에는 여기서 공부해.

 

애 있는데서 잘도 공부 하겠다.

 

나 혼자 얘 못 키워.

 

사람이라도 붙이던지.

 

아 짐나...

 

 

답지 않게 말꼬리를 늘이는 태형에, 지민은 밥만 보던 시선을 올려 태형을 봤다. 아기 이유식 용 숟가락을 든 채 섭섭한 티를 팍팍 내는 저 표정을 보니 할 말도 없어 지민은 한숨만 나왔다. 너 솔직히 그 표정 일부러 짓는 거지. 지민의 뜬금없는 물음에 태형은 고개만 갸웃했다

 

 

나 죄책감 들라고 일부러 그런 표정 짓는 거지.

 

내가 뭐 하러 그래.

 

아니야. 내가 너 그런 표정에 약한 거 알고 일부러 동정심 얻으려고 그러는 거야.

 

그렇게 느꼈으면 그런 셈 치고 이번에도 좀 넘어가주면 안되냐.

 

, 진짜...

 

...? 짐나...

 

... 너 진짜 친구 하난 잘 둔 줄 알아라.

 

오예. 빡짐 최고. 짱짱맨.

 

진짜 네 평생 이런 친구 절대 못 만난다.

 

아이고, 당연하죠 짐느님.

 

 

고개까지 굽신 거리면서 하는 말에 지민은 결국 웃을 수밖에 없었다. 꺄으! 유아용 의자에 앉아서 입만 오물거리던 아이는 지민의 웃음을 보고 따라 웃었다.

 

 

 

 

 

 

 

 

 

 

아가, 도리도리 잼잼 도리도리 잼잼.

 

꺄으! 우브브...빠빠, 빠빠!

 

우리 아가, 까꿍!

 

꺄아!

 

까꿍!

 

꺄으! 빠빠, 빠빠! 우브부브!

 

 

아까부터 묘하게 거슬리는 게 뭘까. 지민은 거실 소파에 앉아 바닥에 놀고 있는 둘을 유심히 지켜보다 문득 든 생각에 아! 소리 질렀다. , 깜짝이야. 태형이 흠칫 놀라며 지민을 올려다봤다. 태태 내가 아까부터 뭔가 거슬려서 그게 뭔가 생각해 봤는데 이제 알겠어. , 뭔데. 얘 이름이 아직 없어. 지민의 말에 태형은 고개를 돌려 아이를 봤다. 묘하게 태형을 닮은 초롱초롱한 눈이 태형만 보고 있었다. 빠빠... . 오물오물 거리던 그 쪼끄만 입에서 자신을 부르는 듯한 소리가 나오자 태형이 퍼뜩 정신이 들었다.

 

 

와 나레기 뭐했냐. 이때까지 내 새끼 이름도 안 짓고.

 

이름 빨리 지어줘야지. 계속 아가라고 부를 수는 없잖아.

 

으브?

 

, 아가 너 부른 거 아니야.

 

아바바브..으브...마마...마마..

 

 

자신을 보며 손을 잼잼 하는 아이에, 지민은 결국 소파에서 내려와 아이를 안았다. 태형은 손가락으로 턱을 받치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름에 대한 충격 때문인지 계속 무어라 중얼거리며 심각한 표정을 지우지 않았다. 김태형? 결국 지민이 그를 살짝 툭 쳤다.

 

 

김태민.

 

?

 

김태민 어때.

 

...무슨 뜻인데.

 

태형의 태에 지민의 민인데.

 

야 넌 무슨... 다른 거.

 

... 형민?

 

......

 

태지? 지태? 형민?

 

제대로 안할래.

 

나 완전 제대로 하고 있는 중인데.

 

 

왠지 머리가 아파져 지민은 이마를 짚었다. 아니 애 이름에 네 이름이랑 내 이름은 왜 섞어 강아지 이름 짓냐? 애 평생 불릴 이름이야 좀 제대로 고민해서 예쁜 이름 지어. 지민의 단호한 말에 태형은 살짝 시무룩해져서는 아이한테 묻기 시작했다. 아가, 태민이 싫어? 태지 이상해? 당연하게도 아이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제 손가락을 입 안에 넣고 쭉쭉 빨면서 그 동그란 눈으로 태형을 쳐다보기만 했다.

 

 

태형은 지민의 품 안에 기대어 안겨 있는 아이를 마주 보고 앉아 아이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지민은 오래간만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태형에, 오 소리 없이 감탄사를 날렸다. 나 결정했어. 갑자기 손가락을 튕겨 소리 내면서 하는 말에 지민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태형을 봤다.

 

 

아가 생일이 봄 아니냐.

 

... 그렇지. 45일이었나.

 

도하 어때?

 

뭔 뜻인데.

 

복숭아나무 아래서.

 

......

 

우리 아가 봄에 태어났으니까. 처음에는 우리가 처음 아가 만난 날 해서 설하 할까 하다가 태어난 때가 더 나은 것 같아서.

 

......

 

나중에 아가가 커서 내 이름은 왜 설하예요? 했을 때 응,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가 겨울이었거든 하면 이상하잖아. 애 생일은 봄인데 겨울에 만났다니.

 

......

 

...이상하냐?

 

아니. 진짜 예뻐. , 김태형 작명 솜씨는 좀 있는데?

 

 

지민은 괜히 태형의 팔뚝을 툭 주먹으로 쳤다. 이름과 뜻을 듣자마자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몽글몽글함 때문에 지민은 당황스러웠다. 도하. 김도하. 제 품에 얌전히 앉아 있는 이 아이와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려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아이에게 처음 이름을 지어주면 이런 먹먹한 느낌이 드는 건가. 지민은 천천히 손을 들어 아이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마마! 아이는 고개를 들어 꺄르르 웃었다. 지민도 그의 웃음에 따라서 피식 웃어버렸다.

 

 

도하야.

 

 

태형은 아이를 보며 나직이 불러보았다. 아이는 땅만 쳐다보며 손장난을 쳐댔다. 도하야? 김도하. 태형이 아무리 불러도 아이는 쳐다보는 척도 하지 않았다. 아가, 왜 안 봐? 태형은 살짝 시무룩해져 애원하듯 말하자 그제야 아이가 고개를 들어 태형을 봤다.

 

 

내가 보기엔 얘가 자기를 부른다는 걸 모르는 것 같은데.

 

아가라고 할 때마다 반응하지?

 

빠빠!

 

 

태형은 아이의 대답에 머리만 긁적였다. 이름 익숙해지게 엄청 불러야겠네.

 

 

 

 

 

 

 

 

 

 

 

 

 

 

 

 

 

 

 

 

---

 

도하 9개월 때.

뷔민 19 

어느 1월달에

뷔민 말도 안되는 육아물 썰2-2

길/육아물


, 태형아...

 

 

, 태형아? 태형은 깜짝 놀라 말까지 더듬는 지민이 영 마음에 안 들어, 그의 눈썹 한쪽이 치켜 올라갔다. 언짢음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태형의 표정에 지민은 당황했다. 기어코 내가 여기까지 오게 만들지. 지민은 매사에 그랬다. 특히 술자리에 있어서는 그놈의 적당히를 몰랐다.

 

 

지금 몇 시야.

 

...?

 

내가 몇시까지 들어오라고 했어.

 

, 그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겠지. 태형이 기어코 지민을 찾으러 집을 나섰을 때는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아마 지금쯤 140분이 지났을 것이다. 우물쭈물 뭐라 말은 못하고 삐쭉 내밀고 있는 저 입술을 확 잡아 댕기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마마 왜 이러케 느께 와? 아래서 들리는 목소리에 지민과 과 사람들이 동시에 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어이구, 우리 도하도 왔어? 지민은 아래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도하를 황급히 안아 올렸다.

 

 

우리 도하, 엄마 기다렸어?

 

파파가 마마 빠리 온다구 핸는데 안와서 마마 찾으러  와써.

 

으응... 그래, 잘했어.

 

도화 내려놔봐.

 

......

 

 

지민은 말없이 도하를 내려놨다. 태형의 말투가 딱딱하고 차가운 게 어지간히도 화났다는 것을 도하도 알 정도였다. 평상시였으면 지민의 품에서 안 떨어지려고 떼를 썼을 도하지만, 그도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말없이 지민의 품에서 떨어졌다. 도하야 이모한테로 와. 지민의 선배의 부름에 도하는 쫄래쫄래 갔다.

 

 

. 태형은 한숨을 쉬며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지민은 힐끔힐끔 태형의 눈치를 봤다. 얼굴은 벌게가지고 더운지 단추도 풀어헤치고, 머리도 헝클어져 있고. 아주 잘 하는 짓이다. 태형은 제 앞에 보이는 지민의 모습에 머리로 올라오던 열이 한 번에 터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는 테이블을 쭉 둘러봤다. 신입생들인지 모르는 얼굴이 많이 보였다. 아 썅, 여자들은 또 왜 이렇게 많이 들어온 건데. 태형은 오늘 처음 본 신입생들을 한명한명 노려봤다. 다행인지 뭔지 그들은 선배의 무릎에 얌전히 앉아 있는 도하에게 시선이 집중 되어 태형이 보이지 않았다. , 그렇게 보지 마. 지민은 태형의 앞에 서서 그의 시선을 막았다. . 태형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만 나왔다.

 

 

뭐야, . 지금 쟤네 감싸는거냐?

 

, 아니... 그게 아니라... 초면에 그렇게 보면 실례니까...

 

 

태형은 지금 이 모든 상황이 마음에 안 들었다. 지민이 여자들이 득실대는 곳에서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마시며 하하 호호 즐기고 있었던 것. 그러게 내가 국어 교육과는 안 된다고 했는데! 태형은 답답함에 가슴을 퍽퍽 쳤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지민은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하나도 모르겠지. 사실 마음 같아서는 대학도 안보내고 싶었다. 대학교가 어떤 곳인지 인터넷과 여러 소문들을 통해서 익히 들었었다. 대학교에서 어떤 유형으로든 이성과 접촉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별 희한한 소문 다 돌더만. 태형은 그런 소문들과 지민이 엮이는 것이 너무 싫었다. 더 끔찍했던 것은 지민이 이성에게 인기가 많은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붙어 다니면서 딱히 남을 경계 한 적은 없었는데 20년 인생 처음으로 경계를 느낀 순간이었다. 지민이 책 가져다주러 학교 갔다가 내 지민이 우리 지민이가 된 순간을 목격한 태형은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뼈저리게 느꼈다. 그 이후로 태형은 지민에게 유난히 집요해졌다. 지민아 넌 내거지? 다른 사람한테도 말해, 저는 태형이거예요 하고. 솔직히 너는 애도 있으면서, ?! 지민은 얘가 갑자기 왜 이러나 싶다가도 어차피 뜬금없는 짓을 하는 애니까 하고 가볍게 넘겼었다. 태형이 무슨 생각을 하고 그런 말을 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아마 지금도 모를 거다.

 

 

태형아, 너도 온 김에 술 한 잔 하고 가지?

 

 

갑작스런 과대의 말에 지민이 놀라며 과대를 돌아봤다. 얼굴근육으로만 눈치를 주며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보냈건만, 과대는 그런 지민이 보이지도 않는지 손까지 흔들며 태형을 불렀다. 태형은 잠시 생각하다가 과대의 옆으로 갔다. 아이고. 지민은 이마를 짚었다. 김태형 진짜 화난 것 같던데 괜찮나... 지민은 그를 슬쩍 봤다. 태형이 앉자, 주위에 있던 신입생들이 힐끗힐끗 태형을 쳐다보며 얼굴을 붉혔다. 지민은 그런 여자들의 반응이 익숙했다. 김태형이 그냥 잘생겨야 말이지. 지민은 제 자리로 돌아가 앉으려 했다.

 

 

박지민 어디가?

 

? 내 자리...

 

여기 와.

 

아니 여기가 내,

 

여기.

 

......

 

.

 

 

뚝뚝 끊기는 태형의 말에 결국 지민은 아무 말 않고 태형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 때문에 태형이 앉은 줄은 한 칸씩 땡겨야 했다. 미안해... 지민이 신입생한테 사과하자 그들은 두 손을 마구 저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선배. 그러면서 그들의 시선은 여전히 태형에게 향했다

 

 

난데없이 들어온 태형에 신입생들은 혼란 그 자체였다. 처음 보는 분이니 같은 과는 아닌 듯 하고 뭔지는 몰라도 겁나 잘생겼다. 아까 연예인 후려친다는 그 사람일게 분명하고, 그러면 지민 선배와 무언가 연관이 있는 사람인데. 심지어 아이도 데리고 왔다. 다른 선배들이 자연스레 태형의 술을 따르고 말을 거는 것을 보니 친한 사이인 듯 했다. 같이 온 아이와 태형과 지민은 무슨 관계인지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그래도 초면에 말하기 조심스러운 주제이기는 했다. , 일단 가볍게 한잔 받으시고. 태형은 옆에서 한가득 따른 소주를 한 번에 쭉 들이켰다. 무리하지 마. 옆에서 지민이 작게 소근 거렸다. ,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해. 태형은 피식 웃었다. 그의 웃음에 주위에 있던 신입생들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참 내 잘생긴 건 알아가지고. 용케 신입생들이 얼굴을 본 지민이 작게 속삭이듯 혼잣말 했다.

 

 

요즘도 아무것도 안하고 도하만 돌봐?

 

 

도하 얘기에 지민은 테이블 끝에 얌전히 앉아 안주만 먹고 있는 도하를 봤다. 다행히 다른 선배가 도하를 잘 챙겨주고 있었다. , 저마저 나가면 도하가 혼자니까요, 지민이는 안되고. 태형은 대답을 하며 지민을 슥 봤다. 지민은 애써 태형의 시선을 피했다. 태형이 테이블 아래로 손을 뻗어 지민의 손을 잡았다. 지민은 흠칫 놀랐지만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지민이가 하도 밖을 싸돌아다니니까 저라도 곁에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태형은 덧붙여 말하며 손에 힘을 쥐었다. 갑자기 들어간 힘에 제 손이 눌려 지민은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졌다가 금방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손을 빼고 싶었지만 제보다 한마디는 더 큰 태형의 손에 힘도 못 낸다. 지민은 답답함에 앞에 있는 맥주잔을 들었다가 습 하며 자신을 보는 태형의 단호한 시선에 천천히 잔을 내려놓았다.

 

 

이중에 지민에게 연락을 오질나게 해오는 애들이 있단 말이지... 태형은 개강 전부터 갑자기 미친 듯이 오는 카톡을 생각하며 신입생들을 쭉 봤다. 지민은 그저 처음 대학에 들어오는 애들이고 뭘 몰라서 내 도움이 필요해서 그렇다, 라고 말했지만 태형은 그게 다 여자들의 개수작이라고 생각했다. 뭘 모르긴 뭘 몰라 씨발, 이 카톡 봐 이거이거 누가 봐도 아 나 너랑 썸 타고 싶다 하네. 태형은 차마 지민에게 대놓고 얘기할 수는 없어, 얼굴이나 보고 현실을 일깨워 주리라 다짐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만나게 되었지만.

 

 

저런 애들이 지민이를 넘봐? 태형은 지민에게 왔던 카톡 내용을 상기하며 입 안을 질겅질겅 씹었다. 지민이 아까부터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무언가 눈치를 주는 것도 짜증나고, 지민을 보는 눈이 무언가 요상한 저 신입생들도 짜증난다. 태형은 지금 당장이라도 한 손은 지민이, 한 손은 도하를 잡고 이 식당을 뛰쳐나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애초에 그럴 계획이었다. 도하를 데려가면 그래도 지민이 빨리 보내주겠지 싶었는데 잘못 생각했다. 그들은 도하를 정말로 좋아했다.

 

 

저기...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김태형입니다.

 

 

태형은 제 맞은편에 앉아있는 여자의 물음에 답했다. 그녀의 물음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태형에 대한 질문에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하 씨, 존나 집에 가고 싶다. 이런 자리를 즐기지도 않고 즐길 줄도 모르는 태형은 그저 지민의 손만 꼭 붙잡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 과세요?

 

저 이 학교 안다니는데요.

 

, 그럼 혹시 어디...

 

그냥 학교 안다녀요. 대학 다닐 생각 없어요.

 

......

 

 

어딘가 탁탁 쳐내는 듯한 대답에 그들은 더 물어보고 싶어도 계속 물어보기 힘들었다. 너무 그렇게 하지 마... 지민이 태형을 끌어당겨 귓속말로 속삭였다. . 태형의 차가운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아직 뭐 모르는 애들인데 네가 너무 그렇게 하면 무서워하잖아... 지민의 말에 또 헛웃음이 나왔다. 얘 지금 누가 누구를 감싸주는 거냐. 열불이 난다.

 

 

어차피 김태형은 지금도 돈 벌고 있어서 대학 다닐 필요 없어.

 

 

과대가 김태형의 등을 호탕하게 치며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 ... 태형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과대를 만류했지만 술도 들어갔겠다, 기분이 한창 업 되어 그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 듯 했다. 얘가, 자기 명의 건물이랑 땅이 엄청 많아서 거기서 들어오는 돈으로 먹고 살아도 남는 애야. 그 말에 신입생들은 놀라 태형을 다 쳐다봤다. 아 저 형 진짜 입을 막아버리던가 해야지... 지민은 몰래 과대를 노려봤다. 왜 관계없는 태형이가 이 자리에 앉아서 다 까발려져야 하냐고... 지민도 이 자리가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제 과 특성상 여자가 많기는 했다. 이런데 태형이가 오면 당연히 태형한테 반하는 여자가 한 둘이 아니겠지. 작년에도 태형이 제 학교에 왔다가 번호 따려는 여자가 자신이 본 것만 네다섯은 되었다. 작년 일이 생각나면서 그때의 여자들과 지금 후배들의 얼굴이 겹쳐지면서 후배들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저 봐, 저 봐 저 눈들 아주 김태형 뚫어지겠네 아주. 아니 김태형이 돈 많다는데 왜 지들이 더 좋아하냐고. 아니 왜 얼굴을 붉혀? 왜 태형이 보면서 얼굴을 붉히냐고! 술 때문인지 자꾸만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했다.

 

 

저 아이는 누구예요?

 

 

다른 여자가 물어봤다. 그 자리에 있던 신입생들은 한 마음으로 그 애한테 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제일 궁금한 것이었다. 저 아이는 누구인가. 정말 지민 선배의 아이인가. 아이와 지민 선배와, 갑자기 나타나 이 잘생긴 남자와는 어떤 관계인가.

 

 

우리 아들인데요.

 

, 내 말 못 믿어? 아까부터 지민이 애라고 했잖아.

 

 

태형과 과대의 말에 신입생들은 정말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지민을 봤다. 지민은 그들의 시선을 다 받으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진짜 지민 선배 애라고요? 직접적인 물음에 지민은 어떻게 말해야하나 머리만 긁적였다.

 

 

지민이 애가 아니라 우리 애라고요. 김도하!

 

?

 

너 누구 아들이야?

 

 

갑작스런 부름에 화채 안의 과일만 먹던 도하가 고개를 들었다. 태형의 갑작스런 물음에 도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마 파파 아들. 그래도 착실히 대답하는 도하에 태형은 금세 표정을 풀고 헤실헤실 웃었다. 우리 도하는 뭘 해도 저렇게 예쁘냐. 태형의 혼잣말을 들은 과대는 소름이라며 팔뚝을 쓸었다. 저 아들바보 새끼, 언제 들어도 적응이 안 된다니까.

 

 

엄마 아빠 이름이 뭐야.

 

, 그만하고 그냥 앉아.

 

 

지민은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기까지 한 태형의 코트를 잡아당기며 앉히려 했다. 아 좀 가만히 있어봐, 쟤네들이 내 말 안 믿잖아. 아니 그럼 안 믿는 게 당연하지! 도하야, 엄마 아빠 이름 뭐라고? 태형은 지민의 말을 무시하며 다시 도하에게 말을 걸었다. 도하는 과일을 입에 집어넣으면서 태연히 말했다. 마마 파파 이름? 으응...태혀이...찌미니!

 

 

기어코 도하의 입에서 나온 둘의 이름에 지민은 결국 이마를 짚었다. 태형은 뿌듯한 표정으로 신입생들을 쭉 둘러보았다. 봤지? 봤지? 저게 우리 아들이라고.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에 그들은 뭐라 할 말을 잃었다. 그토록 아니길 바랐던 사실을 이렇게 확인사살까지 당하고 나니  머릿속이 허얘졌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민은 태형이 흡족한 얼굴을 하며 자리에 앉자마자 그의 등을 퍽퍽 때렸다. 어이고, 이 진상아 결국 그걸 그렇게 말해야겠냐. , 아오! 아프다고 진짜

 

 

말하면 좀 복잡한데... 어쨌든 지금 우리 둘이 도하 키우고 있기는 하니까...

 

, ...

 

 

지민의 말에 떨떠름한 대답이 돌아왔다. 지민은 거의 해탈의 경지였다. 도하는 항상 자신보고 마마라고 불렀으며 태형은 항상 지민과의 아들이라고 소개했다. 두 부자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수습하는 것은 오로지 지민의 몫이었다. .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올해도 뭔가 조용히 지내기는 힘들 것 같다.

 

 

지민아, 도하 자꾸 조는데 슬슬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선배의 말에 지민은 도하를 봤다. 꾸벅꾸벅 자꾸 고개가 앞으로 넘어가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졸리는가 보다. 죄송해요 누나, 도하 저 주세요. 지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가 어지러움에 살짝 휘청거렸다. 태형이 놀라 얼른 지민을 부축했다. 넌 그냥 집에 갈 준비 하고 있어, 도하는 내가 안을게. 태형의 말에 지민은 고개만 끄덕이고 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형, 도하 때문에 저희는 그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아이 때문에 가봐야 한다는데 더 이상 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선배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놀다가 조심히 집들 들어가. 지민은 신입생들한테도 잊지 않고 인사를 한 뒤, 이미 잠에 들어버린 도하를 안고 나가는 태형의 뒤를 따랐다. 신입생들 눈에는 아쉬움이 잔뜩 끼어 있었다. 제일 마지막에 집에 데려다 주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건 뭐, 예상치 못한 일을 직격으로 맞아 아직도 정신이 없었다. 지민과 태형이 식당을 나가자마자 선배들에게 질문이 쏟아졌다. 진짜 뭐예요? 진짜 지민 선배와 저 사람 아이라고요? 그게 가능해요? 21살에 4살이면 18살 때 애가 생긴 거잖아요. 두 분이서 애를 키우는 거예요? 둘이 결혼 했어요?

 

 

마구 쏟아지는 질문에 그들이 대답할 수 있는 것들은 하나도 없었다. 작년부터 봐 왔지만 그들도 아직 저 세 명의 관계를 다 알지 못했다.

 

 

 

 

 

 

 

 

 

 

 

 

 

 

 

 

 

 

 

 

 

 

뷔민 말도 안되는 육아물 썰2-1

길/육아물

○○대학교 국어교육학과 새내기로 들어온 나는 처음 보자마자 반한 선배가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자꾸 눈이 갔는데 역시 사람 보는 눈은 다 똑같은지, 그 선배는 동기나 선배들한테 귀여움을 많이 받는 듯 했다. 게다가 같은 신입생 동기들도 심심치 않게 그 선배 이야기를 했다. 그 선배 좀 괜찮지 않아? 나 처음에 나랑 동갑인줄 알았잖아. 약간 귀엽게 생겨서 그런지 좀 어려 보이긴 해. 다른 선배들 말로는 그 선배 진짜 착하대. 적당히 매너도 있고, 말도 예쁘게 하고, 다들 그 선배 아껴주는 그런 분위기 같더라.

 

 

그런 말을 들으면서 속이 좀 쓰리긴 했지만 괜찮았다. 이 학교 들어오기 위해서 3년 동안 사람의 꼴을 버리고 악착같이 공부해서 붙은 학교였다. 그 동안 신경 쓰지 못했던 몸매, 피부 관리 다 받고 화장이나 패션 공부 하면서 캠퍼스의 로망을 착실히 쌓아왔다. 캠퍼스 로망의 첫 번째는 CC 아니던가. 모두가 CC는 할 짓이 안 된다고 다 만류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남친과 함께 벚꽃 나리는 길을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그런 데이트만을 꿈꿔왔다. 그리고 개강 하자마자 본 것이다. 제 로망이 되어줄 그런 남자를. 물론 그 남자는 경쟁률이 좀 치열하긴 했지만.

 

 

신입생 여자들의 대부분이 자신을 눈독 들이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선배는 헤헤 웃으면서 여기저기 인사 하러 다니기 바빴다. 보면서 참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구나 하는 게 느껴질 정도로 그는 웃음이 사랑스러웠고, 하는 말들이 예뻤으며, 하는 행동이 다정하기 그지없었다. 여자들이 안 넘어 갈 수가 없었다. 내 첫 남자친구는 무조건 저 선배로 하리. 이때까지 살면서 이렇게 설렐 만큼 제 이상형에 부합하는 남자를 만난 적이 없었다. 이상형은 이상형일 뿐 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정말 딱 이상형 그대로가 눈앞에 나타나니 어찌할 줄 모르겠다. 이건 무조건 잡으라는 신의 계시임이 틀림없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개강총회 날, 모두들 그것에는 관심 없고 뒤풀이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총회의 막바지, 나는 제 옆에 있는 선배에게 용기를 내어 물어봤다. 선배, 혹시 뒤풀이 가세요? 나의 물음에 선배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뒤풀이 가려고 온 건데. 그의 대답에 뒤에 있던 다른 선배가 그를 덮치듯 몸을 눌러 안았다. 뭐야, 빡짐 진짜 가? 아아! 놀랐잖아! 선배가 그 선배의 몸을 확 밀쳤다.

 

 

그럼 진짜로 가지 가짜로 가냐.

 

너 허락 맡아야 하는 거 아니야?

허락 맡았어.

 

제대로 허락 맡았지?

 

어어.

 

대답이 어째 시원찮다?

 

아 괜찮다니까.

 

 

얘네 집이 오죽 엄해야 말이지. 의아한 내 표정을 봤는지 다른 선배가 말했다. 아아 집이 엄하시군요. 엄하긴 무슨, 그냥 심술인거지.  말에 그는 투덜댔다. 그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가늠이 안 돼 궁금하긴 했지만굳이 깊게 파고들지는 않았다.

 

 

 

 

 

 

 

 

 

***

 

 

 

 

 

 

 

 

 

 

아 맞다, 지민아. 너 애는 잘 있어?

 

 

갑작스런 과대의 물음에 나도 모르게 마시고 있던 물을 뿜을 뻔 했다. 선배는 갑자기 나온 제 이야기에 마시던 술을 풉 뿜어버렸다에이씨, 드럽게! 맞은편에 있던 선배 동기가 소스라치게 몸을 떨며 뒤로 물러났다. 컥컥 사레까지 들려 꼴사납게 기침도 심하게 한 선배는 입가를 닦으며 말을 꺼낸 과대를 바라봤다.

 

 

, 무슨 소리예요 선배

 

아니. 그때 학교 왔었잖아.

 

, 맞아 맞아. 나도 이제 생각났네. 그 애기 엄청 귀여웠는데.

 

그때 과방 완전 뒤집어졌었지.

 

맞아 맞아!

 

 

그때 당시의 일을 알고 있던 선배들은 왁자지껄 웃으며 아주 뒤로 넘어갔다. 아니에요, 그런 거! 지민선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사래를 쳤지만 상황을 수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상황을 모르는 동기들은 선배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궁금한 기색을 비쳤다.  역시 궁금했다. 아니 궁금함을 넘어서 무언가 다급해졌다. 아니 세상에 이게 무슨 말이에요, 의사양반. 애라니. 내 귀가 잘못된 게 틀림없어. 제발 내 귀가 잘못됐다고 해줘. 당장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선배를 잡고 자초지종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애써 그 마음을 다잡았다. 그냥 놀리는 거겠지. 주위를 힐끔 보니 동기들도 표정관리가 안되어 기묘한 표정들이었다

 

 

애들이 이상하게 보잖아요.

 

그래, 신입생들은 모를 수도 있지.

 

작년에 그 애가 3살이었나?

 

그러면 지금은 4살이겠네.

 

 

다른 선배의 말에 절로 헉 소리가 나왔다. 아니 뭐야 진짜. 진짜야? 진짜냐고. 왠지 눈에서 열이 나기 시작한 기분이 들었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고백도 하기 전에 차인 기분인가... 다른 애들도 점점 표정들이 일그러졌다. 저 애들도 남 몰래 선배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탓인지, 아니면 저 나이에 애가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런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나보다는 멘탈 바사삭은 안됐겠지 싶다.

 

 

오늘은 빨리 안들어가도 되냐?

 

얘 애인이 조금만 늦어도 전화에 문자에 아주 난리가 나거든. 심지어 직접 데리러 온다니까.

 

 

선배들의 말에 내 멘탈은 아예 가루가 되어 바람에 휘날릴 지경이었다.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장난스럽게 말하는 것 같아 보이긴 했지만 나의 큰 멘탈 브레이킹에 그렇게 믿고 싶은 대로 보고 있는 건지 진짜 장난인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아 진짜 너희들까지 왜 그래! 선배가 안 그래도 열 올라 불그스름한 볼에 더 소리 지르니 얼굴 전체가 붉어졌다. 눈두덩이와 볼이 불그스레해져서는 왕왕 대는게 퍽 귀여워 보였던지 선배들은 마구 웃으면서 지민 선배를 끌어당겨 안고 머리를 마구 헝클였다. 상황파악 안 되는 건 우리뿐이었다.

 

 

평소에 보면 지민 선배는 꽤나 귀여움을 많이 받는 편이었다. 다른 선배들이 이런 식으로 장난도 많이 치곤했지만 기본적으로 귀염둥이라 불리며 국교 마스코트라고 소개할 정도였으니 (그 말이 나오자마자 지민 선배가 그만 하라고 빽 소리를 질렀지만) 작년에 얼마나 귀여움을 많이 받았는지 대충 상상이 갔다. 그래 그런 거겠지. 그런 식으로 지민 선배 반응이 귀여우니까 괜히 그런 거겠지. 애써 내 마음을 다잡았다. 다른 애들 표정을 보니 여전히 이해 할 수는 없지만 지민 선배를 놀리는 모습을 한두 번 본 것도 아니어서 이번에도 그런 갑다. 생각하는 듯 했다. 한 선배가 지민 선배한테 헤드락을 걸며 머리를 헝클였다. 아이고, 이 귀여운 새끼. 지민 선배는 쓰다듬을 받으며 꾹 감은 두 눈이 마치 이모티콘 같았다.

 

 

진짜 아이 있어요?

 

 

나름 그렇게 벗어난다 싶더니 어떤 넌씨눈이 또 언급을 했다. 나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그 애를 있는 힘껏 노려봤다. 그런 건 왜 물어봐 짜증나게. 술도 들어간 데다 유리멘탈이 가루가 되어 내 마음은 온전치 않았다. 정말 누가 옆에서 툭 치면 바로 욕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한 아이의 물음에 갑자기 너도 나도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진짜 애...애인이 있어요? 아이가 4살이라고요? 할 수만 있다면 지금 입 연 애들 입을 다 술로 막아버리고 싶었다.

 

 

진짜 지민이 애 있는데?

 

, ... 애들 진짜 저 이상하게 쳐다보잖아요...

 

 

동기들의 표정이 복잡 미묘해졌다. 나 역시 거울을 보면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장난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진짜 아이가 있다고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내가 한 번 더 물었다. 내 물음에 한 선배가 재밌다는 듯 마구 웃어댔다. 아니, 저런 반응 보면 장난 같잖아... 와중에 지민 선배는 아무 말 하지 않는 것도 불안했다. 지민이가 그럴 애로 보이지는 않지. 다른 선배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뗐다.

 

 

근데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야.

 

, 누나...

 

 

지민 선배가 말을 흘렸다아니 이게 뭐람. 이렇게 완벽하게 들어맞는 이상형이 정말 유부남이라고술이 많이 들어가서 단체로 헛소리 하는 거라고 믿고 싶었다.

 

 

혹시 이 중에서 지민이 눈독 들이고 있던 사람들은 그냥 속 편하게 마음 접어라. 애인도 겁나 잘생겨서 웬만하면 눈도 안돌아갈걸.

 

, 맞아 맞아. 지민이 요놈은 그런 사람을 어디서 찾았는지 진짜 연예인 후려갈기더라.

 

엄청 어렸을 때부터 친구라고 했으니까

 

 

선배들의 말에 우리들은 아예 넋을 놓을 정도였다. 이 나이에 아이가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상대는 연예인 후려갈길 정도래. 나 빼고도 지민 선배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애들이 있긴 했는지 하나같이 표정들이 말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실낱같은 희망은 잡고 있었다. 설마 아직 21살 밖에 안됐는데 진짜 4살이나 되는 아이가 있겠나. 어렸을 때부터 친구라고 하니 그냥 그렇게 부르는 친구가 있는 거겠지. 애인이야 그렇다 쳐도 애는 진짜 아니다그렇게 생각하는 게 마음 편했다. 이렇게 친해지기도 전에 희망이 꺾이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희망은 술자리가 절정을 달했을 때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술자리가 한창 점점 무르익어 가고 술게임이 한창 재밌게 진행되고 있을 때였다. 지민 선배 역시 술이 들어가, 안 그대로 홍조 때문에 붉은 볼이 터질듯 익어 있었다. 여성과 남성들이 섞여 있는 술게임은 벌칙에 스킨십이 다분하다. 지민 선배가 술게임에 져서 옆에 있던 동기와 러브샷을 해야 했다. 난 또 한 번 속에서 욕이 나왔다. 나레기 뭐가 부끄럽다고 지민 선배 옆에 안 앉았냐고. 시간을 돌릴 수 있으면 몇 시간 전으로 돌려 지민 선배 옆을 피하려는 나를 매우 칠 것이다.

 

 

지민 선배와 동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지민이 남자다잉! 한 번에 확, 알지? 1단계도제대로 못하면 바로 단계 올려버린다! 모두 술에 취해 있어서 다들 기분이 한 단계 업 되어 있었다. 지민 선배가 약간 부끄러워하면서 동기를 안으려고 손을 드는 순간, 누가 지민 선배의 뒤에서 손목을 턱 잡고 끌어당겼다. 지민 선배는 그대로 살짝 넘어가 그 사람의 가슴팍에 뒤통수와 등이 닿았다. 테이블에 앉아 있던 선배들의 얼굴이 묘하게 굳어졌다. 뭐야. 지민 선배는 짜증스레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얼굴에 헉하며 화들짝 놀라 몸을 바로 떼었다.

 

 

, 태형아...

 

 

 

 

 

 

 

 

 

 

 

 

 

 

 

 

 

 

뷔민 말도 안되는 육아물 썰

길/육아물

띡띡띡띡-

 

 

흐릿하게 들리는 도어락 소리에 소파와 물아일체 되어 티비 채널만 돌리고 있던 태형이 벌떡 자리에 일어났다. 어마! 아이가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달려갔다미친 왜 벌써 와! 태형은 속으로 절규를 하며 거실에 널브러져 있던 장난감을 싹 쓸어 후다닥 방에 다 던져 넣었다. 문을 쾅 닫고 기대는 순간, 아이를 안은 채 들어오는 지민과 눈이 마주쳤다. 와 씨, 타이밍 개지린다. 태형은 속으로 안도했다.

 

 

뭐야, 멍청하게 왜 거기 서 있어.

 

, ? , 그냥 네 마중...

 

...웃기고 있네.

 

 

지민은 아이를 생각하며 목구멍까지 턱 올라온 욕을 애써 집어삼키며 거실로 갔다. 태형은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산발이 된 머리를 긁적이며 지민의 뒤를 따랐다. 으쌰, 우리 도하. 안본 새 또 키가 컸네요? 지민은 도하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이고아이고. 앓는 소리는 덤이었다. 걔 요즘 돼지야, 막 안아주고 그러면 너 허리 다친다. 태형의 말에 지민이 태형을 노려봤다. 애한테 돼지가 뭐냐, 진짜.

 

 

도하 대지 아니야!

 

그래 우리 도하 돼지 아니야. 누가 돼지라고 그랬어.

 

파파가 계속 대지라고 그래써. 파파가 대지야!

 

참 나, 야 내가 어딜 봐서 돼지냐? 그리고 너 어제까지 놀아준 사람이 누구야? 엄마 왔다고 바로 엄마한테 달려가는 거 봐.

 

파파 시러! 마마랑만 놀꺼야!

 

어쩌냐, 네 엄마 내건데.

 

김태형! 유치하게 계속 그럴래!

 

 

태형은 결국 지민의 타박을 듣고 나서야 입을 다물었다. 입술이 삐죽 튀어나와 툴툴대며 밉지 않게 노려보는 태형에, 지민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니, 4살짜리랑 싸우는 게 말이 되냐고.

 

 

지민은 쭉 집을 둘러보았다. 개강을 하고 요 일주일간은 너무 바빠 집에 오지 못했던 탓에 일주일간 꼬박 태형에게 집안일을 맡겼어야 했는데, 어찌나 걱정스럽던지 지민은 짬이 나자마자 바로 달려온 것이었다. 겉보기에는 나름 어지르지 않고 깔끔하게 지낸 것 같다. ~김태형~ 지민은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태형을 바라봤다. 태형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눈썹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내가 한다면 좀 하지. 허세가 잔뜩 들어간 태형의 말에 지민이 푸핫 웃었다.

 

 

점심이나 먹자, 오랜만에 너 좋아하는 거 해줄게.

 

잠깐, 거긴 열지!

 

......

 

......

 

 

방문을 연 지민의 너머로 처참한 방안 꼴이 보였다. 아하하하 도하야 아빠랑 놀까? 태형은 지민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도하의 가까이로 다가갔다. 내 무무! 도하는 그런 태형이 보이지도 않는지 방 안에 보이는 제 인형한테 달려갔다. 도하한테 살짝 밀쳐지면서도 움직임 없이 굳어 있던 지민이 딱딱한 움직임으로 천천히 태형을 돌아봤다.

 

 

이 미친 새끼야!!!!

 

 

 

 

 

 

 

 

 

 

태형은 지민이 점심을 만들고 있는 동안 꼼짝없이 방 안에 박혀 청소해야 했다. 김도하, 여기 와서 아빠 좀 도와줘. 태형의 말에 거실에 앉아 놀고 있던 도하가 벌떡 일어나 태형에게 다가갔다.

 

 

도하 물건은 도하 방에 갖다놔.

 

도하 거업써.

 

이거, 이거, 이건 뭐야. 이거 아빠거야? 이거 도하 거잖아.

 

그거 어제 파파가 가지고 놀아써.

 

 

태형은 뭐라 항변 하고 싶었으나, 입만 뻐끔대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 어제는 아빠가 가지고 놀기는 했는데 그래도 원래 도하 방에 있던 거니까 도하가 갖다놓자? 간신히 나온 말에 도하는 음...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이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도 우리 아들 아직 착하네. 태형은 자신의 물건을 주섬주섬 챙기는 도하의 뒤통수를 살살 쓰다듬었다.

 

 

너는 나이가 몇 갠데 아직도 도하 장난감 가지고 노냐?

 

끄아악!! , 깜짝이야!

 

 

갑자기 위에서 들리는 말에 태형은 까무라치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 진짜 깜짝 놀랐잖아! 태형은 뒤로 돌아보며 지민에게 빽 소리를 질렀다. . 지민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만 나왔다.

 

 

아니 그래, 김태형씨. 21살이나 먹어놓고서 도하 장난감은 왜 가지고 노시냐고요.

 

아 요즘 장난감이 겁나 고퀄리티로 나오더라. 한번 시험 삼아? 애가 가지고 놀아도 되는가 시험 해본거야...

 

 

참 핑계도 그럴듯하다 생각하며 지민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어차피 그런 핑계 믿어줄 거라 생각도 안한 태형은 쩝 입맛만 다셨다. 밥 다됐으니까 먹으러 와. 지민의 말에 태형은 벌떡 자리에 일어났다.

 

 

 

 

 

 

 

 

 

 

***

 

 

 

 

 

 

 

 

 

 

장 보러 갈래? 지민의 말에 티비만 보고 있던 태형이 고개를 돌려 지민을 바라봤다. 나 없을 때 장 보러 가기는 했냐? 뭔 냉장고가 새로 산 것 마냥 텅텅 비었어. 지민의 걱정 어린 타박에 태형은 볼만 긁적였다. 도하를 데리고 도저히 장 보러 갈 엄두가 안 나서. 태형의 말에 지민은 입을 다물었다. 안 그래도 고집이 좀 있는 것 같은 도하는 요즘 들어 고집이 더 심해지고 있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꼭 얻어야 했다. 아니 저런 건 왜 김태형을 쏙 빼닮았냐고. 언제 한 번, 지민이 한 말에 태형은 억울함에 가슴을 탕탕 쳤었다. 야 내가 언제 저렇게 했었냐? 난 아직도 네가 유치원생 때 기어코 내 공룡모형을 가져간 것을 기억하고 있지. 와 씨, 무서운 새끼 그런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어차피 도하 지금 낮잠 자고 있어서 몰래 둘이서 빨리 갔다 오자. 지민의 말에 태형은 잠시 고민했다. 도하야, 우리 마트 갔다 올게. 태형은 도하한테까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말하며 자리에 일어났다. 으이이잉...도하두... 키득대며 방으로 들어가던 둘은 잠바를 질질 끌며 나오는 도하를 보고 기절할 뻔 했다. 도하두 데꼬가... 아직 잠에 잔뜩 취한 목소리를 하며 반쯤 감긴 눈을 비비면서 자기도 데리고 가라는 도하에, 지민과 태형은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도하는 진짜 못 당한다. 지민의 중얼거림에 태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떼쓰면 그 자리에서 바로 돌아갈 거라는 지민의 말이 무색하게 도하는 인형 하나를 들고 몇 십분 째 지민과 입씨름 중이었다. 태형은 이미 지친지 오래라 멀찍이서 카트에 몸을 기대어 턱을 괸 채 둘이 하는 행동을 관전했다. 둘이서 마주보고 왕왕대는 상황을 보는 것은 재미있긴 했다. 그 와중에 아이랑 시선을 마주본다고 쪼그려 앉아 이야기를 하는 지민이 귀여워 태형은 웃음이 터졌다. 말할 때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그의 불그스름한 볼도 귀엽다. , 물론 맞은편에서 인형을 꼭 안고 있는 제 아이도 귀엽다. 누구를 닮았는지 도하도 통통한 볼에 불그스름하니 물들어 있었다. 태형은 결국 카트를 놓고 저벅저벅 다가와 쭈그려 앉아 있는 지민의 볼을 잡고 반대편 볼에 쪽 뽀뽀 했다. , 뭐야. 지민은 순식간에 당한 뽀뽀에 놀라 태형을 올려다봤다. 생글생글 웃고 있는 태형의 얼굴을 보자니 갑자기 얼굴에 열이 올라 지민은 팔로 얼굴을 가렸다. , 갑자기 뭐 하는 거야. 어찌나 당황했는지 말까지 더듬는 지민에, 태형은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냥 사주자. 저렇게까지 가지고 싶어 하는데.

 

매일 그렇게 사주니까 도하가 여기 올 때마다 사 달라 하는 거 아니야.

 

가지고 싶으면 가져야지.

 

...네 그 생각이 무섭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잖아.

 

내가 지금 돈 때문에 그러는 줄 알아?

 

 

지민은 결국 고개를 저었다. 태형은 이런 부분에 있어서 개념이 없었다. 옛날부터 가지고 싶었던 것은 다 가졌었고, 누구하나 그것이 항상 옳은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태형은 포기와 승복을 몰랐다. 그리고 그런 성격 때문에 트러블이 난 적도 많았다. 지민은 걱정 되었다. 태형이 무조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지만 도하가 그런 부분을 닮으면 분명 사회에서 여러 트러블을 겪게 될 수밖에 없다. 지민은 도하를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았다. 태형처럼 무언가의 결여가 어긋난 방향으로 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내가 분명 너한테도 말했지. 사람은 항상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없고, 가지고 싶은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고.

 

......

 

도하한테 그런 마음을 지금부터라도 깨우치게 하고 싶다고. 그게 얼마나 중요한데.

 

...알았어.

 

 

약간 시무룩해진 태형의 표정을 지민은 애써 무시했다. 저 얼굴에 홀라당 넘어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태형은 도하를 안아들었다. 으쌰, 우리 도하 이거 가지고 싶어? 태형의 말에 도하는 인형을 꼭 안고 태형의 품에 파고들었다. 평소에 지민의 반대에도 항상 사주던 태형이었다. 파파, 이거 사조... 도하의 말에 태형은 활짝 웃으며 도하를 꼭 안고 마구 몸을 흔들었다. 누구 아들이길래 이렇게 귀여워, ?

 

 

그래, 아빠가 사줄게! 단호히 말하려던 태형은 지민의 눈초리에 깨갱했다. 태형은 도하를 살짝 내려주었다. 도하는 태형을 올려다봤다.

 

 

도하야, 이렇게 생긴 친구 집에 많잖아, 도하가 이거 사면 이 친구한테만 사랑 줄 것 같은데 그럼 집에 있는 친구들은 슬프겠어, 안 슬프겠어?

 

도하 안 그럴게. 다 같이 놀게. 이거 사조...

 

도하야. 아빠랑 엄마는 도하가 원하는 걸 항상 사줄 수가 없어.

 

 

태형은 지민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사실 태형도 돈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왜 못 사주는지 잘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지민의 말이니까 따를 뿐이었다. 이거 대신 도하가 좋아하는 식당 가자. 지민도 합세해서 도하를 설득했다. 장난감 코너에서 실랑이를 벌인지 30분은 된 것 같다. 지민도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으이잉...시러...이거 사조... 기어코 사달라는 도하의 말에 지민은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도하와 태형의 시선이 동시에 지민에게 향했다.

 

 

도하 그렇게 계속 떼쓰면 엄마 더 이상 도하랑 놀고 싶지 않아질 거예요.

 

...마마?

 

도하도 그러고 싶어요도하는 엄마랑 안 놀고 싶은 거예요? 엄마랑 노는 것 보다 그 친구랑 노는 게 더 좋은 거예요?

 

 

왠지 모르게 단호한 지민의 말에 당황한 것은 도하뿐만이 아니었다. , 왜 그래 짐나... 평소와 달리 정말로 도하에게 화난 듯 한 지민의 말에 태형은 당황하며 지민의 어깨를 살짝 감싸 안아 쓸어내렸다. 도하 놀랐잖아. 태형의 귓속말에 지민은 살짝 한숨을 쉬었다. 도하의 눈은 울망울망하니 울 듯 했다.

 

 

엄마는 도하랑 많이 놀고 싶은데 도하는 항상 친구 사달라고 하니까 엄마가 슬퍼요. 엄마랑 노는 것 보다 이 친구들이랑 노는 게 더 좋아요?

 

으으응...아니야...

 

 

거의 울 듯한 도하의 목소리에 지민은 도하를 안아 올렸다. 으이잉...마마가 더 좋아... 아예 지민의 품에 얼굴을 부빗거리며 하는 말에 지민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태형에게 눈짓했다. 빨리 손에 든 장난감 제자리에 놓고 와.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 지민의 속마음에 태형은 도하의 손에 든 인형을 살짝 빼고 후다닥 진열장에 두었다. 우리 도하 얼굴 보여주세요. 지민의 말에 도하는 얼굴을 들었다. 니트에 마구 부벼져 잔뜩 헝클어진 앞머리에 결국 울었는지 눈이며 코가 불긋불긋하고 볼에는 눈물자국도 찍혀 있었다. 지민은 결국 푸핫 웃어버렸다. 에구, 우리 도하 누구 아들이길래 이렇게 예뻐요. 지민의 말에 도하는 코를 킁 먹으며 약간은 코맹맹이 목소리로 말했다.

 

 

파파 마마 아들이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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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육아에 서툴기만 한 뷔민.

그리고 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