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민 말도 안되는 육아물 썰6
길/육아물
나 놀이터 데려다 죠...
아까부터 칭얼대는 도하에 결국 지민은 하던 일을 내려놓고 도하를 봤다. 김도하, 엄마가 뭐라고 했어요? 도하 할 일 다 하면 데려다 준다고 했었죠? 지민의 말에 도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빠는 맨날 데려다 줬단 말이야. 도하의 투정에 지민은 이마를 짚었다. 아니 대체 평소에 애를 어떻게 가르친 거야. 지금 집에 없는 태형이 원망스러웠다. 지민은 결국 하던 일을 두고 도하 앞에 마주 앉았다. 지민이 두 손을 내밀자 도하도 작은 두 손을 내밀었다. 지민은 그의 두 손을 잡고 좀 더 가까이 도하를 끌었다.
엄마랑 약속했잖아요. 도하 할 일 다 끝내고 나서 놀기로.
놀다 와서 하께...
그렇게 미루는 습관 어디서 배웠어요. 엄마는 그렇게 가르친 적이 없는데.
도하는 말이 없었다. 보나마나 김태형 때문이겠지 뭐. 태형은 아이를 굉장히 자유롭게 풀어주는 편이었다.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단 예의에 어긋나거나 윤리적으로 맞지 않는 일에는 단호히. 지민은 그런 부분이 걱정스러웠다. 그래도 한글이나 간단한 산수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은데 태형은 그런 공부마저도 아이가 하고 싶어 하면 하고 싶어 하는 대로 안 하고 싶으면 하지 않는 대로 놔두는 식이었다.
아직 6살 밖에 안됐어, 그런 애 붙잡고 뭘 하려는 것 보다 애 하고 싶은 걸 해야지.
이제 6살이야, 그래도 기본적인 건 지금부터라도 해 둬야지, 유치원도 안가는데.
둘은 교육관이 조금 달랐다. 뭐가 더 좋은지는 몰랐다. 다만 태형은 도하가 하기 싫어하는 일이 있고, 그것이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면 억지로 시키지 않았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는 공부도 포함 되어 있었다. 지민은 그게 염려스러웠다. 아니 왜 공부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야? 유치원도 안 보낼 거면 유치원에서 배우는 것 정도는 집에서 해줘야지. 그러다 도하가 다른 애들에 비해 뒤처지면 어떡해. 지민의 말에도 태형은 그 부분에 있어서는 물러나지 않았다. 다른 것은 거의 지민의 뜻에 맡기면서도 그것 하나만큼은 태형의 너무 확고했다. 아이의 선택과 자유에 맡기는 것. 지민의 입장에서는 그 기준이 너무 모호했다. 그래서 둘은 나름의 타협을 했다. 다른 건 몰라도 매일 하루에 1시간씩은 한글과 산수를 시키자고. 매일 1시간은 공부를 시키자고. 그런데 여기서 또 둘의 의견은 갈렸다. 언제든 하루에 1시간만 하면 되는 거 아니냐, 애 하고 싶은 시간 그때그때 맞춰서 하면 된다는 태형과, 지금부터라도 시간을 정해서 규칙적으로 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지민. 태형은 죽어도 물러나지를 않으니 지민은 그때그때 도하와 약속을 정해놓고 약속을 지키는 쪽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도하, 엄마랑 약속했잖아요. 약속은 지키는 거예요.
...알아써.
도하는 그대로 자리에 일어나 자신의 방으로 뛰어갔다. 지민은 도하 몰래 한숨을 쉬었다. 아, 힘들다. 이런 것에 태형과 차이가 있을 거란 생각은 못했는데. 아무래도 태형과 있는 시간이 훨씬 더 많다보니 상대적으로 태형의 방식에 도하가 물드는 것은 있었다.
도하는 방에서 자신의 필통과 교재 두 권을 들고 왔다. 거실에 알아서 자신의 책상을 펴놓고 얌전히 앉는 모습이 퍽 귀엽다. 지민은 도하의 옆에 앉았다. 도하는 교재를 펴다가 별안간 탁 덮더니 같이 가져온 연습장을 폈다. 마마가 단어 불러주면 내가 써 보께. 필통에서 꼬물꼬물 연필을 꺼내면서 하는 말에 지민은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럴까요?
그럼 엄마 이름이랑 아빠 이름이랑 도하 이름 써보세요.
그거 너무 쉬어.
쉬워? 엄마 아빠 이름이 뭔데요?
음...
도하는 꼬물꼬물 연습장에 쓰기 시작했다. 지민은 턱을 괸 채 도하가 쓰는 것을 조용히 보기만 했다. 차례로 박지민, 김태형, 김도하를 써내는 도하가 기특하기만 하다. 다 쓰고 뿌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도하에, 지민은 결국 도하를 꽉 껴안고 몸을 흔들었다. 아이고 이렇게 귀여운 애가 어디서 왔어, 응? 어디서 왔어요. 꺄흐흫 마마 숨마켜! 지민은 그제야 도하를 놔주고 잔뜩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했다. 아빠가 이거 보면 또 좋다고 사진 엄청 찍겠네. 지민의 말에 도하가 대꾸했다. 파파는 내가 하나 쓰 때마다 사진 찌거.
태형은 도하가 뭘 할 때마다 사진이나 영상을 남겼다. 벌써 도하 영상과 사진 용량이 1테라를 넘어가고 있었다. 도하가 처음으로 아빠라고 쓴 종이는 지갑에 넣어 다녔다. 아빠 이름 써준 적 있어요? 지민의 물음에 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맨날 파파가 써달라고 해, 마마랑 파파 이름. 아 그래서 쉽다고 했구나. 지민은 머쓱함에 볼을 긁적였다.
도하 한자이름 어떻게 써요?
한자? 음...
도하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거침없이 써 내려 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자를 가르칠 생각이 없었지만, 그래도 이름 정도는 써야하지 않을까 싶어서 한번 가르쳐 줬더니 그 이후로 한자 쓰는 것을 좋아한 도하였다. 그래서 지민은 매일 한 자씩 가르쳐 주고는 했다.
도하는 이름 뜻이 뭐예요?
음... 보슝아, 복슝아? 나무 아래.
우리 도하, 잘 기억하네.
마마 근데 나 복슝아 나무 미테서 태어 나써?
도하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며 묻는 말에 지민은 피식 웃으며 도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거를 애한테 어떻게 설명해주어야 하나...
우리 도하 세상에 나왔을 때 복숭아꽃이 예쁘게 피는 때라 도하라는 이름을 붙인 거예요.
봄?
네, 봄.
그럼 마마 이름은 무슨 뜨시야?
도하의 물음에 지민은 눈을 접어 웃었다. 그럼 엄마가 엄마 이름이랑 아빠 이름 가르쳐 줄 테니까 나중에 아빠 오면 도하가 아빠한테 이야기 할래요? 응응! 지민의 물음에 도하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답했다.
도어락 해제하는 소리에 책을 읽고 있던 지민이 현관 앞으로 갔다. 놀이터에 놀러간 도하가 온 줄 알았는데 태형이었다. 왔어? 지민의 물음에 태형은 그대로 지민을 껴안았다. 아, 힘들어... 어쩐지 풀이 죽은 목소리에 지민은 태형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태형은 지민을 안은 채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지민은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앞에 잘 봐, 나 부딪치게 하지 마. 지민의 말에 태형이 피식 웃었다. 그의 숨이 지민의 귓가에 닿았다. 태형은 그대로 천천히 방 안까지 들어왔다. 아들은? 놀이터. 태형의 물음에 지민이 간단히 대답했다.
태형이 살짝 몸을 떼고 가만히 지민을 내려 봤다. 넥타이 풀어줘. 그의 말에 지민은 익숙하게 넥타이를 풀었다. 자켓도 벗어. 지민의 말에 고분고분 자켓을 벗어 건네자 지민이 그대로 옷걸이에 걸어 행거에 걸었다. 한번 입었으니까 드라이 해야겠네. 아니, 드라이 안 해도 돼. 태형의 말에 지민은 뒤돌아 어느새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태형을 봤다.
드라이 하지 말라고?
그 옷 버려.
어?
이제 입을 일 없을 거야. 입을 일 있다고 해도 그냥 새로 살 거니까 그거 그냥 버려.
......
아니면 누구 주던지.
그래도 이 비싼걸.
몰라. 그 사람들이 준 거 보기 싫어.
......
아니면 네가 사주든가. 평생 입고 다닐 수 있는데.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지만 그 속이 뻔히 보이는 태형에, 지민은 무어라 말도 못하고 그저 옷만 만지작거렸다. 오늘... 어땠어? 지민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태형은 그저 오라고 손짓만 했다. 가까이 다가온 지민의 허리를 감아 그대로 눕힌 태형은 그를 꽉 끌어안았다. 평소라면 미쳤냐며 자신을 퍽퍽 쳐댔을 지민이지만 오늘은 날이 날인지라 가만히 안겨주는 모습에 오오, 태형은 감탄했다. 웬일이야 박지민? 웬일은 무슨.
네가 웬일로 가만히 안겨?
오늘만이야.
그런 건 너 혼자만 정하는 게 아닐 텐데. 내가 안고 싶을 때 안으면 되지, 뭐.
참 나.
나 정리했어.
지민은 살짝 놀랐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잠시 방 안에 정적이 돌았다.
아니, 정리 당한건가? 어쨌든.
...어쩌...다...
음... 어쩌다는 아니야. 그냥 옛날부터 마음먹은 일을 오늘 얘기하신거지 뭐.
거기는 어떡하고...
몰라. 알아서들 하겠지. 나 이제 그 쪽 사람 아닌데 뭐.
지민은 더 이상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어떤 위로도 섣불리 할 수 없었다. 무심코 뱉은 말이 그에게 어떤 상처로 갈지 모르니까. 지민은 그저 그의 등을 쓸어주며 온기를 나눠주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태형은 자세를 살짝 고치며 지민을 더욱 깊게 끌어안았다.
나 이제 진짜 너랑 도하 밖에 없어.
......
지민아.
응.
태형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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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하 6살
태형 지민 23살
어느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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